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없는 쪽이 더 안전하다

그런데,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by는개




내 마음 한 켠에는 정체 모를 생물 하나가 살고 있다.


어떤 종인지, 식물인지 동물인지, 사람인지 혹은 괴물인지 알 수 없어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매일 아침 약을 삼켜 녀석을 꾹 누르는 것뿐.


그때 눌리는 건 우울 하나가 아니라

나의 기분과 감정 전체였다.


해충을 죽이기 위해 익충까지 사멸시키는 농약처럼,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항암제처럼.

의사는 감정의 진폭 자체를 줄이는 것이라 했다.


과도한 우울에 잠식되지 않는 대신,

평범하고 일상적인 감정들조차 약화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상관없었다.


그 미세한 감각들을 살리자고들기에는

해일 같은 감정을 감당해 내기에는


하루하루의 내가 너무 고단했으니까.












사실 지금의 상태에 꽤 만족하고 있다.


쓸데없는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의무를 가장해 눈치를 주는 것들을 명확히 구별해 낼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의 격랑에 휩싸여 오지랖을 부리다 상처받던 예전의 나보다,

차라리 모든 감정이 거세된 채 ‘우아한 모습’으로 사는 지금이 훨씬 나은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우울증 진단 이후 나는 최소한의 관계만으로 살아갔다.

나가던 모임이나 취미활동 억지로 하던 운동 같은 것들도 죄다 그만두고 방안에만 잠겨있었다.

결혼, 그리고 나은 줄 알았던 우울증 재발.

이후 나는 여전히 비슷하게 산다.


적은 수입으로 나와 반려의 생활을 바카라임지며 살아가고 있다.

그 안에서 나는 생경한 풍경 하나를 목격했다.


언제나 나를 1순위로 두고,

모든 주의를 기울여 나를 배려하는 반려의 모습.


그 기꺼운 정성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평생 누군가에게 1순위였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 나도 누군가에게 뭔가를 퍼주고 싶어 안달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에너지를 동력 삼아 살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가 주는 온기를 기쁘게 받으면서도, 그만큼의 온기를 되돌려줄 ‘연료’가 없다.

연료를 태워 감정의 해일을 만드느니, 차갑게 식은 채 무탈하게 이 관계를 유지하는 쪽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는 고백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욕심도 아니다.
그저 내가 나의 가장 뜨거웠던 조각 하나를 지불하고 이 평온을 샀구나, 하는 서늘한 확인일뿐이다.


나는 이제 내가 알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종(種)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게 나아진 것인지,

아니면 단지 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저 유보 중이다.


아늑하고 우아한,

나의 우울 안에서.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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