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돋이에 앞서 2>
우리는 매일 삶이라는 광활한 하늘 아래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하늘은 늘 맑지만은 않습니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안,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일상의 크고 작은 근심들은 마치 살금살금 기어 오는 도둑고양이처럼 우리의 마음을 뒤덮습니다.
떠도는 구름들을, 살금살금 기어 다니는 저 도둑고양이들에게 나 화가 난다. 저들이 내가 너와 함께 나누고 있는 것을 앗아가고 있으니. 저 웅대하며 한없는 긍정과 아멘이라는 말 말이다.
말이 필요 없는 사이, 서로를 이미 다 알기에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관계. 차라투스트라는 이 관계를 통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긍정과 아멘"입니다.
"그렇다"(Ja)는 그냥 동의나 승낙이 아닙니다. 이것은 삶을,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전부 다, 즉 조건 없이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차라투스트라가 "운명애"(amor fati)라고 부르는 태도, 즉 일어난 일과 일어날 일 전부를 피하지 않고 끌어안는 태도가 바로 이 "그렇다"입니다. "한없는"(unbegrenzt)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조건이나 유보가 붙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긍정이 아니게 됩니다.
그런데 이 관계에 자꾸 끼어드는 것이 구름입니다. 구름은 선도 악도 아니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흐릿하고 애매한 회색지대를 상징합니다.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어중간하게 걸쳐 있는 것, 즉 차라투스트라가 가장 경멸하는 우유부단함, 애매한 중간지대입니다.
저들이 내게서 너의 그렇다! 와 아멘! 을, 네게서 나의 그렇다! 와 아멘! 을 앗아가 몹시 화가 나 있는 너 북 치는 자여! 내 위에 펼쳐져 있는 하늘이여, 너, 티 없이 맑은 자여! 빛나는 자여! 너, 빛의 심연이여!
"성난 북 치는 자"는 하늘을 부르는 말이 아니라 차라투스트라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스스로 화난 북잡이가 되어 구름을 향해 천둥처럼 두드리고 싶어 합니다. 그는 하늘이 침묵으로 훼손당하는 걸 지켜보다 못해 그 대신 분노합니다. 하늘은 "순결한 자", "빛나는 자", "빛의 심연"이라 불리며 여전히 고요하고 순수한 자리에 머물러 있고, 그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대신 화를 내고 폭풍을 부르는 것은 차라투스트라 쪽입니다.
"축복할 줄 모르는 자는 저주하는 법이라도 배워야 한다!" 이 명쾌한 가르침이 명쾌한 하늘에서 내게 떨어졌다. 이 별은 아직 캄캄한 밤중에도 나의 하늘에 떠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저주가 축복보다 낫다고 말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가 여기서 대립시키는 것은 축복과 저주가 아닙니다. 그가 정말로 미워하는 것은 저 구름 같은 존재, 즉 아무런 태도도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주는 비록 부정적이더라도 하나의 분명한 입장 표명입니다. 반면 구름의 어중간함은 아무것도 걸지 않은 채 흐릿하게 떠 있을 뿐입니다. 차라투스트라에게는 차라리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채로 떠도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어중간한 타협보다는 분명한 결단을, 회의적 관망보다는 전면적인 긍정이든 부정이든 하나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별은 낮에는 보이지 않고 오직 어둠 속에서만 빛을 냅니다. 긍정은 쉬운 밝은 시절에나 지킬 수 있는 원칙이 아니라 — 오히려 회의와 절망이 몰려오는 캄캄한 밤에야말로 이 원칙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삶이 순조로울 때 긍정하는 것은 쉽습니다. 진짜 시험대는 어둠 속에서 입니다.
별은 낮에는 보이지 않고 오직 어둠 속에서만 빛을 냅니다. 긍정은 쉬운 밝은 시절에나 지킬 수 있는 원칙이 아니라 — 오히려 회의와 절망이 몰려오는 캄캄한 밤에야말로 이 원칙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삶이 순조로울 때 긍정하는 것은 쉽습니다. 진짜 시험대는 어둠 속에서 입니다. 이 밤의 진실을 가장 강렬한 시각적 언어로 그려낸 작품이 바로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입니다.
그의 화폭을 채우고 있는 것은 평온하기만 한 밤하늘이 아닙니다. 소용돌이치는 짙은 푸른빛과 칠흑 같은 어둠, 그리고 불안하게 일렁이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삶이 건네는 온갖 근심과 도둑고양이 같은 두려움을 닮아 있습니다. 회색빛 구름처럼 우리를 짓누르는 혼돈이 화면 가득 요동칩니다. 그러나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서, 하늘을 향해 불꽃처럼 타오르는 거대한 별들과 초월적인 빛은 결코 꺼지지 않습니다. 고흐는 가장 절망적이고 캄캄한 고통의 심연 속에서도, 그 모든 혼돈을 거부하거나 도망치는 대신 거친 붓질로 온전히 끌어안았습니다.
낮에는 보이지 않던 별이 밤이 깊어야 비로소 선명하게 빛나듯,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불안이라는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어둠이 밀려올 때, 비로소 우리의 "그렇다!"와 "아멘!"은 진짜 목소리를 냅니다. 그러니 저 흐릿한 회색빛 구름이 두려워질 때가 바로 성난 북 치는 자가 되어 천둥을 울리듯, 가장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우리의 단단한 긍정을 쏘아 올릴 때입니다. 캄캄한 밤, 온갖 불안을 뚫고 타오르는 고흐의 별처럼—우리 안의 별도 바로 그 어둠 속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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