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 25. 피렌체의 첫째날 ③
혈기왕성한 이십대 청년들은, 두오모에서 지상으로 내려오자마자 다시 조토의 종탑에 오를 궁리를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무모함이 참 경탄스럽습니다. 아무리 체력이 남아돈다고 해도, 그 무더위에 그 높은 곳을 그리 힘들게 올라갔다 왔으면, 시원한 곳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다음 등반을 계획했어야 할텐데요. 음... 어쩌면 그 중에 진짜 무모했던 것은, 이미 힘들어서 쩔쩔매고 있었으면서, 조금만 더 쉬었다 가면 좋겠다는 한 마디를 못한 저 하나뿐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의 북쪽 출구에서 남측의 조토의 종탑으로 향하는 길에 갖게 된 아주 짧은 산보의 시간. 저는 산 조반니 세례당의 외관을 열심히 눈에 담습니다. 여유가 많지 않았던 탓에, 산 조반니 세례당 내부에 입장하지는 못했거든요. 대신 겉모습만을 찬찬히 둘러봤습니다. 그러던 제 눈이 가닿은 곳은 두 개의 문. 기베르티라는 조각가가 평생을 담아 만들었다는 두 역작입니다. 솔직히 저로서는 신기하고 멋지다는 생각 이상의 감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그 안에 담긴 어떤 이야기가 아직도 저로 하여금 이 두 문을 기억하게 합니다.
물론 이때에야 그 이야기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의 야경 투어에서야 가이드에게 자세히 듣게 되었지요.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가 이 문의 건설 바카라임을 두고 경합했고, 여기서 패배한 브루넬레스키는 한동안 건축을 연마한 끝에 다시 돌아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의 두오모를 올리게 됐다는 그런 이야기. 어떤 승부의 패자라고 할지라도, 어떤 결의와 노력이 있다면, 그 승자보다도 더 유명하게 남을 수 있다는 그런 교훈. 왜 그저 평생을 문 두 개에 헌신했을 뿐인 기베르티가 뭔가 악역처럼 그려지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굉장히 정석적이고 그래서 오래토록 전해지기 좋은 이야기와 교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이 멀리 뻗어갑니다. "과연 브루넬레스키는 행복했을까?" 하는 쪽으로요. 이 이야기와 교훈은, 브루넬레스키에게 끝내 승리가 임했으니 분명 행복했을 것이라는 전제 위에 작동합니다. 그러나, 조각에서 건축으로 진로를 틀기까지의 번뇌 그리고 건축으로 진로를 튼 이후에도 끝없이 이어졌을 회의는 그 전제에 조금도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애초에 그가 두오모의 건축 바카라임자가 됐다는 것이, 그의 삶 안에서 그에게 어떤 행복을 가져다 줬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저는, 브루넬레스키가 평생을 열패감에 빠져 살지는 않았을까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어떤 진로를 택해도, 어떤 명성을 얻게 되고 어떤 공사를 맡게 되도, 평생을 따라오는 "그때 패배했던 것이..."라는 꼬리표가 그를 지독하게 괴롭히지는 않았을까요? 심지어는 그의 모든 행동을 결정지으며 그의 삶 자체를 잡아먹지는 않았을까요? 과도한 비약인 줄 알면서도, 제 삶이 비춰보이니 안타까움을 거둬들이기가 어렵군요. 기베르티는 만년에 이르기까지 그 승부에서의 승리를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이 선연하게 남아 있었다고 하는데, 브루넬레스키는...
자, 그렇다면 그저 자신들의 주목과 관심이 기베르티보다 브루넬레스키에 향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최후의 승자라고 선언하는 것이, 후대인들의 지독한 오만함에 기인한 것은 아닐지 묻고 싶습니다. 심지어 또 다른 미래에는 주목과 관심의 소재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역사의 종말 위에 서 있는 심판자처럼 구는 그런 오만함이요.
산 조반니 세례당을 그렇게 찬찬히 둘러보던 발걸음을 그대로 뒤로 돌리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를 정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순간에야,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를 정말 제대로 첫 대면한 것 같군요.
