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 26. 피렌체의 첫째날 ④
조토의 종탑을 내려와서, 잠시 동행과 헤어집니다. 어차피 저녁식사 때까지 잠시 시간이 뜨기도 하고, 저는 아무래도 진짜 열사병에 걸린 것만 같아서 숙소에서 좀 쉬고 싶었거든요. 생각해보니 아직도 체크인을 하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고. 그렇게 동행을 보내고 다시 역 근처의 숙소 쪽으로 돌아오는 길. 그러나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리가 있나요. 아까 얼른 종탑의 오르고파하는 눈치였던 동행을 신경쓰느라 미처 들어오지 못했던 산 조반니 세례당 내부로 들어와봅니다.
그리고 그때는 아마 그 공간을 그리 인상적이라 느끼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두 개의 문과 달리, 이 안에 직접 들어갔었는지 여부는 기억에도 흐릿하고, 그나마 그 입장을 증언해주는 사진은 영상까지 합쳐서 고작 두 개 뿐인 걸 보면요. 그도 그럴만한 것이, 1시간 전에 바라봤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의 외관에 비해서는 확실히 수수한 모습이었거든요. 그러나, 스물여섯의 저 자신에게는 이 공간이 조금 다르게 다가오더랍니다. 이 당시도 아니고, 1시간 전 처음 산 조반니 세례당을 둘러보다가 무심코 찍어놓은, 바닥의 어느 동판 하나 때문에.
이상하게도 피렌체에서 첫째날의 기억이 유독 흐릿합니다. 아마 이때는 더위를 먹어서, 잠시 후에는 술을 먹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군요. 아무튼 그래서 제가 이 동판을 그 정체는 제대로 알아보고 찍었던 건지조차 가뭇가뭇합니다. 아마 저 아래 적힌 DANTE 다섯 글자를 보고 대충 사진을 남긴게 아닌가 싶어요. 뭐 어떤가요? 지금의 저는 이 동판의 글귀를 해독하며 또 하나의 감상에 빠지게 되었는걸요. 스물셋의 제가, 의도하지도 않은 채, 스물여섯의 제게 건네어주는 선물인 셈입니다.
이 동판에 적힌 글귀는, 단테의 신곡, 천국편 중 25곡 1행에서 9행이라고 합니다. 이 안에 단테의 삶이 집약적으로 담겨 있더군요. 내부의 권력투쟁에 추방당한 피렌체의 시민은, 모든 피렌체 시민들이 세례를 받는 세례의 샘, 산 조반니 세례당으로 돌아가는 날을, 그리고 그곳에서 아폴론의 월계관이 씌워지는 날을 평생 꿈꿨다고 합니다. 그가 망명해 있던 볼로냐에서 주겠다는 월계관도 사양하며, 오직 그 자신의 고향이 그를 다시 바라봐주기만을 기다렸다고 하네요. 자신의 걸작, 신곡에 그 소망까지 새겨 넣으면서.
이 거룩한 시가 나를 양우리 밖에 가둔 잔혹함을 이긴다면, 다른 목소리 다른 양털로 시인이 되어 돌아가 내 세례의 샘 위에서 월계관을 쓰리라 - 신곡 천국편 25곡 1~9행, 단테
그러나 그는 끝내 피렌체로 귀향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물론 머잖아 르네상스를 맞은 피렌체는 그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추앙하기 시작하지만, 자신들이 내렸던 추방 결정은 2008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그를 철회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그의 유해는, 여전히 피렌체가 아닌 라벤나에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피렌체가 원치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요.
