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떠들썩함 속에서, 사람이 아니라 나를 향해 걷다

유럽여행 - 27. 피렌체의 첫째날 ⑤

by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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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키오 다리 위에서


아르노 강의 북안에 다다르니 이미 하늘은 어둑하고 붉은 빛이 감돌고 있더랍니다. 다리를 어느정도 건너니, 저 멀리서 노랫소리 그리고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대화를 나누느라 옆을 향해 있던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다리 한켠에 살짝 걸터앉습니다. 미켈란젤로 언덕 위에서 마시기 위해 사들고 가던 맥주 캔은 그렇게 베키오 다리 위에서 한참 이르게 열려버립니다.


그러나 술에 취하기도 전에 분위기에 취해버립니다. 먼저, 노을. 이 불그스름한 시간은, 쓸쓸함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낭만의 시간이기도 하지요. 이 붉은 빛의 도시 피렌체, 그리고 중세의 황혼이 깃들어 있는 도시 피렌체와 겹쳐져서, 그 노을의 낭만은 혀가 아려올만큼 달콤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노을의 쓸쓸함은, 그 달콤한 낭만 위에 얹어졌기에, 이제 아프도록 쓰기보다는 다크 초콜릿 같은 쌉싸레함이 되어 다가옵니다.


이어서, 사람들. 서로 다른 언어로 서로 다른 감정 위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만, 동시에 그 모든 이들이 이곳 베키오 다리 위에 있다는 건 마법과도 같은 일입니다. 물론 그 마법이라 해봐야, 옷깃을 스치는 것보다 딱 한발짝 더 나아간 정도의 흐릿한 우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먼저 노래 부르는 이의 존재로 말미암아 그들 한 명 한 명의 발걸음이 멈춰서게 되고, 그 멈춰섬은 또 다른 이가 그 곁에 멈춰서게 만듦으로써 그 우연을 보다 선명한 인연으로 직조해냅니다. 그렇게 어느 버스커와 여행객들이 짜놓은 무대 위에서, 이번에는 팁조차 바라지 않는 여행객이 앞으로 나옵니다. 흥에 겨워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또는 수줍어 하면서. 그러고는 아마도 그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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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모습을 지켜보는 스물셋 청년은 갑자기 쓰디 쓴 초콜릿을 베어문 듯한 표정입니다. "다들 누군가 곁에 두고 있는데 왜 나는 혼자일까..." 하는, 어쩌면 평생 동안 그의 발목을 붙잡아 끌어내리려 한 그런 씁쓸함. 달콤하던 술도 어쩐지 씁쓰레하게 느껴지고, 흥겹게 느껴지던 노래 어딘가에서 애잔함이 보이는군요. 다행히, 그런 고독의 순간이 걱정돼 미리 구해둔 동행이 마침 한 마디 걸어주면서, 스물셋은 그 침잠에서 깨어납니다.


하지만 스물여섯은 조금 더 오래 그 순간에 머무릅니다. 사람이 싫어서 떠난 여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그들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음이 싫었던 것임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꿈으로 짊어지고 있다는 말 뒤에는, 아직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스스로가 있다는 사실을 자백하게 되는 순간. 사람을 향한 순례라고 그토록 되뇌며 스쳐간 얼굴들을 되짚는 것조차, 어쩌면 바로 옆의 얼굴들을 마주볼 자신이 없기 때문임을 직면하게 되는 순간.


그렇지만, 이제 스물여섯은 다른 누군가가 말을 건네주지 않아도 그 침잠을 멈출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독에 취하고 그 씁쓸함을 입에 머금고 혀 위로 굴릴 줄은 알아도, 그에 빠져 정신을 놓을 지경까지는 가지 않는 힘을 가졌습니다. 그렇기에 다시 글을 씁니다.



그 힘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마저 풀어내는 것으로 하고, 다시 스물셋의 순간으로 돌아가보지요. 특히 노래 속으로요.


