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여행

김녕해안선을 걷다가 비바람에 지다.

by오션펌킨

어제 하루 종일 혼자 산속을 헤집고 다녔더니 사람이 그리웠다. 탁 트인 시야에서 오며 가며 사람 구경도 할 수 있는 곳을 가고 싶었다. 그렇다면 바다로 가자.

걸으면서 바다를 볼 수 있고 쉬면서 사람 구경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김녕과 함덕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올레 19구간 길을 걷기로 계획했다. 햇볕 쨍쨍하던 어제와는 다르게 습하고 흐린 일기가 불안했다. 걷다가 비가 오면 우산 쓰고 걸으면 되겠지.

올레 19구간 시작 지점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불안감이 커졌다. 비가 오는 모양새가 가볍지 않았다. 하루 종일 올 수도 있겠는데?!

일단 시작했으니 가보자.

불길한 예감을 뒤로하고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섬 제주도는 사면이 바다인데, 가는 곳마다 그 모양새가 다 달라서 어디를 가서 보아도 식상하지 않았다. 김녕 바다는 아늑한 느낌의 바다였다. 부슬비가 내리니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시작 지점에서 잠시 머뭇거리는 동안 우비를 단단히 챙겨 입은 여행자가 지나갔다. 성큼성큼 걷는 걸음이 한두 번 여행한 모습이 아니었다. 앞사람이 있으면 같은 길을 따라 걸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워낙에 보폭이 커서 금방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귀신을 본 것은 아니겠지?!

해안선을 따라 걷는 중에 빗줄기가 굵어지고 파도가 거칠어졌다. 해안 가까이에 위치한 올레길은 거친 파도에 사람이 휩쓸려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여행자는 나밖에 없는 상황이 조금 두려웠다. 올레길 경로를 따라 걷고 인증을 하고 싶었지만 안전한 여행을 위해 차가 다니는 길로 나갔다.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걷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여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왔던 큰길을 찾아 나왔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 옆으로 천천히 걸었다. 지나가는 차들이 오히려 조금씩 옆으로 비켜 가는 듯했다.

하얀 우비를 입은 사람이 거친 빗속을 걷고 있으니 그들도 무서울 수 있겠다 싶었다.

김녕 바다를 시작으로 함덕해수욕장까지 걸어가서 함덕 해수욕장에 발을 담그고 놀 생각이었다. 바닥만 보며 국도를 걷고 있는데 나타난 표시에 반가웠다. 이 길만 따라가면 함덕해수욕장이 나오는 것은 확실하다는 뜻이다. 얼굴을 때리는 비 때문에 바닥만 볼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불어 우비가 펄럭거려서 바지와 신발도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배낭 속 전자기기들이 걱정이 되었다. 우비를 입고 배낭을 우비로 감싸놓았지만 비가 어디를 파고들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걸으며 지나가는 동네가 예뻐서 사진을 찍고 싶어도 손이 비에 젖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도 쉽지 않은 상태였다. 빗방울이 튀어 있어서 버튼이 잘 인식되지 않아 카메라 어플을 눌러도 실행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바다 뷰를 보면서 쉬어갈까 잠시 갈등을 했지만 카페가 아직 영업을 하지 않았다. 불이 켜져 있어서 혹시나 기대했었는데,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 유명한 런던베이글 카페였다. 그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버릴까 고민도 했다. 눈 질끈 감고 지나쳤다. 갈 수 있을 때까지는 가보자.

국도를 걷다 보니 지루하기도 하고 비가 잦아드는 것 같아서 동네로 들어왔다. 아기자기한 집들과 소박한 상가들이 있었다. 올레길을 걷는 여행자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 같았다. 일일이 지도를 찾아 확인해 볼 수 없었지만 예쁘게 꾸며진 작은 카페가 있고 해산물을 파는 작은 점포가 있는 것을 보니 그렇게 추측이 되었다.

마을을 통과해서 다시 국도로 나가는 길이 연결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왔던 길을 다시 돌아서 나가야 했다. 육지의 도심처럼 모든 길이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함덕해수욕장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편의점을 찾았다.