로마에서 조르다노 브루노를 바라보며 썼듯, 바로 앞 글에서 브루넬레스키에 대해 쓰며 내비췄듯, 저는 사후에 쏟아지는 후인들의 찬사가 그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에 대해 무척 회의적입니다. 그 찬사만으로 그들이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단테에 와서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가 지금 더없이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가 온 평생을 바쳐 사랑했던 피렌체가 그를 노래하고 있으니까요. 가장 뛰어난 시인을 위한 월계관은, 그를 수여하는 의식은 없었으되 분명 모든 세인들의 머릿속에서는, 지금 그의 머리 위에 씌워져 있으니까요. 결국 그는 죽어서나마 그가 평생을 꿈꿔왔던 금의환향을 얻어냈습니다. 그의 육은 여전히 라벤나에 묻혀 있으되, 그의 영은 피렌체라는 그를 위한 천국에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논의는 그들의 영혼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비과학적인 이야기 위에서만 가능하겠습니다만, 어쩐지 그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믿고 싶어집니다.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서. 이 지상에서 모두의 행복이 어렵다면, 적어도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게 그를 위한 천국이 예비되어 있기를 바라기에.
한없이 이어지려고 하는 사색을 멈추고, 다시 산 조반니 세례당으로 돌아옵니다. 제가 방문했던 당시에는 천장의 모자이크화를 위한 복원공사가 한창이었던 모양입니다. 이미 그가 세례를 받았던 세례대는 사라져 흔적만 남아 있지만, 심지어 무지한 이 스물셋의 이방인은 이 건축물의 이름조차 잊어버린 채 그 세례대의 흔적을 영상으로 담지 않았지만, 저 최후의 심판을 주제로 한 모자이크화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단테가 평생을 다시 보기를 소망했을 저 모자이크화. 스물셋의 저는 그저 무심코 지나치고 스물여섯의 저는 그 앞에 쓸쓸함을 느낍니다.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천천히 피렌체 중앙 시장으로 걸어나옵니다. 이곳 2층의 푸드코트에서 동행들을 다시 만나기로 했거든요. 그러고보니 조금 더 여유있게 나왔으면 1층의 시장도 구경할 수 있었을텐데. 요새는 여행을 가면 언제나 그 동네의 시장에 가서 로컬의 분위기를 느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보니, 그때의 무심함이 아쉬울 따름이네요. 그래도, 2층의 푸드코트만으로도 흥겹고 시끌벅적한 시장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던 것 같긴 합니다. 물론 그것보다 당장 잠시 후 새로 만날, 동행이 데려온 또 다른 동행들을 만날 생각에 약간 긴장해 있었지만요.
아직 그 새로운 동행 두 분은 조금 더 늦어진다고 해서, 우선은 먼저 모인 세 명이서 이것저것 사들고 오기로 합니다. 그 푸드코트 안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골랐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꽤나 신났어요. 야시장에 온 것만 같은 그런 기분. 그리고 이때 저는 고대하던 티본 스테이크를 먹게 됩니다. 저를 제외한 두 명은 사실 아까 점심에 티본 스테이크를 이미 먹었다고 했습니다만, 아직 티본 스테이크를 못 먹어본 저를 배려해줬답니다. 다만 그 맛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일단 "너무 더워서 내가 이걸 먹는건지 헷갈렸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고, 기억 상으로도 꽤나 질기고 느끼했습니다. 특히 "콜라가 생명수가 되어"주었다고 하는 걸 보면... 참고로 그 옆에 있는 두 가지 음식은 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숙소에서 1시간 반 가량을 쉬다 나왔음에도 아직 더위 먹은게 다 가시지 않은 걸까요?
식사를 마칠 즈음, 새로운 동행 두 분이 나타났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이제 예정했던 바와 같이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향합니다. 언덕에 올라 가볍게 한 캔 하자며 중간에 자그마한 가게에 들러 맥주도 몇 캔 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면서 느긋이 걸어갑니다. 그러고보니 해가 살짝 져서 걸어다니기 괜찮은 온도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보낸 23년의 한여름이 이 부분에서 신기했던 것 같아요. 햇빛이 정말 태워버릴 것처럼 작렬하지만, 그늘에만 들어가면 또 조금만 해가 지면 금방 꽤나 상쾌해지더라고요. 열대야와 찌는 듯한 더위의 나라에서 온 저로서는 그게 참 부러웠습니다.
그나저나 그 걸어가는 길에 레푸블리카 광장을 또 들렸었군요. 이때의 기억은 흐릿하게나마 남아있습니다. 어둠이 살짝 내려앉은 광장 가운데, 노란빛으로 반짝이며 돌아가는 회전목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