거친 돌이 묵직하게 중후함을 밀어붙이는 듯했던 성 베드로 대성당의 외관과 달리, 훨씬 더 정교하고 다듬어져 있는, 그래서 분명 하나하나 세심히 뜯어보면 화려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그런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화려함은 화려함 그 자체로 멈춰 있지 않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내부는 극도의 화려함을 향해 치닫으면서도 그가 결국 모두 신의 것임을 보여줌으로써 화려함 너머의 숭고함을 보여주었지요. 반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의 외관은 비록 부분부분을 떼어보면 화려함이 깃들어 있을지라도 전체를 보는 순간 이미 그 자체로 잘 정련된 하나의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화려함을 넘어선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서로 다른 두 접근법입니다.
저는, 적어도 아름다움에 관해서는, 로마의 그것 이상으로 피렌체의 그것에 끌리는 것 같습니다. 독자에게 적극적인 감응을 요구하기 보다, 이미 완성된 아름다움을 준비해놓은 채, 그저 있는 그대로를 느낄 것을 주문하는 그 고고함과 우아함. 물론 그것이 이 마음 속에 어떤 울림을 주느냐는 또 다른 문제지만, 적어도 제 눈에 더 아름다움 그 자체에 가까워 보이는 것은 성모 마리아를 위한 이 한 떨기 꽃,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입니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에 대한 응시는, 그러나 적어도 당시에는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저 모든 언어는, 스물셋에게 살짝 스쳤던 그 짧은 감상을, 가능한 있는 그대로 되살려내려는 스물여섯의 발버둥이었다는 거죠. 대신 스물셋은, 육체에 쉼을 주기 위해 버둥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던 스물셋의 눈에 또 다른 카페가 들어온 모양입니다.
이 카페에 방문한 경위와 과정에 대한 기억은 사실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사온 젤라또를 먹다가 손에 다 녹아 흘러내린 탓에 무척 고생했다는 기억이 흐릿하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 그 당시의 카드 결제 내역까지 뒤져봤고, 실제로 저 가게에서의 결제 내역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결제 금액은 고작 1.5유로네요? 제 기억이 맞다면 이 금액은 젤라또 하나를 사 먹기에는 조금 부족합니다. 아마 콜라라도 사마셨다면 이 정도 값이 나올 거 같기도 하고... 여기까지 헤아리고 나니, 어쩐지 그때 실로 콜라를 사마셨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하. 이제는 뭐가 진실인지조차 감이 안 오는군요. 기억을 찾기 위해 시작한 작업이, 오히려 기억을 더 흐트러트려 놓았네요.
아무튼, 이제는 정말 조토의 종탑에 오를 때입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그를 유예해보지만, 결국 다시 등반의 시간이 찾아왔네요. 이미 두오모에 올라갔다 내려와서 잔뜩 지쳐있지만, 기온이 37도에 이르를 정도였지만, 조금 더 쉬고 싶다는 말은 할 수 없지요. 설령 그 결과로 열사병을 얻게 된다고 할지라도... 어디서 그런 오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쓰러지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고 그랬는지.
그래도 역시 정상 위에 도달해서 보는 풍경은, 제가 후회라는 행위를 할 수 없게 만듭니다. 더불어, 두오모에 먼저 오르고 종탑에 그 다음으로 오른 것이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이곳, 조토의 종탑에서 바라본 피렌체 전경이나, 아까 두오모 위에서 바라본 피렌체 전경이나 큰 차이가 없지만, 두오모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한끝이 이곳 종탑에는 있었거든요. 바로, 두오모 그 자신. 만약 종탑에 먼저 오르고 두오모에 그 다음으로 올랐다면,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 아름다운 두오모조차 없는 풍경을 보기 위해 두 번의 등정을 한 꼴이 되었을텐데, 이 순서에서는 점층적인 아름다움과 보람이 있어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당시에는 창살이 그저 아름다운 풍광을 해치는 걸림돌로만 느껴졌었는데요. 그래서 스마트폰의 카메라 렌즈를 창살 사이로 넣으면서까지 창살 없이 오로지 두오모와 피렌체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사진을 돌아보니, 두오모와 피렌체를 창살에 가둬놓은 사진은 또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군요. 스스로가 갇혀버린 듯한 아련함 그리고 퍼져나가는 시선을 한데로 모아주는 응집력. 물론, 창살 있는 사진만 있었다면 당연히 "창살 없이 찍어올 걸" 하는 후회가 남았을테지만, 이렇게 둘을 놓고 보자니 어쩐지 창살 있는 사진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다른 분들의 감상에도 그런 느낌이 겹치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