지금 다시 들어보면 막 그렇게 잘 부른 노래 같지 않고 조금은 슬픈 곡조인 것도 같습니다만, 저의 기억은 다르게 증언합니다. 분명 그때 들었던 노래는 너무나 흥겹고 매력적이었다고요. 딱딱하게 말하자면, 아마도 이 기억은 제가 그 순간 낭만에 취해 만들어진 왜곡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왜곡된 기억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울 겁니다. 그 순간의 저 자신을 더 온전히 담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껏 수많은 저의 기억을 보완하고 지탱해온 이 사진과 영상들은, 어쩌면 기억의 방해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객관의 이름으로, 제가 그 순간의 스스로를 향해 온전히 빠져드는 일을 막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영상을 마냥 부정적으로 바라볼 일은 아닙니다. 이 영상이 있기에, 그때는 몰랐던 곡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었거든요. Che sarà. 노래에 어쩐지 쓸쓸함이 묻어있다고 느낀 스물여섯의 생각이 꽤나 정확했던 모양입니다. 고향을 아주 오래 떠나는 이가 부르는 노래더라고요. 그것도, 무언가 꿈을 가지고 떠난다기보다는, 더는 머무를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떠밀리다시피 고향을 떠나면서 부르는 노래. 일자리를 찾아 끝내 산업화되지 못한 고향을 떠나야 했던 남부 이탈리아의 청년들을 대변하는 노래이자, 어쩌면 이촌향도를 정면으로 겪던 또 다른 반도 남쪽의 사람들에게도 와닿을 노래.


바다 건너를 그렇게 자주 드나들며 매순간 자신의 꿈을 향해 질주해 온 어느 로스쿨생에게, 그 앞에서 함께 쓸쓸해 할 자격이 있을까도 싶습니다. 나도 쓸쓸하고 불안하다고, 결국 그 감정만큼은 우리 모두 공유하는게 아니겠냐고, 그 노래 속에 연대가 피어난다고 애써 말해봐도, 어차피 저는 국외자이자 기만자로 남지 않겠어요? 그래도 저는 함께 노래 부르며 같이 쓸쓸해 하는 쪽을 택하렵니다. 저 멀리서 혼자 침잠하는 구보 씨보다, 옆에서 같이 쓸쓸해 하는 샌님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한 소리 들을게 뻔하더라도 쭈뼛거리며 다가갈 때, 친구가 될 가능성이 아주 조금이나마 열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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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언덕에서


사실 스물셋이 베키오 다리에서 머문 시간은 그렇게 길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목적지를 둔 채 잠시 멈춰선 것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렇게 베키오 다리를 마저 건너 아르노 강변을 따라 걷다 미켈란젤로 언덕에 오르고 나니, 해질녘의 노을은 저 멀리 넘어가고 초저녁의 푸르른 밤하늘이 내려앉았습니다. 물론 푸르른 밤하늘이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저 멀리를 바라볼 때나 유효한 말이지요. 이미 주변은 어둑한 정도를 넘어 깜깜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반짝입니다. 가로등 불빛,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그렇듯 미켈란젤로 언덕은 이미 시각적으로도 시끄럽습니다. 그러면서 베키오 다리는 오늘 밤의 서막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노래소리와 그보다도 더 크게 들리는 온갖 언어의 말소리들. 낭만보다는 흥겨움에 조금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시끌벅적하고 왁자지껄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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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혹시 눈치채셨을까요? 이토록 크게 낭만과 떠들썩함에 대해 노래하는 사이, 정작 동행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네, 이상할 정도로 동행들의 목소리가 소거되어 있었죠. 그 이유는 간명합니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가 그리 인상깊게 남아 있지 않거든요. 오히려,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걸어오는 길 위에서, 그리고 다시 피렌체 구시가지 한복판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제 가슴을 채운 것은 소외감이었습니다. 군중 속에서, 그리고 무리 속에서. 앞선 서술들이 노래한 낭만과 떠들썩함이 거짓이라는 것 결코 아니지만, 그 뒤에는 분명 그 순간의 아름답고 의미있었던 편린이나마 뽑아내 남기고자 하는 발버둥도 있었답니다.


