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왜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가

몸, 인간을 다시 묻다. 09

by호시우행

작은 물건 하나를 집으려고 손을 뻗는다. 어디에 있는지 눈으로 보았고 손을 어느 방향으로 보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다. 손끝이 닿으면 손가락을 오므리면 된다. 그런데 손끝이 물건의 가장자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물건이 조금 밀려난다. 다시 손을 가져간다. 이번에는 손가락에 잡힌다. 물건 하나를 집는 데 두 번 손을 뻗었다는 사실은 별일 아닌 것처럼 지나간다. 하지만 그 짧은 동작을 붙잡아보면 이상한 일이 보인다. 나는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고 그곳으로 손을 보내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한 움직임과 실제로 이루어진 움직임은 같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끝난 일이 손끝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차이는 아주 작다. 손이 물건에서 조금 비껴간 것일 수도 있고, 손가락에 들어간 힘이 생각보다 약하거나 강했던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나도 다시 손을 뻗어 물건을 잡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런 작은 차이를 자주 경험하다 보면 한 번의 실패보다 그 안에서 드러나는 몸의 작동 방식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아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의지는 움직임의 방향을 가리킬 수 있지만 손끝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대신해주지는 못했다.


단추를 채울 때도 그렇다. 평소에는 단추 하나를 구멍에 넣는 일을 하나의 동작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손가락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순간 그 안에 숨어 있던 과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단추를 잡고, 손을 구멍 쪽으로 가져가고, 천이 움직이지 않도록 힘을 조절하고, 단추의 방향을 맞추어 밀어 넣어야 한다. 손가락이 단추를 놓치면 다시 잡고, 구멍을 비껴가면 방향을 바꾼다. 평소에는 어느 손가락의 어느 관절을 얼마나 구부리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손목을 어느 각도로 돌릴지도 계산하지 않는다. 잘될 때는 그 모든 과정이 하나의 동작으로 묶여 있다. 어긋나는 순간에야 하나의 동작이 사실은 수많은 조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몸은 잘 움직일 때보다 어긋날 때 더 선명하게 보인다.


잘될 때는 단추를 채웠다는 결과만 남는다. 손가락이 어떤 순서로 움직였는지는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몇 번 손가락이 미끄러지고 단추가 빠지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몸의 일이 눈앞에 나타난다. 손가락은 단추의 위치를 찾고, 힘을 조절하고, 실패한 움직임을 수정한다. 내가 하나하나 지시하지 않아도 몸은 계속 다음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나는 몸을 사용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몸이 나 대신 해오던 일이 훨씬 많았다.


글씨를 쓸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머릿속에는 쓰려고 하는 글자가 있고 어떤 문장을 쓸지도 알고 있다. 펜을 잡고 종이에 가져간다. 첫 획을 긋는다. 그런데 종이에 남은 글자는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모양과 조금 다르다. 획의 방향이 달라지고 글자가 한쪽으로 기울기도 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커지거나 작아지기도 한다. 머릿속에서는 또렷했던 글자가 손을 지나 종이에 도착하면서 다른 모습을 갖는다.


그럴 때 종이 위의 글씨를 잠깐 바라보게 된다. 쓰려고 했던 글자는 분명 머릿속에 있었는데 손은 왜 다른 모양을 만들어냈을까. 생각은 분명했는데 결과가 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그 글씨가 내 것이 아닌 것은 아니다. 내가 쓰려고 했고 내 손이 움직였으며 종이에는 내 손을 거친 흔적이 남았다. 생각한 것과 이루어진 것이 정확하게 같지 않은데도 그것은 분명 나의 행동이다.


이런 경험을 하고 있으면 오래된 철학의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가. 무엇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내가 있고, 몸은 그 생각을 세상에 옮기는 역할을 하는 것일까. 데카르트가 인간의 존재를 ‘생각하는 나’에서 찾았을 때 생각은 확실한 출발점이었다. 무엇을 의심하든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손으로 글씨를 쓰는 순간에는 다른 문제가 생긴다. 내가 무엇을 쓸지 생각할 수 있다고 해서 종이 위에 그 글자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생각은 몸을 거쳐야 흔적이 된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나와 움직이는 몸은 서로 다른 것일까.


