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586세대. 목소리 큰 꼰대의 전형

Part 2. 사다리를 오른 마지막 세대. 사다리를 걷어찬 세대

by초맹


사내 내로남불의 전형적인 결정판


전편 : "라떼는!" 회사의 어른. 그들은 무엇을 잘못했는가?


가장 치열했던 그들의 오피스 라이프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


불룩한 배. 수시로 시전하는 이랬다와 저랬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 위에서 한마디 떨어지면 즉시 뛰어다니는 걸 미덕으로 삼았더랬다. 전형적인 드라마 속 부장님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 그들. 바로 586이다. 쌍팔년도 모든 전근대적 스킬은 이들에게서 나왔다.


더 정확히는 6.25세대들에게서 시작되었지만, 586은 이전 세대의 스킬 셋을 국룰로 승화시켰다. 현존하는 오피스 문화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일명 넥타이 부대라고 일컬어지던 이들. 586세대는 우리나라 오피스 문화와 역사의 중심에 가장 오래 서 있었던 세대다.


지금도 여전히 상당 수가 그 자리에 남아있다. 아직도 고위직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땐 그랬지. 허허. 요즘 애들은 말야!


"우리 때는 부모님보다 상사가 먼저였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알아?"

그들은 가장 치열한 격동의 시대를 지나왔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동시에 노력이 보상으로 연결되던 마지막 시대를 살았던 세대이다.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해 왔다. 하는 만큼 받아왔으니까.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슨 일들을 겪어왔느냐는 알 바 아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들이 그 경험을 회사 안에서 어떻게 재현하고 만들어왔느냐이다.


회사는 곧 인생이다. 삶의 최우선 순위 회사

"뭉쳐야 산다! 흩어지면 죽는다!"

586들의 온라인 게임 생활은 하나의 신념에서 출발한다. 회사는 삶의 중심이다. 개인은 그 안에 소속되어야 한다. 이 신념은 충성, 인내, 희생을 미덕으로 만들었다. 후배들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야근은 성실함이 되었다. 개인은 조직의 재물이자 헌납으로 뒤 바뀌었다.


문제는 이 가치가 시대가 바뀐 뒤에도 수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는 수정할 생각이 없었다. 시대가 변한 뒤에는 자신들이 누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기득권이 된 것이다.


586세대는 자신들이 견뎌 온 고통을 회사의 규칙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도 똑같이 요구했다. 아주 당연하게.


"충성충성" 아주 좋아! 회사에 충성하란 말이다!


민주화 세대의 역설적 권위주의

"독재타도! 민주화가 우선이다!!"

586은 민주화를 외쳤던 세대다. 민주화가 뭔지 모르는 586들도 친구, 동료 손에 이끌려 나가 투쟁을 해 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회사 안에서 가장 강력한 제왕적 위계질서를 만들고 유지해 왔다.


회의는 토론이 아니라 통보였다. 의견은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결정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질문은 문제 제기가 아니라 태도 문제로 치부되었다. 상반되는 다른 의견은 무적 586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되었다.


그들은 권위를 비판했던 방식으로 다시 권위를 만들었다. 회사는 수평을 말했지만 그저 자신들의 이미지 세탁용이었다. 현실은 더 정교한 상명하복이 작동했다. 자신들에게 반기를 드는 자들은 처절하게 보복했다. 다양한 좌천과 복수극으로 회사를 정쟁의 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공포를 무기로 아래 세대들을 길들이며 대놓고 개돼지 취급해 왔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그 경험을 권위로 삼고, 우월적 클라스를 내세우며 대우를 받으려 했다. 사실 그들의 무용담도 자세히 알고 보면 그냥 데모 한 두 번 나간 게 다인 경우가 태반이다. 확인할 방법도 없다.


"야! 니들은 앉아서 편하게 돈 벌지? 겨우 이 정도 회사 일도 힘들어해서야 원.. 난 말야. 느덜 때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목숨 걸고 뛰어다녔어! 알아? 난 이 나라를 바꾸려고 했던 사람이야! 클라스가 다르다구!"

"그래서 이 나라 이 회사 뭐가 그렇게 달라졌는데여??"

