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인간을 다시 묻다 08
사진을 찍고 나면 나는 사진을 바로 보지 않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사진을 찍은 자리에서 웃으며 화면을 확인하고 잘 나온 사진을 고르지만, 나는 조금 있다가 혼자 사진을 열어본다. 처음에는 함께 찍은 사람들을 보고 어디에서 찍었는지를 살핀다. 그러다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 손가락이 멈춘다. 고개가 생각보다 많이 돌아가 있거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얼굴도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 다르게 찍혀 있다. 사진을 찍을 때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모습이다. 한 번 보고 넘기면 될 텐데 다시 본다. 조금 확대해 보기도 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면을 줄인다. 누가 이상하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나부터 민망해진다.
사진을 찍는 순간에는 내 몸을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를 듣고, 웃을 일이 있으면 웃는다. 옆 사람이 움직이면 바라보고, 무엇인가를 건네받으면 손을 내민다. 몸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따라갈 뿐이다. 나는 그 몸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사진이 찍히고 나면 조금 전까지 나와 하나였던 몸이 눈앞에 놓인다. 나는 그제야 내가 어떤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는지를 본다.
사진은 내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곳에서 나를 보여준다. 거울을 볼 때는 내가 고개를 돌리면 거울 속의 나도 따라 움직인다. 표정을 바꾸면 표정도 바뀐다. 사진은 다르다. 이미 지나간 순간의 몸이 움직이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내가 다시 고개를 돌려도 사진 속의 고개는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표정을 고쳐도 그때의 얼굴은 그대로다. 사진 속에 남은 몸은 이제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의 모습이 되어 있다.
그 모습이 낯설다. 내가 아닌 것은 아닌데 내가 알고 있는 나와는 다르다. 나는 내 얼굴을 매일 보지만 내가 웃는 순간의 얼굴을 오래 바라본 적은 없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있을 때 내 얼굴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모른다. 걸을 때 고개가 어느 정도 기울어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내 몸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데 사용되는 것이면서 내가 직접 바라보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어릴 때 사진을 보면 그 낯섦이 더 선명하다. 다른 아이들과 나란히 찍은 사진에서 내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사진을 보며 그때 어디에 갔었는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를 이야기하는데 나는 먼저 내 고개와 얼굴을 본다. 몸의 방향이 다르고 표정이 어색해 보인다. 함께 놀던 순간에는 그런 차이를 생각하지 않았는데 사진 한 장에서는 차이가 크게 보인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움직임 속에 흩어져 있던 몸이 사진에서는 한 가지 모습으로 굳어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사진 속 모습과 나 자신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사진 속 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내 얼굴이 어색하면 내가 어색한 사람처럼 느껴졌고, 몸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면 내가 다른 사람보다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다. 사진 한 장이 나에 대한 판단으로 바뀌는 데는 많은 생각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지금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은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사진 한 장과 나 자신을 완전히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진 속의 모습은 그 순간의 나를 보여주지만 그 순간의 나를 모두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고개가 기울어진 모습은 남아 있지만 그때 내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는 사진 밖에 있다. 얼굴의 표정은 남아 있지만 무슨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는지는 남아 있지 않다. 사진에는 몸이 남지만 그 몸이 살아가던 시간 전체가 남는 것은 아니다.
사진을 오래 보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뒤에 있는 사람의 표정이 보이고, 창밖의 풍경이 보인다.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이나 그날의 빛도 눈에 들어온다. 내가 왜 그곳에 있었는지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면 조금 전까지 내 몸만 크게 보이던 사진이 다시 하나의 장면이 된다. 내가 싫어했던 것은 사진 전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유난히 크게 보였던 내 모습 하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순간 몸을 바라보는 방식도 조금 달라진다. 사진 속의 고개가 기울어진 것은 그대로다. 얼굴도 그대로다. 그런데 그 몸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모습만 볼 때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그날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사진은 몸을 멈춰 세웠지만 그 몸이 살아가던 시간까지 멈춰 세우지는 못했다.
아마 부끄러움은 여기에서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갈 때의 나는 내 몸을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냥 그 몸으로 사람을 만나고 움직이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사진 속에서는 그 몸이 나에게 하나의 대상이 된다. 나는 사진 밖에 서서 사진 속의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이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지를 상상한다. 내가 살아가는 몸과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몸 사이에 작은 틈이 생긴다.
사르트르가 타인의 시선에 대해 쓴 것을 나중에 읽었을 때 사진 앞에서 느꼈던 일이 조금 이해되었다. 사람은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을 의식하는 순간 스스로를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사진은 그 과정을 아주 쉽게 만들어버린다. 사진 속의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내가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이다. 나는 사진을 보며 잠시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 사진 속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 모습이 틀린 것도 아니고, 그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진은 그저 한순간의 몸을 보여준다. 그 몸이 그날 어떤 사람들과 있었고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생각했는지까지 판단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을 발견해도 바로 지우지 않는다. 꼭 좋아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한 번 더 본다. 얼굴을 보고, 자세를 보고, 그다음에는 사진의 다른 곳을 본다. 그러다 그날의 장면이 떠오르면 사진 속의 몸도 조금 달라 보인다. 여전히 내가 좋아하지 않는 모습일 수 있다. 그래도 그 몸을 보고 곧바로 나 자신까지 싫어하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오랫동안 몸을 바라보면서 몸을 판단해왔다. 몸의 모양을 보고 좋고 나쁨을 나누었고, 다른 몸과 비교하면서 나를 이해했다. 사진은 그 습관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 고정된 내 몸을 바라보면서 내가 얼마나 쉽게 하나의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한 장의 사진보다 크다. 몸 역시 한 장의 사진보다 길게 살아간다. 사진 속의 나는 그 순간 그 몸으로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몸이 살아온 시간은 사진 한 장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진에 찍히지 않은 수많은 표정과 움직임이 있었고, 사진에 남지 않은 수많은 관계와 시간이 있었다. 내가 보지 못한 몸의 모습까지 모두 합쳐져 지금의 내가 되어 있다.
그래서 이제는 사진 속의 내 모습을 무조건 좋아하려고 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대로 본다. 다만 그 모습 하나로 나를 결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고개가 기울어진 사진을 보고도 그날의 내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생각할 수 있고, 어색한 표정을 보고도 그때 내가 무엇 때문에 웃었는지를 떠올릴 수 있다. 몸을 보는 일과 나를 판단하는 일을 조금씩 떼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진 속의 나는 여전히 낯설 때가 있다. 어떤 모습은 지금도 보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서둘러 사진을 넘기지는 않는다. 한참 바라보다가 사진 밖의 그날을 떠올린다. 그 몸으로 나는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 사진은 내 몸을 한순간 붙잡아두었지만, 그 몸이 살아간 시간까지 붙잡아두지는 못했다.
어쩌면 몸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모든 모습을 좋아하게 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때에도 그것을 가진 나를 곧바로 판단하지 않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사진 속의 몸은 나이지만, 사진 한 장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