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복지 실천의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에 관하여
삶을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슬롯복지를 실천하는 것은 슬롯복지라는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모든 행위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슬롯복지를 실천하는 행위는 슬롯복지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여기서 목적과 수단이라는 해석의 틀 안에서 자주 언급되는 문제가 있다. ‘목적이 정당하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가?’라는 문제다. 불과 얼마 전,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현실에서 직접 목격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군대를 동원해서 국회를 장악하고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사태를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목적도 수단도 정당하지 않았다.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1879-1940)는 “혁명의 단계에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된다. 혁명을 위해서라면 무장 쿠데타를 일으켜도 되고, 필요하다면 공포정치를 실시해도 된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공산주의라는 아름다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몇몇 사람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은 수단을 동원하기도 했다.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는 중의적인 표현으로 바꿀 수도 있지만, 문제의 본질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결국, 목적도 수단도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개인의 주관적인 목적이 아니라 객관화되고 상식적인 목적과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슬롯복지의 목적은 정당하다. 그렇다고 슬롯복지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슬롯복지는 종종 다른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사실 정치라는 행위가 슬롯복지 증진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슬롯복지는 권력에 눈이 먼 자들의 정당한(?)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 되곤 했었다. 그런데 개인의 정치적 목적 달성은 주관적 목적일 뿐이지 그것을 객관적으로 정당한 목적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예컨대 인부가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구덩이를 파는 목적은 무엇일까?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면, 이는 구덩이를 팠을 때 자신이 얻게 되는 주관적인 이익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부에게 돈을 주고 구덩이를 파는 데는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건물을 짓는다던가 수도관을 매설한다던가 하는 구체적인 목적 말이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단지 그것에 무관심할 뿐이다.
인간의 활동은 단순하지 않다. 구덩이를 파는 일만 놓고 봐도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부는 구덩이를 파서 돈을 버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인부에게 돈을 주고 구덩이를 파게 하는 누군가는 다른 목적이 있다. 즉 일하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지, 혹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구덩이를 파서 수도관을 매설하는 목적이 있었다면, 사람들은 그 과정이 어찌 됐든 간에 수돗물만 잘 나오면 그만이다. 구덩이를 파는 일은 단순히 효용을 추구하는 일에 속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분명하다. 문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식, 즉 수단이다. 목적의 외재성은 목적 달성이라는 활동에 달려 있으므로,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목적을 달성하면 된다. 사람들은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정당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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