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몸으로 살아가는가

몸, 인간을 다시 묻다 01

by호시우행

어릴 때 나는 내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일찍 알았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왜 그런지 묻지 않았다.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하는 일을 나는 조금 더 천천히 해야 했고, 마음은 먼저 앞으로 나아가는데 몸은 그 뒤를 따라오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몸은 철학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일 만나고 견뎌야 하는 나의 삶 그 자체였다..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공을 따라 뛰어갈 때 나는 먼저 내 몸이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를 살펴야 했다. 공은 이미 친구들 사이를 지나 앞으로 굴러가고 있었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라 달려갔지만, 나는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곳에 가 있으면서도 몸이 따라올 준비를 기다려야 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움직임은 생각하기 전에 이루어지는 일이었지만, 나에게 움직임은 언제나 몸과 마음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자리를 옮기고, 운동장에서 서로를 부르며 뛰어갈 때 나는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어떤 순간에는 내 몸이 나를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머릿속에서는 이미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이 정리되어 있는데 몸은 그보다 조금 늦게 반응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는 내 몸을 나와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라기보다 내가 넘어야 하는 벽처럼 생각했다. 나는 왜 다른 사람처럼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지, 왜 다른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나에게는 준비와 집중을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마음은 늘 앞서가고 있었지만 몸은 언제나 나에게 잠시 멈추어 생각하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가 힘들었던 이유가 단순히 몸의 불편함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더 오래 남은 것은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꿈을 품고 살아가는지를 알기 전에 먼저 내 몸을 보았다. 걸음걸이와 말투, 움직임과 표정은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정보가 되었고, 때로는 그것만으로 나의 가능성과 한계를 판단하려 했다. 나의 몸은 나의 일부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나의 전부처럼 보였다.


그때부터 나는 한 가지 질문을 품게 되었다. 왜 사람들은 한 사람의 마음과 생각보다 먼저 보이는 몸을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일까. 물론 나는 몸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이 몸을 떠나 존재할 수 없었고, 내가 세상을 경험하는 모든 방식은 결국 몸을 통해 이루어졌다. 내가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일, 누군가와 만나 관계를 맺는 일,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일 모두 몸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고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보이는 모습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내 안에는 생각하는 내가 있었고, 배우고 싶은 내가 있었으며, 누군가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은 내가 있었다.


그래서 몸은 나에게 오래된 모순이었다. 몸은 나를 제한하는 현실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세계와 만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나는 이 몸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경험했지만, 또한 이 몸 덕분에 세상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을 읽고, 목소리를 들으며 관계를 만들고, 따뜻한 손길을 통해 위로를 경험하는 모든 순간은 몸을 통해 이루어졌다. 사랑도 몸을 통해 전달되었고, 기억도 몸 안에 남았으며, 내가 살아온 시간 역시 몸이라는 자리 위에 쌓여갔다.


그러면서 조금씩 질문이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왜 내 몸은 다른가를 물었다. 왜 나는 다른 사람처럼 하지 못하는지, 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왜 나의 몸은 내 마음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지를 묻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질문은 조금 다른 곳으로 향했다. 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몸이라는 조건 안에서 살아가는가. 왜 우리는 자신의 몸을 선택하지 못한 채 하나의 몸으로 세상에 나오며, 그 몸과 함께 평생을 살아가는가.


생각해 보면 누구도 자신의 몸을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건강한 몸으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다른 조건을 가진 몸으로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젊은 시절 강한 몸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통해 이전과 다른 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몸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도 몸이라는 조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몸은 특별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삶의 조건이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어떤 몸을 좋은 몸이라고 부르고 어떤 몸을 부족한 몸이라고 판단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몸,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몸,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몸을 더 완전한 것으로 생각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런 기준 안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보다 오래 걸리는 시간은 부족함처럼 느껴졌고,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은 나의 약함을 드러내는 것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알게 되었다. 완전히 독립적인 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의 돌봄 속에서 살아가고, 성장하면서 수많은 관계에 기대어 살아가며, 결국 늙고 병드는 과정에서 다시 다른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약해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생명이기 때문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오히려 몸의 한계는 인간의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할 이유가 되고, 내가 도움을 받는 순간은 나의 열등함을 확인하는 시간이 아니라 인간이 서로 기대어 살아간다는 생명의 방식을 배우는 시간이 된다.


돌이켜보면 내 몸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어린 시절 넘어지며 생긴 오른쪽 무릎의 희미한 흉터, 오랜 시간 무언가를 붙잡고 만들어온 손가락의 변화, 남들과 다른 속도로 세상을 걸어오며 닳아진 신발 밑창의 기울기까지 그 모든 흔적은 단순한 상처나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시간의 기록이었다. 다른 사람의 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얼굴에 깊어진 주름에는 지나온 계절이 있고, 거칠어진 손에는 노동의 시간이 있으며, 굽어진 허리에는 견뎌온 삶의 무게가 담겨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몸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신체적 특징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왔는지, 무엇을 견디고 무엇을 사랑하며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지를 바라보는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왜 내가 이 몸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다. 이 몸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가. 그리고 서로 다른 몸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함께 존재할 수 있는가.

어쩌면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깊은 질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일 함께 살아가면서도 너무 익숙해서 바라보지 않았던 이 몸에서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


내가 이 몸으로 살아온 시간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자신의 몸을 통해 세계와 만나고, 다른 존재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질문이다.


나는 왜 이 몸으로 살아가는가.


아마 이 질문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시작되는 질문일 것이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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