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르냐고 물으면 그냥 웃지요
오래전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실연의 아픔을 씻어 내고자 제주 한라산을 오르는 장면이 연출됐다.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였고 그 주인공들은 지금도 영광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드라마 때문에 한라산을 가보고 싶어 했던 것이 맞다. 15년 전 자전거로 제주도 한 바퀴를 돌 때 5박 6일 중 하루, 한라산에 갔다가 그 후로 제주도는 한라산을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한라산 때문에 제주에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터미널에서 첫차를 타고 출발지에 도착했다. 예전 같지 않은 체력 때문에 한라산 완주까지 얼마나 걸릴지 확신할 수 없어서 일찌감치 출발했다. 힘들면 쉬엄쉬엄 갈 요량으로 말이다.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뒤따라 내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비가 내리고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들 우비를 꺼내 입고 배낭에 방수 커버를 씌우고 신발을 정비하고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나도 그들과 같이 채비를 마치고 입구에 섰다.
그런데, 아차차.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았다. 캐리어에 넣어둔 지갑에 신분증을 두고 교통 카드 한 장만 들고 왔던 것이다. 대략 난감, 아니 어찌할 바를 몰라서 몸이 떨렸던 것 같다. 다행히 출입관리인의 도움을 받아 모바일 신분증을 찾아서 문제없이 등산을 할 수는 있었지만 그 찰나의 감정은 설명할 수가 없다.
입구에서 출입허가를 받는데 시간을 소요한 것 때문에 초반에는 부지런히 걷는데 집중했다. 그래도 놓칠 수 없는 장면들은 멈춰 서서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육지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들만 담는다고 해도 바빴다. 특히 입구부터 비가 와서 우비를 입었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볕이 비치는 장면은 놀라운 장면이었다.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어 근심이 있었는데 한라산을 오르는 동안 다 잊고 있었다.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하는 시간이 몇 시인지에 따라 하산의 시간이 결정되기 때문에 부지런히 올라왔다. 내리던 비는 사라지고 뜨거운 볕이 기다리고 있었다. 간식도 먹고 젖은 배낭도 말리기 위해 편한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바람막이도 벗어서 펼쳐 놓고 배낭도 입을 활짝 벌려 놓았다. 전자 기기들도 혹시 젖지 않았는지 확인 후 밖으로 꺼내 놓았다. 메고 온 짐을 정돈한 후에 간식을 꺼내어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물만 마셔도 꿀 맛이었다.
축축한 옷과 신발이 적당히 말랐을 때 정상까지 가기 위해 다시 일어섰다. 100미터마다 표지석이 꽂혀 있어서 높이가 어디쯤 인지 알 수 있게 해 두었다. 높이가 높아질수록 생물의 종류가 달라지는 신기한 현상을 직접 보는 재미도 있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무들 사이에 바짝 마른 통나무를 볼 때마다 생과 사가 함께 공존하는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 들어 신비롭다. 한라산을 올 때마다 느끼지만 그때마다 신비롭다. 이 위치쯤 오르면 하산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언제 올랐는지 모르겠지만 부지런히 걸어 내려오는 사람들은 오르고 있는 사람들을 응원해 준다. 반갑게 먼저 인사를 해 주고 말을 걸어 준다.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숨이 턱에 차 오르지만 답례를 꼭 한다. 그러면 상대는 웃으며 지나간다. 숨찬 그 느낌을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어 준다.
한라산 정상은 끝까지 계단으로 되어 있다. 그 위치에 오면 모두 속도를 늦추고 뒷짐을 지고 바닥을 보며 걷는다. 숨이 거칠다. 심호흡을 한다고 해도 쉽게 가라앉질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포기하지 않는다.
드디어 정상이다. 10여 년 전에 왔을 때는 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제 하루 종일 비가 왔는데도 백록담에는 물이 고여있지 않았다. 속을 다 내비친 백록담은 신비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한라산의 정상이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으니 실망만 할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증숏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동안 편하게 앉아 푹 쉬었다. 가족과 함께 왔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잠깐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 명이 넘는 인원이 사발면에 뜨거운 물 부어놓고 라면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던 순간이 기억났다. 얼마나 맛있을까 기대하며 힘든 생각들 씻은 듯 사라지던 그 시간이 생각나서 흐뭇하게 웃었다. 평소 같으면 살찐다고 국물은 다 버렸을 아이들도 환경오염 시킨다며 오히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라면국물을 다 마시던 순간, 그런 아이들 바라보며 흐뭇해하던 어른들까지. 영화 상영관에서 필름 돌아가는 것처럼 기억의 파편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상념에 잠겨 식사를 마치고 이제 하산을 준비했다. 올라온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하산을 하기로 했다. 관음사 방향은 성판악 방향과 풍경이 또 다르다. 그 맛에 산을 오르는 것 아니겠는가.
관음사 방향으로 하산을 하게 되면 한라산 백록담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 한라산과 연결되어 소 등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대한 오름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어 일부러도 하산 방향을 관음사 쪽으로 잡기도 한다.