내 경험은 그렇게 단순하게 나뉘지 않는다. 손이 생각과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고 해서 나는 손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글씨가 생각한 모양과 다르다고 해서 그 글씨에서 내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차이를 통해 생각과 몸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생각은 몸을 통해 세상에 나타나고, 몸은 움직이는 과정에서 생각이 무엇을 하려는지 계속 받아들인다.


나는 오랫동안 몸을 내가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결정하면 몸이 따라오고, 내가 멈추려고 하면 몸이 멈추는 식이었다. 몸은 내가 사용하는 것이고 의지는 몸을 움직이는 주인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실제로 움직여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손을 뻗는 순간 눈은 물건까지의 거리와 방향을 살피고, 손끝이 닿으면 감각이 들어오며, 그 감각에 따라 힘과 방향이 달라진다. 물건의 위치가 조금 달라지면 손의 움직임도 달라지고, 종이의 위치가 바뀌면 글씨를 쓰는 자세도 달라진다.


나는 이 과정을 하나하나 의식하지 않는다. 손을 뻗으면서 팔의 각도를 계산하지도 않고 손끝에 닿을 압력을 미리 정하지도 않는다. 몸은 움직이면서 알아간다. 닿아보고, 미끄러지고, 힘을 바꾸고, 위치를 고친다. 행동은 머릿속에서 완성된 계획이 몸으로 내려오는 과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움직이는 동안 몸이 주변을 느끼고 그에 따라 행동을 바꾸면서 하나의 동작이 만들어진다.


메를로퐁티가 몸을 바라본 방식이 여기에서 중요해진다. 그는 몸을 내가 소유한 하나의 물건으로 보지 않았다. 몸은 내가 세계 안에서 보고, 느끼고, 움직이고, 행동하는 방식이었다. 손은 물건을 향해 움직이면서 그 물건과의 거리를 알아가고, 손끝은 닿는 순간 다음 움직임을 결정하게 하는 정보를 받아들인다.


몸은 세계를 만지면서 움직인다.


나는 세계를 완전히 이해한 다음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세계를 만나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함께 알아간다. 손이 물건을 비껴가면 다음 손짓이 달라지고, 글씨가 예상보다 크게 나오면 다음 획의 힘이 달라진다. 움직임은 생각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생각이 다시 수정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순간을 단순한 실패라고만 말하기 어렵다. 물론 그 순간에는 불편하다. 손이 원하는 곳에 닿지 않으면 다시 해야 하고, 단추가 빠지면 다시 채워야 하며,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고 다시 써야 한다. 나도 그런 순간에는 몸을 탓하고 싶어진다. 조금만 더 정확했으면 좋겠고, 조금만 더 빨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나의 뜻을 방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장애가 있는 몸으로 살아오면서 이런 경험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어떤 행동을 시작하기 전에 결과를 먼저 예상하게 될 때가 있다. 내가 하려는 만큼 움직일 수 있을까. 손이 제대로 따라올까. 한 번에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짧은 동작일 것이 내게는 몇 번의 조정이 필요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했던 조정이 생긴다. 손이 조금 비껴가면 다시 방향을 잡고, 힘이 부족하면 다시 힘을 주고, 너무 세게 잡았으면 힘을 늦춘다. 몸은 처음부터 완성된 움직임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과정에서 계속 수정한다. 나는 몸이 나를 방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몸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가끔은 손이 실패한 것보다 그 실패를 바라보는 내 생각이 더 오래 남는다. 물건을 놓쳤다는 사실은 몇 초 지나면 끝나지만, 왜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은 그보다 오래 남을 수 있다. 몸은 이미 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는데 생각은 지나간 동작에 머무는 것이다. 그러면 몸이 느린 것만이 아니라 내가 몸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순간을 지나면서 몸을 바라보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졌다. 몸이 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실제 상황에 맞게 바꾸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의 무게가 예상과 다르면 손의 힘을 바꾸고, 단추의 위치가 달라지면 손가락의 방향을 바꾸며, 글씨가 생각보다 크게 나오면 다음 획을 조절한다. 몸은 나의 의지를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상황 사이에서 계속 조정한다.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는 것도 그 지점이다.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자신의 몸이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몸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가 자신을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그레고르로서 생각하고 걱정하고 계획한다. 달라진 것은 몸이고, 그 몸을 바라보는 세계도 달라진다.