물론 그 동행들이 저를 따돌리거나 했던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저, 대부분 이미 이십대 후반에 이르렀던 그들이 나누는 취직이나 결혼 이야기에, 아직 휴학을 고민하고 연애를 고민하던 스물셋의 제가 끼어들고 공감하기는 어려웠을 뿐이지요. 적당히 반응하고 가볍게 웃다가도, 어느 순간 어리둥절해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저 스스로의 미숙함에 웃음짓게 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스스로와 동질적인 존재들만 있는 공간에 머물러왔으면, 고작 그정도의 이야기에 나가떨어지는건지. 특히, 그렇듯 대단히 동질적인 공간에만 머물러왔으면서, 그것만으로 자신이 무척 외향적이고 대화에 능숙한 사람인 양 착각해왔음을 떠올리면... 음, 귀엽습니다. 게다가 이 여행을 떠난 이유 중 하나가 "이제는 조금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서"였단 말입니다. 그러면서 고작 이정도의 이질성에 나가떨어져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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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솔직해지자면, 그때 그 분들이 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막내를 챙겨줄 수도 있는거잖아요! 물론 그 분들이 정말로 저를 안 챙겨주신 것도 아니고, 또 그 분들도 어디까지나 자기 여행을 즐기시는 것 뿐이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냥 가벼운 푸념 정도로 마무리짓겠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때는 실제로 원망이 적잖이 있었던 것도 같아요. 어쨌든 아직 스스로를 돌아보기에는 어리고 경황이 없던 시절이었고, 당장 보이는 건 옆 사람들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애써 그 원망을 떨쳐내려고 애쓰던 스스로의 모습도 보여서 안쓰럽더랍니다. 잠시 그 애쓰던 모습을 가져와 볼까요?

이 시간들은 사실상 동행들로 정의됐는데, 20대 후반~30대의 대단히 현실적인 이야기들(결혼, 출산, 온라인 게임 등)도 들어볼 수 있어 낯설지만 흥미로웠고, 처음엔 어? 싶었던 동행도 막상 경험해보니 착했고, 너무 자상한 형도 만났고. 그래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다시 펴보고 무척 당황스러웠던 일기입니다. 분명히 그 날의 기억이 썩 유쾌하지 않게 남아있는데, 그때의 나는 왜 그 일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기억하고 있지? 하지만 조금 기다려보니 그때의 감정선을 조금은 따라갈 수 있게 됐습니다. 아마, 사람에 나쁜 기억 안 갖고자 발버둥쳤던 것 같아요. 또 쓸쓸한 기억으로 남는 여행은 나쁜 줄만 알았나봐요. 언뜻 보면 어려보이다가도,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보다 어른스러워보이기도 하는 단면입니다.



그러면서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요? 이제 구시가지로 돌아갑니다. 다시 한 20분 정도를 걸어서 구시가지에 닿고 나니, 다른 네 분은 술 한 잔을 더 하러 가신다고 하는군요. 저는 이미 소외감을 느끼던 차이기도 하고, 취기가 왜인지 적잖이 올라왔던 상황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몇 시간 전의 두오모 그리고 종탑 등반을 비롯해 지난 닷새 간의 강행군으로 체력이 남아나지를 않던 차라, 그냥 숙소로 먼저 들어갑니다.


그나저나, 그때는 몰랐는데, 그 돌아오는 길에 상당히 취해있었나봐요. 지나가면서 찍어놓은 이런저런 사진들을 돌아보니, 동선이 무척 신기합니다. 분명 동행들과 헤어진 곳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인근이었던 것 같은데, 산타 크로체 성당은 몰라도 레푸블리카 광장에는 왜 들른 건지 모르겠군요. 음... 아니면 혹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에서의 작별이, 이 피렌체에서의 첫째날이 아니라 둘째날이었던 걸까요? 뭐, 그럴지도 모르겠지요. 저 정도로 흔들리는 사진을 남겨놓을 정신이라면...




image.png걸은 거리만 따지면 약 10km. 하지만, 두오모와 종탑을 올랐고, 미켈란젤로도 언덕이었기에, 무척 힘들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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