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은 정말 따로인가

몸, 인간을 다시 묻다. 11

by호시우행

뜨거운 냄비를 잘못 잡으면 손이 저절로 먼저 물러난다. 뜨겁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손을 뗄지 말지 결정하기도 전에 신경계가 이미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손가락이 오므라들고 팔이 뒤로 빠지는 동안, 의식은 그 뒤를 허둥지둥 따라가기도 한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익숙하게 여겼던 순서가 흔들린다. 항상 내가 먼저 생각하고 몸이 그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지만, 모든 움직임이 그렇게 흘러가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손을 뗀 게 나일까, 내 몸일까? 둘 중 하나만 고르려 하면, 오히려 질문 자체가 어색해진다. 손을 움직이는 나도 몸을 가진 나이고, 그 손을 움직인 몸 역시 내가 살아가는 바로 그 몸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이런 문제를 굳이 따져보지 않는다. 무심코 물건을 집거나 문을 열고, 옷을 입고, 의자에서 일어서는 동안 나는 그냥 ‘내가 몸을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손을 들겠다고 마음먹으면 손이 올라가고, 걸어가겠다고 생각하면 발이 움직인다. 몸은 내가 정한 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마음을 ‘명령하는 쪽’에, 몸을 ‘실행하는 쪽’에 둔다. "내가 몸을 움직인다"는 말이 너무 익숙해서, 그 안에 이미 나와 몸을 나누는 생각이 들어 있다는 것도 종종 잊고 산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상상한 움직임과 실제 행동 사이에 간격이 생기는 경험을 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무엇을 하려는지 분명히 알고, 손을 어느 방향에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아는데도, 실제 움직임이 내 생각과는 어긋날 때가 있다. 단추 하나를 채울 때도 손가락의 위치와 힘을 세심하게 조절해야 하고, 글씨를 쓸 때는 머릿속의 글자와 종이 위에 나타나는 글씨가 달라져 난감할 수 있다. 계단을 오를 때도 발을 어디에 어떻게 둘지는 알고 있어도, 내 몸이 생각을 그대로 복사하진 않는다.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과 몸의 균형에 맞춰 힘을 다르게 주기도 하고, 원하는 대로 안 되면 다른 움직임을 찾아내기도 한다. 결국 움직임은 한쪽의 명령이 다른 쪽에 딱 맞게 전달되고 실행되는 게 아니라, 감각과 의도, 조절이 한 번에 얽혀 나타나는 복잡한 과정에 더 가깝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일이 생긴다.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보다도, 내가 몸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있다고 여겼던 관계 자체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이 더 낯설게 느껴진다. 생각이 완전히 정리된 뒤에 몸이 그 지시에만 따라 움직인다면, 움직임과 생각 사이의 차이는 그저 사소한 착오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움직이면서 힘을 조절하고, 그 과정에서 처음 의도와 다른 방법으로 원하는 결과에 다다르기도 한다. 오히려 움직이다 보니 처음 예상하지 못한 방법이 더 잘 맞는 경우도 있다. 내 몸이 생각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의 움직임이 내 생각을 바꾸는 순간들이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특별한 상황이나 누군가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긴장하면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가고, 목소리가 달라지며, 두려우면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짧아진다. 피곤할 때는 늘 하던 일이 서툴러지고, 통증이 있으면 같은 공간, 같은 말조차 다르게 느껴진다. 반대로 어떤 생각 하나가 몸의 긴장을 풀 수도 있고, 편안한 호흡이 마음까지 안정시키기도 한다. 몸과 마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말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존재가 딱 잘라져 따로 있다는 설명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불안을 느낄 때 ‘나는 불안하다’는 생각보다 먼저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가빠질 수 있다. 화가 나면 얼굴이 굳고 목소리가 높아지며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슬픔도 걷는 모습, 표정, 식욕, 잠의 모습까지 바꿔 놓는다. 몸이 아플 때는 평소 무심하게 넘기던 소리가 거슬리고, 남의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기도 한다. 통증은 특정 신체 부위에서 시작되지만, 그날의 생각과 감정, 세상을 받아들이는 태도까지 뒤흔든다. 몸과 마음을 오가는 뚜렷한 통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경험이 하나의 덩어리처럼 함께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음’이라는 것을 전부 ‘몸’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우리는 생각하고, 기억하고, 판단하고, 상상한다. 과거를 떠올리고 아직 오지 않은 일을 걱정하며, 몸이 하고 싶은 것과는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또,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의식하며 사는 것 역시 아니다. 심장은 내가 명령하지 않아도 뛰고 호흡은 대부분 의식하지 않아도 이어지며, 소화와 면역을 비롯한 수많은 과정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진행된다. 내가 ‘나’라고 의식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이 몸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몸을 바라보는 일도 묘해진다. 거울 속에서 몸은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된다. 얼굴의 표정을 보고 자세의 모양을 살피며 몸을 하나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몸을 바라보는 눈도 몸이고, 거울 속 모습을 해석하는 감각과 생각도 몸을 가진 존재에게서 일어난다. 몸을 완전히 바깥에서 바라보는 순수한 관찰자가 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내가 몸을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 생각은 몸을 가진 나에게서 일어난다.


