씨앗을 지키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토종씨앗, 문명을 묻다 24

by호시우행

좋은 씨앗을 고르는 동안, 어떤 씨앗은 선택에서 멀어지는가


콩을 거두고 나면 농민은 이듬해 심을 씨앗을 고른다. 벌레 먹은 알과 상한 알을 골라내고, 충실하게 여문 콩을 따로 담는다. 그러나 씨앗을 고르는 일은 콩알의 모양을 살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느 밭에서 잘 자랐는지, 병이 든 포기는 얼마나 되었는지, 수확량은 어땠는지, 거둔 콩을 팔거나 먹었을 때 어떠했는지도 판단에 들어간다. 농민은 지난 농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농사에 필요한 씨앗을 남긴다. 이때 무엇을 좋은 씨앗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기준도 함께 정해진다.


좋은 씨앗은 무엇으로 결정될까. 알이 굵고 수확량이 많은 씨앗일까, 병과 가뭄을 잘 견디는 씨앗일까,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재배되어 온 씨앗일까. 이 조건들은 서로 겹치기도 하지만 늘 함께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수확량이 많아도 물이 부족한 밭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을 수 있고, 재배하기 까다로운 씨앗이라도 특정한 환경에서는 쓸모 있는 특성을 나타낼 수 있다. 오랫동안 재배해 왔다는 사실만으로 현재의 발아 능력이나 재배 성능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좋은 씨앗을 가리려면 어떤 조건에서, 무엇을 위해 좋은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농민은 그 답을 자신의 밭에서 찾는다. 물이 부족한 밭에서는 가뭄을 견디는 힘이 중요하고, 바람이 센 곳에서는 작물이 쉽게 쓰러지지 않아야 한다. 병해가 자주 발생하는 곳에서는 병에 강한 성질이 필요하다. 수확물을 오래 저장해야 하는 농가와 수확하자마자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농가가 중요하게 보는 조건도 다르다. 농민이 씨앗을 선택하는 기준은 작물의 특성뿐 아니라 토양과 기후, 재배 방식, 수확물의 쓰임에 따라 달라진다. 좋은 씨앗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모습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생계가 걸려 있다. 씨앗을 심고 가꾸는 데는 노동과 비용이 들고, 수확이 줄면 다음 농사를 준비하기도 어려워진다. 농민이 수확량이 많고 재배하기 쉬운 품종을 선택하는 것은 농사를 이어 가기 위한 현실적인 판단이다. 씨앗의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농민에게 수익이 불확실한 품종을 재배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씨앗을 지키는 일은 그것을 심는 사람의 생활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농민 한 사람에게 합리적인 선택이 농업 전체의 다양성을 지키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확량이나 판매 가능성에서 불리한 품종이 여러 해 동안 선택에서 밀려나면, 그 씨앗은 밭에서 사라질 수 있다. 재배하는 사람이 줄어들면 씨앗을 이어받을 기회도 줄어든다. 그 품종에 다른 자원과 구별되는 특성이 있는지는 별도로 살펴야 하지만, 재배와 관찰이 끊기면 그 특성을 확인하거나 활용할 가능성도 작아진다. 농민의 밭에 맞는 씨앗을 고르는 일과 농업 전체의 유전적 다양성을 남기는 일은 연결되어 있지만, 같은 목적을 가진 선택은 아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호시우행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밥상과 농업, 지역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익숙한 먹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문명과 감정, 공동체의 역사가 보인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1,219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33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3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25화사람의 이름을 가진 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