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벗겨낸 타인의 무심함
오른쪽 팔꿈치 안쪽 살갗이 팔팔 끓는 주전자 스팀 위를 스쳐 지나가는 찰나, 비명 대신 바람 빠진 소리만 목구멍 뒤로 샜다.
호주 시합 중 머물던 숙소의 부엌에서 가족들과 각자의 오전 일정을 앞두고 먹을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중에 일어난 일인데, 주전자 김에 설마 화상까지 입을까 싶었고, 모처럼 들뜬 식탁의 온기를 깨고 싶지 않아 싱크대 물에 팔을 넣고 서서 "별거 아니다"라며 실없이 웃어넘겼다.
어쩌겠어. 내 살갗이 약한 걸.
호주는 큰 대회다 보니 분초 단위로 돌아가는 일정에 묶인 몸으로 현지 병원 예약까지 뚫어낼 여유는 애초에 없었다. 급한 대로 숙소 앞 약국에서 산 소독약과 네모난 거즈, 살구색 반창고가 조달할 수 있는 치료의 전부였다. 아침마다 코트에 나가기 전 퍼스트에이드(First-aid) 부스에 들러 쓰라린 부위에 소독약을 들이붓고 덧댔는데, 호주의 살인적인 뙤약볕은 이 상처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렇게 2주가 훌쩍 지나 거즈를 완전히 떼어냈을 땐, 팔꿈치 아래에 조금씩 거무튀튀해지는 자국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해 검게 가라앉고 있는 화상 흉터였다.
그 이후부터 나는 사람들의 새로운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코트 복도에서 마주친 동료도, 식당에 마주 앉아 있던 지인들도 내 팔을 보며 하나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응시한다.
"어? 팔에 그거 왜 그래요?"
키도 덩치도 어디 가서 작다는 소리는 안 듣는 편인데, 사람들의 시선은 신기할 정도로 그 검게 얼룩진 흉터로 직행했다. 처음 몇 번은 덤벙대다 살을 덴 내 부주의가 민망해서 얼버무렸지만, 같은 질문이 반복되자 이상하게 마음에 얹히기 시작했다.
나에게 그 자국은 낯선 나라에서 가족들이랑 즐겁게 아침을 챙기다 남은 서투르고 애틋한 추억 같은 건데, 타인의 눈에는 거슬리는 ‘오점’으로 스캔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나는 이 화상 흉터를 내 치명적인 결함처럼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질문 하나하나에 혼자 얽매여 끙끙 앓다 보니, 내 꼴이 과대망상 같기도 해 하루는 아내에게 이 고민을 제법 진지하게 털어놓았다. 타인의 시선이 왜 유독 이 흉터에만 머무는지, 세상이란 원래 남의 온전함 대신 흠집 하나를 짚어내도록 설계된 잔인한 무대인지 꽤 비장하게 읊어대기까지 하면서.
이런 내 투정을 잠자코 듣던 아내가 특유의 서늘하고 담담한 톤으로 툭 던졌다.
"그거 약간 직업병에 나르시시즘도 있어 보이는데? 사람들은 그냥 길 가다 반창고 붙인 사람 보면 쳐다보듯 물어본 건데, 당신 혼자 온 세상 시선을 등에 짊어진 사람처럼 굴잖아. 그냥 뜨거운 스팀에 덴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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