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회사를 떠받친 세대. 우리들만의 엑스!

Part 3. 문화와 향락의 절정판. X세대는 왜 아무것도 못했는가?

by초맹


가장 튀고 싶었으나 가장 평범해진 바보들


전편 : 회사의 586세대. 목소리 큰 꼰대의 전형


"평범함은 거부한다! 우리들만의 엑스!"

586세대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뒤, 그 아래에는 또 하나의 세대가 있었다. 바로 시대의 아이콘 X세대다.


이유 없는 반항은 기본 장착이다. 머리 색깔부터 오색찬란 혁명적이었다. 개성이 곧 삶의 이유였다.

"어른들이 만든 이런 세상 속에 갇혀 살지 않겠어! 내겐 나만의 꿈이 있으니까!"

"이 세상과 당당히 맞짱을 떠라! 그대의 이름은 엑스!"


문화예술의 황금기를 보냈다. 신세대로 불리며 수많은 하이틴 스타를 배출했다. 누구든 현란한 댄스 한 두 개쯤은 몸 속에 탑재된 내장 모드였다. 게다가 이유 없는 반항은 기본 장착! 나이트 문화의 지각 변동 주역! 만약 이들이 슬롯에 진출한다면? 시한폭탄이다. 크나큰 파장이 예상되었다. 한국슬롯는 잔뜩 긴장했다.


[특별출연 소위 김하진 모자] 공부 못하면 나중에 저렇게 돼!


그러나 기우였다. 요란한 패션은 검정 정장으로 통일됐다. 오색찬란 대가리는 나 토종 한국인이야를 말하듯 검정색이 되어 있었다. 슬롯에 진출한 X세대들은 아무것도 거부하지 못했다. 오피스에서 이들은 철저히 무력했고 무능했다. 왜였을까?


기대를 접는 법을 가장 먼저 배운 세대

X세대는 회사에 큰 꿈을 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꿈을 접는 법을 가장 먼저 배운 세대였다. 슬롯에 나가면 다 폭발시키고 레볼루션 거하게 할 듯하더니, 오피스사에서는 결국 가늘고 길게를 유행시켜 버렸다.


나라님이 무너진 역사적 사건 IMF는 이들에게 크나큰 교훈을 남겼다. 회사는 언제든 사람을 버릴 수 있고, 충성은 보호 장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버지들은 너도나도 짤려나갔다. 슬롯에 막 진출한 이들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 X세대는 회사와 거리를 두는 법을 배웠다. 믿지 않되, 나서지 않는다. 부딪히지 않되, 도망치지도 않는다.


이는 비겁함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었다. 보기에 따라 그게 비겁한 거다. 그렇다. 이들은 답안지 없는 오피스 게임 패치 버전 속에서 대혼란을 겪었다.


[특별출연 회색토끼] 평범함을 거부했지만 평범한 오피서가 되었다.


가장 많이 일했지만, 가장 적게 말한 세대

"조금만 참고 힘내자! 내가 팀장 되고 임원 되면 다 갈아엎어버릴 거야!"

X세대는 늘 바빴다. 실무는 늘 이들의 몫이었고, 누가 싸놓은 뒷똥 수습도 이들의 몫이었다.


늘 결정은 위에서 내려왔고, 불만은 아래에서 터졌다. 그 사이에서 X세대는 완충재처럼 소모되었다. 무엇인가를 생각할 이유나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평범하지 않은 일상에서 평범함을 찾게 되었다.


문제는 그들이 문제를 몰랐던 게 아니라는 점이다.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다만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결정을 늘 뒤로 미뤘다. 참고 힘내면 좋은 날이 온다며. 그래서 그들은 그저 윗세대가 막 굴려도 되는 소모품이었다.

다 말없이 참아냈으니까. 나서지 않았으니까. 진작 모든 에너지가 소모되었으니까.


침묵은 선택이었다.

동시에 윗세대와 암묵적인 공범이 되어버렸다.


X세대는 생각했다.

"괜히 나섰다 피 본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다."


그 말은 개인에게는 맞았다. 그러나 회사 전체로 보자면, 그 침묵이라는 선택은 결과적으로 구조에 대한 묵인이었다. 586세대가 만든 질서는 X세대의 침묵 위에서 유지되었다. 나중에 뭐가 되고 나서, 다 갈아엎겠다는 생각을 접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윗세대의 벽은 두꺼웠다. "야! 니가 알아서 밑에 조지고 해야될 꺼 아냐!"


중간관리자로서의 실패와 무능

"나도 하기 싫은데 위에서 시킨 거야.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어?"

X세대가 중간관리자가 되었을 때, 슬롯적 기류도 많이 변해갔다. 회사는 변할 기회를 한 번 더 얻었다. 그러나 대부분 그 기회는 사라졌다. 더 정확히는 자신들이 걷어찬 것이다. 어느 정도 힘도 키웠지만, 이들은 보신을 택했다. 위에서 내려온 요구를 여과하지 않고 전달했다. 아래에서 올라온 신호를 위로 올리지 않았다.


X세대 리더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너무 오래 참아왔고, 이미 지쳐 있었다. 그들은 방패가 되기보다는 철저히 전달자가 되었다. 주간회의는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진행사항을 확인하고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이미 위에서 찍히고 아래에서 치인 이들에게는 더 이상 혈기 넘치는 엑스의 피는 남아있지 않았다. 이들은 윗세대에게 부리기 좋은 관리자였다. 윗세대가 오래 남아있으니, 부리기 좋은 관리자로서 이들의 명도 길어졌다. 가늘고 길게를 위해 저마다 자신이 모시는 임원들의 줄을 잡고 술잔을 받아주며 꼬리를 치기에 바빴다.


