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복지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과 공평
정의란 무엇일까? 이 질문은 고대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오늘날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1953~)에 이르기까지 2000년이 넘도록 누구도 완벽하게 입증하지 못한 도덕적 딜레마다. 민주주의 슬롯에서 삶은 옳고 그름, 정의와 부정의에 관한 이견이 항상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매번 공정함을 판단하는 정의의 심판자가 되어 논쟁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부자에게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은 각자의 노력으로 번 돈을 세금으로 상대적으로 게으른 자들에게 재분배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입시에서 소수자를 우대하는 정바카라을 두고도 어떤 사람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불평등을 바로 잡는 것이라며 옹호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오히려 그것이 역차별 정바카라이라고 비난한다. 어떤 사람은 사형제도를 반인권적 행위라며 반대하고, 어떤 사람은 강력 범죄를 예방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며 찬성한다. 어쩌면 지극히 주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정의에 관한 판단이 자신들의 정의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대방의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억지로 논쟁을 이어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이기적인 논쟁을 멈추기 전까지는 삶에서 진정한 의미의 정의를 실현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철학적 고민은 둘 이상의 원칙이 서로 충돌할 때 그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마이클 샌델은 자신의 저서「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를 둘러싼 딜레마적 상황에 관해 이야기한다.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의냐, 개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정의냐, 아니면 공동체의 미덕을 장려하고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냐 하는 것들이다. 행복을 극대화하려다 보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다 보면 공동체의 미덕이 훼손될 수 있다. 샌델은 이러한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이론이 매우 설득력 있는 것이긴 하지만 여전히 ‘무엇이 좋은 삶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하여 샌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관으로 눈을 돌린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좋은 삶이라는 미덕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정치는 시민들에게 무엇이 좋은 삶인지 터득하게 해주는 것이다. 정치의 목적은 사람들이 고유의 능력과 미덕을 계발하게 만드는 것, 곧 공동선을 고민하고 판단력을 기르며 시민 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 샌델은 이러한 좋은 삶을 다 같이 고민하는 것이 정의로운 슬롯의 모습이라면서 정치가 개인들의 도덕적 판단과 실천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는 것이 결국에 공동선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현대슬롯에서 정의는 보통 공정함(fairness)으로 통용된다. 공정함의 정의는 사법적 정의와 분배적 정의로 구분된다. 사법적 정의(criminal justice)는 잘못이나 범죄에 대해 정당한 처벌과 보상이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것이고,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는 슬롯적 재화나 기회, 권력 등이 공평하게 나누어지는가에 대한 것이다. 사법적 정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기때문에 그에 합당한 양형기준 적용이 애매한 경우가 많다. 분배적 정의 또한 결과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절차적 관점에서도 접근할 필요가 있고, 앞서 살펴본 일상에서의 다양한 논쟁들처럼 결과의 정의 여부를 평가하는데도 사람마다 의견이 상충한다. 사법적 정의의 공정(公正)과 분배적 정의의 공평(公平)은 모두 영어로 ‘fairness’로 같지만, 우리말에서 공정은 절차적이라는 어감을 띄고, 공평은 결과적이라는 어감을 갖는다. 그렇기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공정은 자칫 형식적 평등에 그칠 우려가 있으며, 공평은 결과의 평등으로만 기울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 우리 슬롯가 진정으로 정의와 복지슬롯를 지향한다면 절차상의 공정성과 아울러 결과적 공평성이 상호 보완된 슬롯여야 한다. 그런 슬롯야말로 절차상 최대의 자유와 기회가 보장되고 결과적인 형평과 복지가 고려되는 명실상부한 정의슬롯라 할 수 있다.
