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공사판
취직 전 내상태는 이랬다.
공황 - 집중하는 일 못함, 서류 작업이나 프로젝트 같은 머리를 쓰거나 사람 상대하는 일 못함.
그런데 희한하게 운동을 하거나 무엇이 몰입돼 있으면 증상이 없었다.
집에서 하루 종일 누워있으니 오히려 숨이 가빠오고 힘이 든다. 오히려 공황에 집중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깨어있는 동안 고스란히 온몸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 집에 있는 동안 공황에서 도망가려고 신생아처럼 잠을 많이 잤다. 참 무기력하고 무쓸모인 사람이 된 것 같아 슬프다.
보육교사는 몸을 쓰는 직업이다. 그런데 머리도 써야 하는 직업이다. 두 가지를 병행해야 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내가 취직된 분야는 연장반 보육교사이다. 다행히 머리를 써야 하는 분야는 면제인 것이다. 보육교사가 흔히 하는 잡무(차량운행, 행사, 서류, 수업준비)등에서 제외된 업무를 하게 된다.
아이들을 돌보는 육체노동만 하면 되는 것이다.
드디어 월요일이 되었다.
오후 3시에 어린이집에 들어섰다. 낯선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3살 반 아이들 반에 들어갔다. 올망졸망 작은 3세 아이들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고 새록새록 교실에서 근무했던 일이 떠올랐다.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잠시만 눈을 떼면 다치니까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똥 싸는 아이, 도망가는 아이, 교실밖을 나가려는 아이 등 정신이 하나도 없다.
저녁 7시 30분에 마지막 아이가 하원하고 교실 청소를 끝내니 8시가 되었다. 혼이 쏙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첫날은 몰랐다. 이렇게 힘든 줄.. 어찌어찌 걸어서 집에 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더구나 숨이 가쁘고 공황증상이 지속된다. 더 악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을 다치지 않게 봐야 된다는 긴장감에 온몸에 힘을 줬는지 계속 숨을 못 쉬겠고 공황증 상이 온 것이다.
이러다간 오래 근무하지 못할 것 같았다. 며칠 일하면서 희망을 드리는 것보다 빨리 후임자를 구하시도록 하는 게 낫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참는 사람이 아니다. 내 몸의 신호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지체 없이 원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나는 이제 누구와 잘 지내기 위해 참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원장님 하루라도 빨리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제 체력이 도저히 근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루 만에 퇴사한다는 사람이 있을까.
나에 대한 실망보다 나를 보호하자는 생각이 더 컸다.
내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다녀야 되는데 견디는 수준을 넘어선 느낌이었다.
몸이 말해주지 않는가.
"사람 구할 때까지는 할게요."
일말의 바카라임감으로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참아보기로 했다. 사실 그때까지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굉장한 힘듦을 느끼면 어린이집을 급 '추노(도망)'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 구할 때까지는 참아보고 싶었다.
원장님은 많이 실망한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해방감이 느껴졌다.
'아예 처음부터 말한 것은 잘한 일이야.'란 생각이 들었다. 꾹 참고 일하다가 '빵'하고 터지는 것보다 낫다.
참 속이 시원했다.
그런데 다음날, 원장님은 뜻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