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안전하긴 하지만
문제가 없다는 건, 좋은 상태일까.
한동안은 그렇게 믿었다.
별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고,
누군가와 부딪히는 일도 없고,
괜한 말을 꺼냈다가 분위기를 망치는 일도 없는 것.
그게 어른스러운 거라고, 그게 나아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사람들은 나를 편해했고,
대화는 매끄럽게 흘렀고,
나는 더 이상 중심에서 튀어나와 있지 않았다.
딱히 문제 될 게 없었다.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이상한 순간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절대 그냥 넘기지 않았을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누군가의 말이 분명히 걸렸는데도
굳이 짚어 내지 않고, 그냥,
그러든지 말든지 넘어가는 쪽을 선택하고 있을 때.
그럴 때면, 내가 참은 건지 아니면,
애초에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건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참은 거라면 괜찮은 건가.
아무 생각이 없는 거라면,
..... 그건 괜찮은 건가.
한 번은 그런 말을 들었다.
요즘 ##수석님, 되게 편해졌다고.
예전보다 훨씬 좋다고.
기분이 나쁘진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기쁘지도 않았다.
편해졌다는 말이 좋아졌다는 말인지, 아니면 덜 귀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말인지 잘 모르겠어서.
확실히 덜 끼어들고,
확연히 덜 반응하고
확정적으로 덜 말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가 없다, 는 건
이렇게 만들, 어지는 걸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괜찮아진 게 아니라,
그저 조용해진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무언가를 참아서가 아니라
애초에 무엇도 올라오지 않아서
그래서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상태.
그게 안정이라면 안정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단순히 반응이 줄어든 것뿐일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상황에 맞는 말을 고른다.
이 말은 무난한지,
이 반응은 과하지 않은지,
이 정도면 적당한지.
고를 뿐이다. 틀리지 않기 위해.
그런데 가끔, 잘 모르겠다.
그게 맞는 건지는.
틀리지 않는 게,
맞게 사는 건가...?
나는 점점
문제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게 좋은 변화라고 여러 번 생각해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예전의 나는 분명 문제가 많았고,
분명 그것이 병이 되어 우울증까지 왔다.
이젠 우울 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하고
이를 아늑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어 사는데도
분명 이상하다.
그래도 그땐,
자주 부딪혔고, 여러 번 틀렸지만
적어도 뭔가를 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대부분의 순간을 무탈하게 지나간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나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게 나아진 걸까.
아니면 단지,
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저 유보 중이다.
아늑하고 우아한
우울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