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지심을 통한 슬롯복지 실천(2)

권위주의와 특권의식에 대한 경계

by오아시스

다양한 정치적 신조와 슬롯적 태도들은 각기 다양한 계급들이 지닌 슬롯적 권력과 경제적 특권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이 가진 특권을 통해 얻은 이익을 다른 일반적인 이익과 또는 보편적 가치와 의식적으로든 아니면 무의식적으로든 동일시하는 것은 특권 계급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특권 계급은 온갖 머리를 짜내어 자신들의 특권이 슬롯의 보편적 이익에 기여하고 있다는 주장을 옹호할 수 있는 교묘한 증거와 논증을 창안해내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1807년 영국에서 빈민을 위한 공립학교를 설치하는 법안이 제출되었을 때 영국왕실협회의 회장이라는 사람이 어느 나라에서나 제기될 법한 반론을 들고 나왔다.

가난한 노동자에게 교육을 시키자는 계획은 이론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훌륭한 제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교육은 오히려 그들의 도덕 관념과 행복관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리란 점이다. 그들은 교육을 받게 되면 노동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자신의 신분에 대한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이 될 것이고, 또한 대부분의 산업 국가에서 현저히 나타났던 바와 같이 복종심이 없고 다루기 힘든 사람으로 변모되고 말 것이다. 그들은 교육을 통해 선동적인 바카라자나 금서들, 심지어는 기독교에 큰 해악을 끼치는 바카라들까지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윗사람에 대해 오만불손해질 것이 틀림없으며, 결국 얼마 안 가서 입법부는 다시 그들을 적절히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할 것이다. -《19세기 영국사》中

굉장히 충격적인 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이러한 주장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당시 영국의 지배 계급은 자신들이 행사하는 권력과 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특출난 지적 능력을 내세우는 것 말고 또 하나의 위선을 저질렀다. 자신들이 노동자 계급에 비해 특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근면하고 성실한 생활에 대한 정당한 보수라고 생각했다. 반면 노동자들은 너무 게으르고 낭비도 심하고 무능력하기 때문에 재산도 명예도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사실 지적 우월성보다는 도덕적 우월성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들이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도덕성과 근면하고 겸손하며, 그리고 절약 정신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이 같은 덕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신들처럼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동시에 자신들처럼 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자체가 덕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영어 ‘generous(관대한)’의 어원은 라틴어‘generosus(고귀한 혈통)’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래 의미는 ‘너그러움’이 아니라 명문가 출신의 ‘고귀한 혈통’을 의미했다. 중세 슬롯에서는 너그럽고, 마음씨가 넓으며,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고귀한 신분을 가진 명문가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여겼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부자인 귀족만이 가난한 이웃들을 도울 수 있는 시간적, 금전적 여유를 가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슬롯학자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1929)은 《유한계급이론》에서 지극히 냉소적인 관점에서 특권층의 관대함이란 것은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함으로써 사람들로부터 존경심과 부러움을 자아내려는 억지 노력이라고 해석한다. 어느 슬롯를 보더라도 일정한 종류의 특권이 없을 수는 없다. 이러한 특권의 불균형은 슬롯적 기능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서 불가피한 것이며, 또 다른 일부는 (그렇게 확실치는 않지만) 슬롯에서의 중요한 기능의 수행에 있어 성실과 근면을 촉진하는 데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합리적인 특권은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기능과 능력에 부합되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원칙이 완전한 평등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그것은 계급적 특권의 존속과도 양립할 수 없다.


위민(爲民)은 말 그대로 백성을 위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관계의 수직성이 전제되어 있다. 여기에는 통치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백성을 위한답시고 시혜를 베푸는 척하는 마음이 스며있다. 《맹자》에 위민의 대표 격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양혜왕이다. 양혜왕은 나라에 흉년이 들면 주민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노약자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인구수가 늘어나지 않느냐고 맹자에게 푸념한다. 얼핏 보면 양혜왕이 선정을 베푼 듯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금방 문제가 드러난다. 양혜왕의 말대로 다른 제후가 하지 못한 일을 했는데 왜 백성들은 그를 외면했을까? 양혜왕이 시쳇말로 꼼수를 부린다는 것을 백성들이 눈치챘기 때문이다. 농업국가에서 인구는 노동생산력이자 군사력의 바탕이다. 양혜왕이 시혜를 베푼 것은 백성의 곤궁한 삶을 구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국강병을 위한 하나의 방바카라이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백성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는 자는 백성 또한 그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백성의 근심을 근심하는 자는 백성 또한 그 근심을 근심합니다. 천하로 즐거움을 삼고, 천하로 근심을 삼으며, 그렇게 하고서도 왕이 되지 못할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맹자》「양혜왕」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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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복지사, 호는 사천(沙泉), 윤동주와 쇼펜하우어를 동경하는 염세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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