"………………………"

"야.. 야.. 초대리!! 아.. 전무님 그게 아니라.. 하하.."

"아. 맞잖아여! 누가 들으면 나가사키 짬뽕에다 도시락 폭탄 던지고 나라 구해온 줄.."

그날 초대리의 한마디에 분위기는 차가워져야만 했다.


난 민주화를 위해 뛴 사람이야! 니들이랑 클라스가 달라!


전설처럼 구전되는 권력의 또 다른 이름. 경험.

"일단 한번 해보자구. 해보면 알게 돼. 그러면서 크는 거야. 우리 땐 다 그렇게 했어!"

586세대의 의사결정은 종종 이렇게 끝난다. 이게 뭔 개소리지? 2시간 떠들고 결론이 이 따위로 난다고?


경험은 설명을 대신했고, 설명되지 못한 보이지 않는 권위는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노하우는 자산이 되지 못했다. 프로세스는 휘청였다. 명문화된 룰이 존재할 수 없었다. 이랬다 저랬다가 남발되었다.


경험이란 말은 이들에게 권위와 동시에 밥그릇을 선사했다. 경험을 이유로 드러나는 실체는 그 무엇도 없었으니까. 이들은 경험을 기록으로 정리하기를 거부했다. 드러나는 순간 별것 없는 실체도 만천하에 드러나니까. 그럼 밥그릇을 뺏길 테니까.


결국 회사는 개인에게 의존했다. 그 개인이 떠나면 모든 것이 다시 원점이 되는 아수라장이 재연되었다.


럭키 세대 586. 그들이 누린 것과 지킨 것

큰 스펙이 없어도 취직하기 편했다. 학점관리 알 바 아니다. 대학만 나오면 적당한 회사는 누구나 들어갔다. 좀 알만한 대학이면 대기업은 그냥 자동입사였다. 한국의 고도성장기에 회사에 들어왔다. 회사는 계속 커졌다. 일할수록 더 벌었다.


IMF를 겪으며 개고생 했다고 떠들지만 다 뻥이다. IMF로 목숨을 잃은 건 6.25세대였다. 저연차 주니어였던 이들은 이전 세대가 알아서 정리되어 주며, 기회를 더 일찍 그리고 가장 오래 꽤찼다. 위로 사람이 팍팍 줄어드니, 12~13년 만에도 임원 승진을 했다. 임원만 십수 년을 보내곤 했다. 설사 임원을 달지 못해도 부장만 기본 10년 넘게 해댔다.


이전 세대가 만들어 둔 연공서열을 구태여 바꿀 이유가 없었다. 이는 강력한 매직 실드였다.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자동 승진과 거액의 보상이 가능했다. 실패해도 다시 기회가 주어졌다. 이들의 담합과 카르텔은 회사 안에서 자신들의 성역을 만들어냈다.


건배사는 늘 똑같았다.

"우리가! 남이가!"

"위하여! 위하여! 위! 하! 여!"

뭐가 남이고, 대체 뭘 위하는데? 하여튼 다 즈덜끼리 해 처먹는 슬로건만 남발했다. 당시의 시대적 조건에 너무도 딱이었다. 말 그대로 럭키 세대였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우리가 남이가!


사다리를 오른 뒤, 대의와 공정이란 이름으로 사다리를 걷어찬 세대

"나는 올라왔으니 됐다! 젊음은 원래 고되고 힘든 것이다!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 사서라도 해라!"

문제는 그다음이다. 586세대는 사다리를 오른 마지막 세대였던 동시에 그 사다리를 관리할 권한을 가진 첫 세대였다.


시대가 변하며 슬롯 전반에 공정과 청렴이 화두가 되자, 이들은 빠르게 정의의 아이콘이 되었다.

"요즘 40대 팀장들. 법카로 생활비 쓰고 이런 문제들이 많아요. 우리 임원들이 바로 잡읍시다."

"아래서도 원성들이 많아요. 법카는 회사일에 쓰고 부서일에 써야지. 요즘 팀장들 원.. 이렇게 의식들이 없어서야.."


그 시절. 법인카드는 팀장, 부서장, 임원들의 수당 외 쌈짓돈이었다. 다들 그렇게 해 처먹었다. 그리고 자신들은 아니었던 척 그렇게 공정을 내세웠다.