그레고르의 변신을 나의 장애 경험과 그대로 겹쳐놓을 수는 없다. 그의 몸과 나의 몸은 다르고, 그의 이야기를 장애의 은유로 소비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 이야기는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몸이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 달라졌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같은 나인가.


몸이 내 생각과 조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내가 둘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몸과 생각의 차이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내가 만들어진다. 몸은 내가 생각한 것을 그대로 복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몸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와 몸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느냐 사이에서 나라는 존재가 드러난다.


이 질문은 다른 사람과 마주할 때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가리키려고 손가락을 뻗는다. 내가 생각한 방향과 실제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이 조금 다를 수 있다. 상대는 엉뚱한 곳을 바라본다. 나는 손을 다시 움직이거나 말로 설명한다. 상대가 내가 가리키려던 곳을 찾으면 그제야 둘 사이에 하나의 의미가 생긴다.


여기에서는 내 몸만으로 일이 끝나지 않는다. 내 생각이 손짓이 되고, 손짓이 상대의 눈에 들어가고, 상대의 몸이 그 방향을 따라 움직이며, 그 반응을 내가 다시 알아차린다. 내가 보낸 것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몸을 거쳐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몸과 몸 사이에서 의미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생각하면 몸을 나와 세계 사이에 놓인 벽이라고만 부르기도 어렵다. 몸은 나와 세계를 나누면서 동시에 이어준다. 눈으로 본 것이 손의 움직임을 바꾸고, 손끝의 감각이 나의 행동을 바꾸며, 나의 손짓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움직인다. 몸은 세계를 향해 열려 있고 세계는 몸을 통해 나에게 들어온다.


그래서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도 조금 달라진다. 이 말에는 내가 먼저 완성된 의지를 가지고 있고 몸은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뜻도 움직임 속에서 조금씩 달라진다. 손을 뻗기 전의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손을 뻗은 뒤의 내가 알게 된 것이 같지 않다. 몸이 움직였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 있고, 몸이 어긋났기 때문에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작은 물건 하나를 다시 집어본다. 손끝이 이번에는 정확하게 닿는다. 한 번에 잡힌다. 특별히 기억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그 짧은 동작을 바라보면 그 안에 내가 의식하지 못한 수많은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이 물건의 위치를 알아차렸고, 몸이 거리를 가늠했고, 팔과 손목과 손가락이 움직였으며, 손끝의 감각이 힘을 조절했다. 나는 그 어느 하나에도 일일이 명령하지 않았다.


내가 한 것은 물건을 집으려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몸이 함께 해냈다.


종이 위에 남은 글씨도 다시 바라본다.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글자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지우고 싶지는 않다. 그 글자는 생각이 몸을 통과하면서 생긴 흔적이기 때문이다. 생각만으로는 종이에 남을 수 없었고 몸만으로는 무엇을 쓸지 알 수 없었다. 생각과 움직임 사이에서 생긴 차이가 결국 하나의 글씨가 되었다.


어쩌면 몸은 내가 생각한 것을 그대로 세상에 옮겨주는 통로가 아닐지도 모른다. 몸은 생각을 조금 바꾸고, 느끼고, 흔들고, 때로는 어긋나게 하면서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 남기는 흔적에는 언제나 몸이 들어 있다. 글씨에도, 손짓에도, 내가 어떤 물건을 다루는 방식에도 몸의 흔적이 남는다.


나는 몸을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결정하면 몸이 따라오고, 내가 멈추면 몸이 멈추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몸을 오래 바라볼수록 그 관계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나는 몸을 움직이는 동시에 몸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몸이 내 뜻과 다르게 움직이는 순간은 나와 몸이 갈라지는 순간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몸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드러내는 순간일 수 있다. 손이 비껴가면 다시 잡고, 단추가 빠지면 다시 채우고, 글씨가 다르게 나오면 다음 획을 조정한다. 몸은 내 뜻을 그대로 복사하지 않는다. 몸은 내가 가진 뜻과 눈앞의 세계 사이에서 움직이며 그 뜻을 실제의 행동으로 바꾼다.


그리고 나는 그 몸을 통해서만 세계에 닿는다.







월, 목 연재
이전 09화몸은 왜 부끄러워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