등산객들을 위해 계단으로 길을 잘 정비해 두긴 했지만 가파른 경사를 이길 수는 없었다. 내려오는 내내 경관을 보느라 힘든 줄 모르고 걸었지만 사진 속 출렁다리에 와서는 갈등이 생긴다. 다 내려간 줄 알았던 길을 다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후퇴할 수 없어 힘들어도 오르긴 하지만 불특정 누군가에게 불평을 하곤 한다. 기왕이면 내리막으로 만들어 두지... 하고 말이다.
몸이 힘들면 정신이 또렷해진다. 생존을 위해 뇌가 긴장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더위에 지치고 긴 산행으로 피로한 몸은 반응 속도가 느리다. 순발력도 떨어져서 자칫 방심하면 다칠 수가 있다. 그래서 오히려 몸의 모든 신경 세포가 바짝 긴장을 하고 있다. 오로지 나 자신에만 집중된다.
고민거리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산을 내려오면 머릿속이 정화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 발 한 발 조심해서 내려오다 보니 대피소에 도착했다. 쉬지 않고 내려가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만 남겼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비를 품고 있는 구름이다. 이 지점부터는 다시 비를 맞을 각오를 해야 했다. 정상은 볕이 뜨거운데 산 허리 아래에서는 비가 오는 현상이 신비롭기도 하지만 지친 몸으로 하산사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
외줄 레일이 산 꼭대기까지 놓여 있어서 사용처가 궁금했었는데, 환자나 식량을 실어 나르는 것 아닐까 추측만 해 보았다. 그 정류장이 여기구나. 하산하다가 실족한 일행을 이 레일 위에 실어서 내려보낸 적이 있다는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이 레일을 타고 내려갔겠지?
한라산에서 소나무를 보기가 쉽지 않은데, 이곳에서만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는 모습도 위풍당당해 보인다. 한라산의 다른 곳에는 없는 소나무가 왜 이곳에서만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지 궁금했다. 한라산의 기후가 동서남북 사방이 다 다를 수도 있다는 뜻일까?
하산 지점이 가까워질수록 빗방울이 거칠어졌다. 다시 우비를 꺼내 입기는 귀찮고 빨리 내려가자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안개가 점점 짙어지고 바로 코 앞에 사람이 있어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산을 하는 사람들이 지쳐서 쉬는 곳은 일정해서 다행히 몇몇 곳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다들 지쳐서 걸음도 잘 걷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행들이 부축하기도 하고 독려하면서 함께 끝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혼자 산 속을 헤매다가 잠깐씩 사람들을 발견하면 반갑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감도 든다. 홀로 산행을 마치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포기하지 않고 투덜대지도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완주해 낸 자신을 대견하다 말해줬다.
한라산을 완주할 때마다 느끼지만 체력만으로 오를 수 있는 산도 아니다. 체력도 필요하지만 완주해야 뭔가 깔끔하게 결말이 날 것 같은 어떤 이슈가 있을 때 와 볼 만한 산이다.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끼기 직전까지 나를 몰아붙이고 피로감에 정신없이 쓰러져 깊은 잠을 자고 나면 어제와 다른 나로 깨어나곤 했다. 새로운 날, 새롭게 생각을 정리하려고 돌아보면 보다 더 객관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무엇이었는지 속살을 들여다보게 된다. 나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용기도 생긴다. 외부의 자극 때문인 건지 내 안의 결핍 때문인 건지 구분을 할 용기가 생긴다. 그러면 더욱 객관적으로 나를 살필 수 있게 된다.
나의 못난 모습을 대면할 수 있게 되면 그 때야 비로소 고민의 뿌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번 일은 나의 욕심이 컸다. 일을 잘할 것 같은 사람과 함께 일하면 시너지가 나서 혼자 하는 것보다 좋은 결과를 빠르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사람들이 나의 가치관과 윤리관에 벗어난 사람인 것에 실망을 했다. 실망감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관계를 단절하기로 결정했고 통보했다. 상대방은 당황스러워했고 나의 생각을 과몰입으로 몰고 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너무 멀리 갔다는 말이다.
반백년을 살았고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가 있는데, 사건이 벌어지기 전 전조증상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 증상이 없을 때에도 느껴지는 싸함은 돌아보아야 한다. 왜 싸한지, 왜 등골이 오싹한 것인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물론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슬픈 예감이 틀린 적 없듯이 싸한 기분은 결국 정체를 드러내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전에 단절하기로 했다.
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본성은 변할 수 없다. 잠시 감출 수는 있지만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다. 나중에 일이 벌어지고 나서 후회하는 것보다 애초에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맞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나쁜 사람을 걸러내는 것이 먼저다.
내 곁에 독을 뿜어내는 사람을 놓고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숙소로 돌아와 젖은 옷과 배낭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워 사진을 보면서 하루를 돌아보았다. 복잡했던 생각도 이미 정리가 되었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의 문제가 아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억지로 맞춰가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결단을 빠르게 내렸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처음 얼마간은 함께 일하면서 사업이 잘 풀렸을 수도 있다. 서로의 장단점을 맞춰 가면서 일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그 끝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이 든다. 그래서 후회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