그렇게 해 먹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자신들이 관례적으로 해먹은 건 다 그래왔다는 시대적 배경으로 덮였다. 그 누구도 사과하거나 해먹은 걸 뱉어내지 않았다. 꿀꺽!


라떼는 노력만 하면 누구든지 올라갈 수 있었지!


경제성장이 이전 같지 않자, 아래 세대들의 빠른 승진이 부담스럽다. 이들은 룰을 바꾼다.

"40살에 임원 달고 이런 거 이제부터는 막아야 할거 같지 않습니까?"

"암요 암요. 경험이 너무 모자라도 안 되고, 인사 적체도 생기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직원들 직급체류 연한을 1~2년씩 늘려야겠어요. 그럼 허리도 탄탄해지고, 못해도 50은 되어야 임원 되니 경험도 적당하고 공정하죠. 허허허"


아니. 뭐야? 지들은 이미 젊을 때 다 부장 달고 임원 올라와 놓고, 다음 세대들은 천천히 올라오라구?

기가 막히지만 그래도 정년 55세 되면 나가야 하니까, 기회는 오겠지. 다음 세대는 묵묵히 버틴다. 그러나 오피스 제왕 586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마침내 이들은 55세 정년을 60세로 연장시켜 낸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가 아니다. 고령화의 슬롯문제 때문이 아니다. 다 핑계다. 게임 종료를 선언한 나이에 임박하자, 더 해 먹기 위해서 정년 연장 카드를 내놓았다.


슬롯적 이슈에 앞장서는 척. 미래 세대를 생각하는 척. 그리고 자신들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해, 이들은 희망퇴직으로 다음 세대를 먼저 날려버리고 자리를 지키며 우뚝 서 있다.


니들이 어딜 감히 올라와? 이제 사다리는 걷어 차 버리자!


그들은 사다리를 고치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이 오를 수 있게 넓히지도 않았다. 사다리는 계속 삐그덕 거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자신들은 사다리를 타고 먼저 올라갔다.


다음 세대가 그 사다리에 오르려는 순간, 586은 그 사다리를 걷어찼다. 낡았다는 이유로. 고쳐쓰기 힘들다는 이유로. 나는 이제 다 올라왔다는 이유로..


원망하는 아래 세대들을 다독이며 이들이 하는 말은 뻔했다. 아니 뻔뻔했다.


"요즘은 원래 힘들어. 우리 때도 다 힘들었어. 아니 그땐 지금보다 더 힘들었지."

그 말은 사실처럼 들렸지만, 이전 세대들과 조건은 이미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그 격차는 따라잡기 힘들 만큼 벌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586세대는 자신들이 공정하다고 믿는다. 충분히 기회를 주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공정은 자신들이 통과했던 내로남불 식의 공정이었을 뿐이다. 성과를 내도 자신들이 돌려먹느라 자리는 없었다. 열심히 해도 이들의 비위를 거스르면 보상은 없었다. 그래서 미래도 없었다.


누군가는 걷어차도 올라간다. "내가 곧 줄이요! 사다리다!"


586세대의 가장 큰 잘못은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시스템을 바꿀 수 있었음에도 바꾸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누린 안정성과 기회를 다음 세대에게는 구조로 남기지 않았다.


사다리에 오른 이들은 무너진 아래 세대들을 보며 여전히 외친다.

"노력해서 안 되면 노오력을 해라! 노오력해서 안 되면 노오오력을 해라!"


그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세대이면서도.


만약 노오오오력해서 따라오면, 또 안 되게끔 만들 거잖아? 그치? 맞지?


저 나쁜 대머리! 끌어내려라! 우리도 사다리 줘라!


격동기의 586 오피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마지막 세대였고,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세대였다.


마지막까지 조금이라도 더 연명하려 추악하게 굴지 말고, 그만 사라져라. 가기 전에 아래 세대들에게 꼭 석고대죄하고.


아무리 막아서도 혼자 다 뚫고 오르는 용자가 있다.


P.S. 회사에서 사다리가 안 보일 때 읽기 좋은 바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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