함덕해수욕장에 도착하면 가족여행 때 들렀던 카페에서 멍 때리기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몰골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 많은 카페에서 물에 빠진 생쥐 같은 꼴로 매장 안에 들어서는 나를 반기지 않을 수 있겠다 생각하니 정돈을 해야 했다. 함덕해수욕장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다행히 편의점이 있었다. 슬리퍼를 한 켤레 샀다. 하얀 양말도. 우비도 한 장 더 구매했다. 배낭이 이미 물을 흠뻑 머금고 있지만 배낭 속 전자기기나 소지품들까지 망가질까 걱정스러워 배낭만 따로 우비를 입히기 위해서였다.

편의점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장비를 재정비했다. 무거운 등산화를 벗어버리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배낭에 우비를 입혔다. 우산은 접어버리고 몸에 꼭 맞게 우비를 입었다. 신발은 양손에 한 켤레씩 들고 본격적으로 비를 맞으며 걸었다.

물 웅덩이가 나와도 거침없이 걸었다. 슬리퍼를 신은 맨발에 닿는 물의 촉감이 좋았다. 아이가 된 느낌이랄까.

어릴 때는 비를 맞으며 신나게 뛰놀기도 했었던 기억이 있다. 실내에서 빗소리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불편함을 조금 견뎌내면 비는 충분히 감성을 살려주는 매개인데, 언제부터 비 소식이 반갑지 않게 되었을까.

드디어 도착했다. 함덕해수욕장이다. 에메랄드빛 바다색이 매력적인 그 바다.

이른 봄에 가족들과 함께 왔을 때, 온전히 이 분위기를 누리지 못했던 것이 아쉬워 일부러 다시 한번 찾아왔다. 비가 그치지 않아 무거운 배낭을 메고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았다. 직접 바다를 느끼고 즐기고 싶었다. 한참을 파도에 발을 내어놓고 서서 망망대해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파도가 출렁이며 발을 간지럽히는 촉감을 느끼며 어린 시절 부모님과 바닷가에서 텐트를 쳐놓고 놀던 때가 떠올랐다. 어린 동생은 파도가 자기 앞으로 밀려오는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양 발을 달랑 들어 엄마 품에 안겼던 장면도 떠올랐다.

결국,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기억나는 것은 추억 한 조각이다. 파편 같은 기억 한 조각으로 행복해진다. 같은 장소는 아니었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를 즐기는 순간은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듯했다. 우산을 쓰고서 한참을 서서 바다를 내다보던 이들이 하나둘씩 신발을 벗고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결국 동일한 마음이었지 않았나 싶다.

충분치는 않았지만 젖은 배낭과 옷을 말리기 위해서라도 카페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민폐가 될 것 같아 걱정스러웠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카페에서 가장 외진 구석으로 들어가 2인용 테이블을 찾아 자리 잡고 앉았다. 우비를 벗어서 펼쳐놓고 배낭을 열어 젖은 물건들을 하나 둘 테이블에 꺼내어 놓았다. 신발도 카페 구석 화분 뒤쪽에 살짝 세워 두었다. 솔직히 두어 시간 있을 작정으로 들어왔다. 쫓아내지는 않겠지.

비 맞은 생쥐꼴로 들어오긴 했지만 주변을 정리해 놓고 따듯한 음료를 받아놓고 나니 실감이 났다. 내가 오고 싶어 했던 카페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사색에 잠겨 시간을 보내고자 했지만 처음에는 몰입이 되지 않았다. 축축한 옷과 젖은 몸이 상쾌한 느낌이 들리는 없으니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천천히 나만의 세계로 스며들어갔다.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여행을 왔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니 외롭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파고 들어온다. 그럴 때마다 온전히 그 외로움을 직면하려 했다. 왜 외로운 건가? 그 외로움의 근거가 무엇인가? 오직 혼자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것인가? 쓸데없지만 그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답을 찾을 때가 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들과 한꺼번에 왔던 제주 여행에서 남은 것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부모님이 더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면 가족여행을 갔던 기억들을 가지고 추억을 곱씹을 수 있게 해드리고 싶어서 기획했던 여행이었다. 하지만 바쁜 일정에 쫓겨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었고 목적지에 가서는 그곳을 즐기기보다는 게임에서 도장 깨기 하듯 관광지를 찍고 돌아오는 경우가 더 많았다. 천천히 사색하며 온전히 제주를 즐기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여행의 방식과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이후로 가족 여행을 기획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여행의 의미는 꼭 좋은 곳을 가서 보고 경험하는 것만이 아니다. 함께 하는 여행은 "함께"에 의미가 더 크다. 같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느끼며 나누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차라리 자주 식사하는 자리를 만들고 빈번하게 만나는 것이 더 좋은 일일 것 같다고 판단했다.

