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만
사람은 '절대'라는 말을 하면 안 되나 보다.
두 달 동안 들락거렸던 구직 사이트는 신통치 않았다.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고, 이력서를 내도 서류 통과도 안 됐다.
그때의 심정을 말하자면 이랬다.
'어디 한 자락이라도 내가 일 할 곳이 없네.'
'다들 일을 잘하네. 나는 잘하는 게 뭐지.'
'오십 대에 벌써 은퇴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노동강도가 센 곳을 가면 몸이 망가질게 뻔하다. 또 행정업무가 있는 곳으로도 갈 용기가 없다. 공황 때문에 집중이 안되기 때문이다.
작년에 슬롯복지 실습하면서 주간보호센터를 경험한 적이 있다. 그곳의 요양보호사, 슬롯복지사선생님들은 어찌 그리 일을 척척 잘하는지... 그때 든 생각은 이랬다.
'나는 이런 직종에서도 중간도 못하는구나.'
빠릿빠릿하지도 않고, 체력도 좋지도 않고, 공황까지.
도대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란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온다. 14년 전, 그러니까 막내 임신하고 그만두었던 마지막 어린이집 원장님의 전화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전화 통화를 하긴 해도 신앙이야기나 임대아파트 관련 조언으로만 통화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온 전화로 연장반교사 제의를 받는다.
임대 아파트 등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선생님을 못 구해서 힘드시다며 혹시 일해 볼 생각이 있냐고 제안을 하신 것이다.
절대 절대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던 직종이다.
이유는 네 자녀를 키우며 이제 육아는 절대 절대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한번 해볼게요"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을 하고 말았다.
두 달의 구직 활동으로 새로운 일에 대한 부담도 있었던 터였다. 어린이집은 정말 새로운 일은 아닌 것이다.
나는 예전에 자장면집을 운영하며 삼십 대에 운전을 한 적이 있다. 딱 3년 운전하고 안 했다. 그러다가 오십 대에 다시 운전을 하게 된 적이 있다. 그때 신기하게도 운전대에 앉자마자 어제 운전한 것처럼 몸이 기억했다.
어색함 없이 바로 운전한 것이다.
어쩌면 어쩌면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몸이 기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나는 네 명의 자녀를 키웠다.
일에 대한 자신감은 없지만 해낼 수는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도 고작 하루 반나절, 그러니까 4시간 반이다.
노동시간이 짧은 것이다.
공황증상으로 무언가 몰두할 것이 필요한데 어디든 취직하고픈 일이 해결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출근한 지 하루 만에 퇴사할 결심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