이거 위에서 시킨거야. 나도 하기 싫은데 뭐 어쩌냐?


실력은 있었지만, 연대는 없었던 엑스

X세대는 유능했다. 본격적인 스펙의 도전을 받기 시작했던 엑스들의 개인 역량은 뛰어났다. 현실 감각도 넘쳤다. 그러나 윗세대와는 다르게 이들은 연대하지 않았다. 각자 윗사람 맞추며 조용히 살아남는 데 집중했다.


더 정확히는 구엑스와 신엑스가 갈렸다. 학력고사 세대는 윗세대와 동질감을 형성했다. 스스로 586의 하수인을 자처하며 빌붙었다.


수능 세대의 후반기 엑스들은 같은 나이들만 연대했다.

"행운 가득 77년생 칠칠이"

"우린 영원한 친구 79 클럽"

이런 식이었다. 이 마저도 당연히 자신들끼리 사분오열하며, 결국 이들에게는 아무런 힘이 실리지 못했다. 이따금 정통 반골 엑스들이 등장하여 무언가 바꿔보려 했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연대하지 못한 자가 구조를 바꾸기에는 개인의 체력이 먼저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동조해 주지 않았다. 그 결과, 회사는 586 체제에서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체제를 지속시켰다.


"아니. 저 지금까지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살았는데 나가라구요? 왜 접니까? 저한테 이러시면 안 되잖아요!"

"미안하게 되었네. 밑에 애들은 치고 올라오지. 지금 인사적체도 심해. 지금 명퇴할 때가 한몫 챙길 마지막이야. 내 특별히 더 챙겨주라고 하지."


"고전무님. 다시 한번만 제고 안 될까요? 저 외벌이예요. 아직 애들 학비에 대출에 돈 들어가는 거 많습니다. 아니면 어디 몸 쓰는 한직이라도 보내주시면.."

"어허! 추하게 왜 이래? 다 회사의 결정이네. 아. 참. 이왕 나갈 거니까. 지난번 우리 본부 영업손실 터진 거 김팀장 바카라임으로 좀 하자구. 내 충분히 챙겨줄게! 그럼 난 미팅이 있어서 가보겠네.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


X 세대. 오랜 시간 이들이 침묵하는 사이. 회사는 엑스세대들을 인사적체 주범. 고인물. 퇴물로 몰아가며 제거해 나가고 있다. 이미 임원에 올라간 엑스들은 뭐 하냐고? 걔넨 원래 못 뭉쳐서 그런 거 관심 없다. 자기들 오래 연명할 걱정이지. 이전 세대보다 엑스 임원들의 명줄은 더욱 짧아졌으니까.


명퇴를 받아보면, 몇 년 안 남은 끝물들이나, 한창 일할 만한 오피서들이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엑스들은 이 조차도 침묵하고 버티기를 시전 한다. 좌천과 대기발령에도 집에다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아무 일 없이 하루를 보낸 척하며..


저 이대로 못 나갑니다! 살려주세요! 까라는대로 다 깠잖아요!


사다리 없는 세계를 처음으로 견딘 세대

586세대가 마지막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면, X세대는 사다리가 사라지는 장면을 처음 본 세대다. 올라갈 길이 없다는 걸 알았고, 그래서 희망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X세대의 가장 큰 비극이었다.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실을 고발하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가늘고 길게를 위해.


젊은 날 호기롭게 엑스를 외치던 시절만큼 그들에게 오피스 게임은 만만하지 않았다. 꽃 피우지 못한 그들의 재능은 무능으로 둔갑해 갔다. 평범함을 거부하던 그들은 그냥 평범한 엑스일 뿐이었다.


X세대는 엄밀히 말해 회사를 망친 가해자가 아니다. 그러나 구조 유지의 무고한 피해자도 아니다. 그들은 알고도 침묵했다. 그 침묵은 개판 오분 전의 오피스 게임을 개판으로 연명시켰다. 그리고 이제 침묵이 대가로 서서히 회사의 총알받이가 되어가는 중이다.


한때 문화와 향락의 고점에 있던 그들이 저물고 있다. 아무런 임팩트 없이..


저 무능한 고인물. 오래도 가네? 언제 나가나?


586세대는 사다리를 치웠고, X세대는 그 자리에 아무것도 세우지 않았다. 사다리를 부수지도, 새로 만들지도 못한 세대. 평범하기만 했던 X세대다.


이들은 권력을 잡기에는 너무 늦었고, 떠나기에는 너무 깊이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전략은 하나였다. 눈에 띄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것.


그 침묵과 연명의 대가는 다음 세대가 고스란히 치르게 되었다. 남은 문제들과 치우지 않은 게임의 룰은 그렇게 다음 세대로 넘어갔다.


여보. 나야. 별일은 무슨..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해 봤어.


평범함을 거부하는 엑스의 피가 말랐다면, 거기서 끝이다. 가늘고 길게? 그런 비겁한 침묵은 이제 안 통한다.


애들 앞길 막아가며 민폐 그만 끼쳐라.

적당히 명퇴 누르고 그만 게임 끝내라.

오피스 게임에서 X 세대 버전 곧 섭종한댄다.


P.S. 회사에서 평범함을 거부하고 싶을 때 읽기 좋은 바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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