‘내 몸’이라는 말도 조금 낯설어진다. 몸을 내가 소유한 것처럼 말하지만 몸의 통증은 나에게 일어나고 몸의 피로는 나의 하루를 바꾸며 몸의 움직임은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범위를 바꾼다. 몸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라기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에 더 가깝다. 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나 역시 그 몸에서 벗어난 자리에 서 있지 않다.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나누어 생각해온 것도 이해할 만하다. 몸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지만 생각과 기억과 의지는 손으로 붙잡을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을 설명하면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정신을 나누어왔다. 근대철학에서는 생각하는 존재와 공간을 차지하는 물질을 서로 다른 차원으로 구분하는 방식이 특히 강하게 자리 잡았다. 이 구분은 인간의 정신과 이성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살아 있는 사람의 경험 전체를 그대로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생각하는 나도 몸을 떠나 있지 않고, 움직이는 몸도 생각과 기억과 감정에서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빈틈은 다시 움직임에서 드러난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움직이는 과정에서 알아가기도 한다. 손끝의 감각에 따라 힘을 바꾸고, 몸의 균형에 따라 동작을 수정하고, 움직임의 결과를 느끼면서 다음 동작을 결정한다. 생각이 행동을 앞서서 완성하고 몸이 그것을 전달하는 것만은 아니다. 행동 속에서 생각이 구체적인 모양을 얻기도 한다.


말을 할 때도 그렇다.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 있다고 해서 그 말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숨을 쉬고 혀와 입술을 움직이고 목소리를 만들어야 한다. 머릿속의 문장과 실제로 나온 말 사이에는 몸이 있다. 말을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지기도 하고, 말을 하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었는지를 알아차리기도 한다. 말은 마음이 완성한 내용을 몸이 전달하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생각과 호흡과 발성과 기억과 감정이 한순간에 얽혀 하나의 말이 되는 과정이다.


처음의 냄비로 돌아가면 질문은 손을 뗀 주체가 누구인지 묻는 데 머물지 않는다. 손을 뗀 것은 몸이었을까, 마음이었을까. 몸이라고 하면 그 몸을 느끼고 판단하고 있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마음이라고 하면 손을 움직이게 만든 수많은 신체적 과정은 어디로 가는가. 둘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인간의 경험을 너무 잘게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몸과 마음을 구별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통증과 생각을 같은 것으로 만들 필요도 없고 기억과 근육의 움직임을 같은 말로 부를 수도 없다. 서로 다른 경험을 구별하는 일은 필요하다. 다만 구별하는 것과 떨어뜨려놓는 것은 다른 일이다. 몸과 마음이라는 두 이름이 서로 다른 경험을 가리킨다고 해서 그것들이 서로 독립된 두 존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몸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먼저 반응하기도 하고,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나는 그 몸의 상태를 느끼고 기억하고 해석하면서 다시 몸을 움직인다. 생각과 움직임 사이에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 질문은 남는다.

나는 몸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처음부터 몸으로 존재하는가.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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