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성과 영원성
[인간은 지어진 존재]
아렌트가 1장에서 먼저 하는 일은 '인간의 조건'과 '인간의 본성'을 구별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접촉하는 모든 것을 곧바로 삶의 조건으로 바꾸는 존재다. 생명, 탄생과 죽음, 세계, 다른 사람들, 지구가 모두 조건이다. 하지만 이런 조건이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되지는 않는다. 아렌트는 인간의 본성이 인간이 알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다고 본다.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적 삶을 세 가지로 나눈다. 노동은 생명을 유지하는 활동이고, 작업은 오래 남는 사물의 세계를 만드는 활동이며, 행위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과 행동으로 무언가를 시작하는 활동이다. 세 활동은 시간을 다루는 방식도 다르다. 노동은 먹고 소화하고 다시 먹는 순환을 반복한다. 작업은 집, 탁자, 바카라처럼 삶보다 오래 남는 것을 만든다. 행위는 공동체를 세우고 지켜 기억, 곧 역사의 조건을 만든다.
이 중 행위가 특히 중요하다. 행위는 사물의 매개 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곧바로 일어나는 유일한 활동이고, 새로 태어난 존재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 곧 '탄생성'에 뿌리를 둔다. 서양 철학은 오랫동안 죽음을 붙들고 사유해 왔지만, 아렌트는 탄생을 정치적 사유의 중심에 둔다. 이는 뒤에서 바카라임을 논할 때 중요해진다. 무언가를 시작한 사람이 없다면 바카라임이 귀속될 대상도 없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누구인가]
아렌트의 질문 가운데 눈여겨볼 대목은 "인간은 무엇인가"와 "나는 누구인가"라는 비슷해 보이는 문장의 대조이다. '무엇'은 성질을 묻는다. 이성적 동물, 도구를 만드는 동물, 언어를 쓰는 동물 같은 정의가 그 답이다. 이런 답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같은 종류에 속하는 모두에게 해당한다. '누구'는 다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유일한 존재를 묻는다. 이력서에 적을 수 있는 재능과 장단점은 '무엇'에 속하고, 이력서로 다 담을 수 없는 그 사람 자신이 '누구'다.
사람은 말과 행위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낸다. 다만 당사자는 자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스스로 알지 못하고, 타인에게 보일 뿐이다. 아렌트는 그리스인이 각 사람 곁에 평생 따라다니되 본인은 보지 못하고 곁에 있는 이들만 보는 다이몬을 상상했다는 점을 든다. 또 '누구'는 이야기로 남는다. 누군가가 누구였는지는 그가 주인공인 이야기, 곧 삶의 서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인간을 '무엇'으로 정의하면 그 정의를 충족하는 다른 존재가 나타날 때 인간은 대체될 수 있다. 이성으로 정의하면 더 잘 계산하는 기계가, 언어로 정의하면 더 유창하게 말하는 기계가 인간을 밀어낸다. 반면 인간을 대체될 수 없는 '누구'로 이해하면 이 위협은 성격이 달라진다. 어떤 능력을 누가 더 잘하는가와 무관하게, 그 사람은 그 사람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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