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오지심을 통한 슬롯복지 실천(2)

왜 부끄러운 줄 모르는가?

by오아시스
사생취의(捨生取義)
생선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곰발바닥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생선을 버리고 곰발바닥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고 의로움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얻을 수 없다면 삶을 버리고 의로움을 취하겠다.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원하는 것이 삶보다 더한 것이 있다. 그러므로 삶을 구차히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며, 죽음도 내가 싫어하는 것이지만 싫어하는 것이 죽음보다 더한 것이 있다. 그러므로 환난이 와도 피하지 않는 것이 있다. 만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삶보다 더한 것이 없다면 삶을 살기 위해 무슨 방법인들 쓰지 않겠는가. 만일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 죽음보다 더한 것이 없다면 환난을 피하려고 무슨 짓인들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원하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한 것이 있으며, 싫어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한 것이 있다. 오직 현명한 사람만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지만, 현명한 사람은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맹자》「고자」편

맹자는 왜 하필 생선을 버리고 곰발바닥을 취했을까? 《맹자》에서 생선과 곰발바닥은 단순히 선호하는 음식을 비유한 게 아니라 살면서 충돌하는 여러 가지 가치들 가운데 무엇을 최우선으로 선택해야 하는가를 쉽게 설명하기 위한 맹자의 위트(wit)다. 생선은 맹자가 살았던 당시에는 매우 흔하면서 맛도 있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원하는 가치나 이익을 상징한다. 요즘 말로 하면 ‘소확행’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반면 곰발바닥은 쉽게 구할 수 없는 매우 진귀한 음식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가치보다 더 높은 가치를 상징한다. 맹자는 ‘생선=삶’과 ‘곰발바닥=의로움’의 비유를 통해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에도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삶 자체도 소중하지만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의로움(義)이 삶보다 더 높은 가치라고 말하는 것이다.


맹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고 인정한다. 그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맹자는 ‘삶도 내가 원하는 것이지만, 원하는 것이 삶보다 더한 것이 있다.’라고 말한다. 인간은 단지 오래 사는 것만을 최고 가치로 여기지 않는다. 삶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바로 의로움이 있다. 의(義)는 단순히 정의나 법 따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면서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는 것, 부끄러움을 알고 올바름을 선택하는 것, 도덕적 신념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또한, 맹자는‘죽음도 싫어하지만 죽음보다 더 싫은 것이 있다.’라고 말했다. 죽음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것이지만 죽음보다 더 두려운 일이 있으니, 그것은 인생을 비겁하게 사는 것, 양심을 버리고 불의를 행하는 것, 의를 저버리고 이익을 택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정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약자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며,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사생취의(捨生取義)의 정신이다. 만약 사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라면 사람들은 거짓말도 하고, 비겁한 일도 서슴지 않을 것이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으려고 애쓸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만 보아도 자신의 안위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선택한 사람들이 분명 존재한다. 맹자는 의로운 사람은 구차하게 삶을 구걸하지 않고, 환난이 닥쳐도 피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운 사람들,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외친 사람들, 자신의 이익보다 양심에 따라 판결한 정의로운 판사들,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소방관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맹자는 이러한 사실들이 삶보다 더 귀한 도덕적 가치가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말하면서, 모든 사람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맹자는 양혜왕이 나라를 이롭게 하는 방법을 물었을 때 대답 대신에 “하필이면 이익을 말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나라를 잘 다스리는 방법은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로 (사적)이익은 불화와 갈등의 원리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사대부가 서로 반목(反目)하게 되고 백성들 또한 서로 갈등하게 됨으로써 온 나라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인의는 조정과 화평의 원리로써 사대부와 백성들이 서로 화합함으로써 나라가 평화롭게 다스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슬롯적 혼란은 권력자들이 자기 나라와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했기때문에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을 직접 목격한 맹자는 사적인 이익을 철저히 배격했다. 하지만 맹자가 이익을 배격했다고 해서 경제적 이익을 내팽개치고 슬롯정의만을 우선한 것은 아니었다. 맹자도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정치사상가였고 윤리와 도덕은 경제적 토대가 보장됐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곳간이 차야 인심이 난다”는 논리를 너무나 잘 알았으며 그래서 ‘무항산 이면 무항심’이라고 했던 것이다. 《주역(周易)》에서는 ‘이(利)는 의(義)에 부합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각자의 이익이 조화를 이루면 그것이 바로 정의와 일치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익을 지나치게 정의와 대립시킬 필요는 없다. 각자가 자신의 정당한 이득이나 몫에 만족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정의에 부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지금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슬롯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로움(利이)을 추구하는 것은 마땅하게 가야 할 길이다. 이로움은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이익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이익을 배려하고 자신이 속한 조직과 국가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이로움에 해당한다. 그래서 사적인 이익에만 몰두하지 않고 공적인 것에도 너무 치우치지 않는다면 살면서 이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당연하고 마땅히 그래야 함은 무조건적인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우리는 의로움(義의)이라고 일컫는다. 의로움은 일반적인 행위를 도덕적 행위가 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요인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을 걷다가 길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발견했을 때,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그냥 슬쩍할까?’라는 욕망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런데 이때 마음속 깊숙이 양심이라는 것이 등장해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속삭인다. 남의 물건을 훔쳐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일은 단순히 도덕에 반하는 행동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이 불쌍해서 그런 마음이 든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의 욕망은 보통 이기심으로 이어진다. 혹여 양심을 따르지 않고 무시하더라도 양심의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기심을 초월해서 사고하는 본능이 이미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면서 의(義)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어울려 양심에 따라 이로움을 추구하며 함께 성장한다. 살다 보면 무엇이 이로움인지, 또 무엇이 정의로운지 판단해야 일이 매번 발생한다. 그러니까 맹자는 삶의 의로움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할지에 대한 수오지심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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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복지사, 호는 사천(沙泉), 윤동주와 쇼펜하우어를 동경하는 염세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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