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니체 122일 차 - 침묵, 하늘에게 말 걸기?

<해돋이에 앞서 1>

byHomo ludens

[침묵이 전하는 지혜]

차라투스트라는 인간이 동물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자, 위로 오르는 자(Überwindender)여야 한다고 외칩니다. 하지만 지상으로 내려온 그를 맞이하는 것은 온갖 세속적 가치들—구태의연한 도덕이라는 '강제',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목적', 그리고 신의 죽음 이후에도 끊임없이 인간을 죄인으로 만드는 '죄과'라는 묵직한 안개입니다. 지상에서 이 짐들을 짊어진 채 아등바등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늘 무겁고 비장하기만 합니다.


그렇다면 차라투스트라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해방의 경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지상의 진흙탕 속에서 함께 뒹굴며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하늘 높이 던져 올릴 줄 아는 '비상의 지혜'입니다.

네(하늘) 높이로 나를 던져 올리는 것, 그것이 나의 깊이다! 너의 티 없는 맑음 속에 이 몸을 감추는 것, 그것은 나의 순진무구이고! 신의 아름다움이 그의 모습을 가린다. 그와 같이 너 또한 너의 별들을 감추고 있구나. 너는 말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너 내게 너의 지혜를 전해주고 있으렷다.

차라투스트라는 서구 형이상학의 오래된 공간적 은유를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우리는 통상 '깊이'를 아래쪽에서 찾습니다. 내면을 파고드는 성찰, 무의식으로의 하강, 심연을 들여다보는 응시─이런 것들이 '깊은 사유'의 이미지를 이룹니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깊이가 스스로를 하늘 높이 던져 올리는 행위, 즉 상승과 자기 포기 속에서 성립한다고 말합니다. 깊이를 찾기 위해 아래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는 『차라투스트라』 전체를 관통하는 자기 극복(Selbst-Überwindung)의 논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위버멘쉬에 이르는 길은 침잠이 아니라 자기를 넘어서는 상승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움은 무언가를 '드러내는' 매개체로 여겨지지만, 여기서 아름다움은 오히려 신을 가리는 베일로 기능합니다. 별들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아마도 해가 뜨기 직전, 별빛이 스러져가는 새벽하늘의 실제 정경을 묘사하는 동시에, 진리 혹은 신성이 직접적으로 노출되지 않고 오직 아름다움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그것도 가려진 채로만 접근 가능하다는 니체 특유의 인식론적 태도를 함축한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니체는 침묵을 지혜의 결핍이 아니라 지혜 그 자체의 전달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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