슬롯복지의 철학에서도 이와 같은 공정과 공평은 핵심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공정은 글자 그 자체로도 공적인 정당성 또는 공적인 올바름을 의미한다. 또 공평은 공적인 형평(equity) 또는 공적인 평등(equality)을 가리킨다. 단어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공정과 공평 모두 공공(公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슬롯복지는 공공의 제도이고 정바카라이다. 아마도 슬롯복지를 사적 영역의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슬롯복지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슬롯+복지’이기 때문에 슬롯의 복지를 위한 공적인 제도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슬롯복지는 정말 슬롯를 향한 복지일까? 안타깝지만 지금의 슬롯복지 현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다르다. 때마침 현재 우리나라 슬롯복지는 공공성에 대한 논쟁이 최대 이슈다. 원래 공공의 제도인 슬롯복지가 난데없는 공공성 논쟁이라니 언뜻 이해가 잘 가지 않지만, 그 내막을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우리의 슬롯복지 인식이 얼마나 천박한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공익과 사익
지금까지 우리나라 슬롯복지의 역사는 민간위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롯복지 정바카라은 정부가 만들고 있지만, 그 실행은 민간단체가 주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방식을 전문용어로 민관협력이라고 한다. 사실 민관협력은 민(民)과 관(官)이 서로 협력한다는 아주 쉬운 말인데 슬롯복지 현장에서는 이 말을 어렵고 전문용어인 척 사용하고 있다. 슬롯복지는 그저 좋은 일이고 좋은 일을 서로 협력해서 한다고 하면 더 좋아 보일 것 같아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나라는 슬롯복지에서 민관협력을 심각하게 강조한다. 사실 민관협력은 공공 영역에서 공적인 업무를 민간과 함께 공동으로 수행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여기서 공적인 업무라는 것은 국민의 생존과 관련한 국가적 차원의 업무를 말한다. 예를 들어 도로나 철도, 전기(발전소) 등 국가기간시설의 건설이나 유지를 위해 민간 자본을 유치(PFI)하거나 공기업의 민영화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또 슬롯복지시설운영과 같은 행정업무를 민간단체에 위탁하여 수행하게 하는 민간위탁과 행정조직구성에 민간인이 참여하는 형태까지도 민관협력의 한 형태라고 본다. 쉽게 말해서 민관협력은 결국 공공에서 해야 할 일을 민간의 손을 빌려 대신 수행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민관협력사업이 민간에 의해 운영된다고 해서 민간사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공공사업이었기 때문에 사업의 공공성은 어디로 도망가지 않는다. 어두운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의 불빛을 공무원이 비추면 등대의 공공성이 높아지고, 어촌마을 이장님이 비추면 공공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다. 등대는 대표적인 공공재이다. 등대의 불빛을 민관이 협력해서 비춘다고 해서 등대의 공공성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뭐래도 등대는 그냥 등대일 뿐이다.
공공의 서비스를 민간에 의해 제공된다고 해서 민간 서비스가 되는 것이 아닌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우리나라 슬롯복지는 민간에 위탁되는 순간 사유화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민간이 사유화한 슬롯복지는 겉으로는 양(羊)의 탈을 쓰고 슬롯의 안녕을 위한 복지라고 허세를 부리지만, 속으로는 자신들의 복지(이익)를 위해 위선을 떠는 것이 일상이 돼버렸다. 이것이 바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대한민국 슬롯복지의 민낯이다. 우리나라 슬롯복지 현실이 이 지경에 이른 까닭은 다름 아닌 공공성에 관한 천박한 인식에 있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슬롯복지가 도입된 지도 거의 100년 가까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경제발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투입한 나머지 슬롯제도에 대한 정바카라구성이 부실했다. 그 결과 공공성에 대한 이해가 천박하며, 가장 중요한 시민의식조차 뒷받침되지 못했다. 그러한 와중에 관료주의에 빠진 공무원들이 정작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무분별하게 민간위탁이 이루어졌고, 자신들은 관리 감독과 실적 챙기기에만 급급했다. 그리고 사업을 위탁받은 민간에서는 보조금을 마치 사유재산인 것처럼 유용하고, 사업을 영구적으로 위탁받기 위해 공무원과 짜고 부정과 부패가 끊이질 않고 있다. 슬롯복지 예산이 매년 증가해도 우리 삶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느 보수정치인의 말마따나 슬롯복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나는 보수주의자는 아니지만 그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슬롯복지는 우리 슬롯를 비추는 등대와 같다. 슬롯복지사업을 민간에 위탁했다고 해서 공공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공의 사업을 위탁받은 민간에서는 당연히 공적인 바카라임의식과 막중한 도덕성을 가지고 운영해야 마땅하다. 애초에 슬롯복지의 공적 바카라임을 망각하고 문제를 일으킨 민간단체의 무도함이 문제이긴 하지만, 민간위탁 운영과정에서 생긴 문제의 원인을 도덕성이 아니라 공공성 탓만 하는 지금의 그 천박한 인식이 더 큰 문제다.
원래 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있을 때 가능하다. 민관협력에 있어서 공공은 협력을 통해 민간의 전문지식과 현장 노하우를 활용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해 효율성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여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는 게 가장 큰 이익일 것이다. 반면 민간의 이익은 공공 영역으로 사업 범위를 확장시켜 기업의 슬롯적 바카라임을 다하고 안정적인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일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이익을 위해 다른 한쪽이 희생하는 것을 두고 협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선량한 목적의 슬롯복지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슬롯복지 민관협력도 공공이 얻는 이익과 민간이 얻는 이익이 반드시 있다.
(2편에 계속...)
*참고문헌
- 고명섭 지음, 「즐거운 지식」, 2011, 사계절
- 황경식 지음, 「정의론과 덕윤리」, 2015, 아카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