휴식을 원하는 여행이라면 혼자 여행이 옳은 선택이었다.

나 외에는 신경 쓸 것이 없고 내 생각만 하면 되는 여행, 심심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에 많은 것을 치유받았다.

슬롯생활을 하면서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에 의지해 모든 기준을 타인에게 두었던 나를 발견했던 날, 다리에 힘이 풀리고 주저앉아 일어설 기력조차 없었다. 일어설 이유조차 찾지 못했었다.

남들에게 맞추며 살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가? 나는 왜 살고 있는 것인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왜 이 세상에 나온 것일까? 누가 나를 이곳으로 떠밀었을까?

답이 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었다. 답은 찾을 수 없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착한 사람이 되려고 했고 조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지인들에게 편한 사람이 되어 주려고 했다. 가족들에게는 적당한 희생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없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나. 는. 전. 혀. 행. 복. 하. 지. 않. 다."였다.

행복하지 않은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일까?

신이 있다면 나는 어떤 도구로 쓰일 존재였을까? 그 쓰임이 나에게 만족감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반발할 수 없는 것인가? 이렇게 주어진 대로 살다가 운명이라는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기고 죽을 때까지 끌려가야 하는 것인가?

어차피 소가 목줄 메어 끌려가듯 살아야 하는 삶이라면 나는 왜 굳이 삶의 험한 꼴들을 모두 보며 살아내야 하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서?

답이 없는 질문들을 계속해서 되물으면서 나를 괴롭히던 어느 날,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끌려가는 삶은 살기 싫어. 그렇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을 잡아서 가야겠어. 스스로 선택해서 가는 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신이 있어서 내가 가려는 길을 가로막는다면 싸워보자. 만물을 창조하신 절대자가 나약한 인간이 가는 길을 막을 일도 없을 것이고 막는다고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렇다면 내 앞길에 가장 큰 적은 나를 과소평가하는 나 자신과 나를 질투하는 타인들이다. (이 지점에서는 가족도 타인이다.)

외부의 자극은 모두 무시하고 온전히 나의 내면의 소리에만 집중해 보자고 결심을 했다. 흔들리겠지만 그럴 때마다 그날의 결심을 기억하고자 일기를 써놓았다.

홀로서기를 작정하고 주변 정리를 시작했고 혼자 여행을 하는 일이 일상처럼 여겨지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전히 홀로서기를 하는 중이긴 하지만 이제는 특별한 자극이 없는 한 고독을 즐길 줄도 알게 되었다. 주변에 가족이나 친구들은 당장 변화를 느끼진 못했다. 나 또한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았고 흐르는 시간에 나를 맞기며 나의 다짐을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제법 어른스러워진 나를 발견했다. 사람다워지고 어른다워지고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타인을 돕는데 눈치 보지 않는다.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에게 입바른 소리도 던질 줄 아는 용기가 생겼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당당하게 말할 줄 알게 되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화를 내지 않게 되었다. 나와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상대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날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감이 몰려온다.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고 나의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은 나의 자존감도 상승시켰다.

나를 좋아하는 내가 좋다.

폭우로 인해 걷는 것은 중간에 포기했지만 오히려 잔잔히 내 안의 소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슬리퍼를 신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기는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카페와 가까운 버스정류장을 찾아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 시간도 이미 늦은 오후였다. 다섯 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제주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저녁이라도 든든하게 먹기 위해 근처 식당에 들렀다.

식당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혼자 들어온 나를 한 번씩 돌아보기도 했지만 어색함은 잠시뿐이었다. 따뜻한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장비를 풀어서 정비해 놓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났더니 모든 근심이 사라졌다.

피곤함 보다는 뿌듯한 감정을 안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아주 행복한 꿈을 꿀 것 같은 기대를 안고.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