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돋이에 앞서 3>
차라투스트라는 하늘을 신적 욕망으로 바라보며, 자신과 하늘이 "태초부터의 벗"이라 말합니다. 말이 필요 없는 사이, 너무 많이 알기에 오히려 침묵하는 사이. 이어서 그는 회고합니다 — 한때 자신이 성급함에 시달렸던 시절, 사물이 때 이르게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시절을. 그리고 그 성급함으로부터 벗어나 "내버려 두는 법(lassen)"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성급함을 버리고 사물을 내버려 두는 법을 배운 자가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통찰이 바로 "사물 위에는 우연·순진무구·뜻밖·자유분방의 하늘이 펼쳐져 있다"는 선언이며, 그 선언을 지탱하는 것이 "영원한 이성이라는 거미가 없다"는 확인입니다.
나 "모든 사물 위에 우연이라는 하늘, 순진무구라는 하늘, 뜻밖이라는 하늘, 자유분방이라는 하늘이 펼쳐져 있다"고 가르친다면 진정 그것은 축복일망정 모독은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축복(Segnen)"과 "모독(Lästern)"의 의미를 전복시킵니다. 전통 형이상학에서 사물에 우연·순진무구·뜻밖·자유분방을 돌리는 것은 신성모독이었습니다. 신의 섭리와 목적론적 질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를 뒤집습니다. 사물에서 목적과 필연을 걷어내고 순수한 우연성을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도덕적 목적론(선/악, 죄/벌)으로 오염되지 않은 존재 자체의 무구함을 회복하려는 시도입니다.
오, 내 위에 펼쳐져 있는 하늘이여, 너, 티 없이 맑은 자여! 드높은 자여! 내게 있어서 너의 티 없는 맑음, 그것은 네게는 영원한 이성이라고 불리는 거미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거미줄도 쳐 있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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