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일에 짜증이 날 때
조금 늦게 나온 아침이다.
현관문을 잠그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화면에 뜬 숫자가 12다. 내려오기 시작한다.
11에서 선다.
10에서 또 선다. 문이 열리고, 아무도 타지 않고, 다시 닫힌다. 누가 눌러놓고 계단으로 내려간 모양이다.
9를 지나고 8에서 다시 선다.
그 순간 목 뒤쪽이 뻐근해진다. 숨이 짧아지고, 나도 모르게 버튼을 한 번 더 누른다. 이미 눌러져 있는 버튼이다. 누른다고 빨리 오는 것도 아니다.
알면서 누른다.
엘리베이터가 층마다 서는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람들이 출근하는 시간이고, 다들 같은 이유로 버튼을 눌렀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화낼 상대가 없다.
그런데 짜증은 난다.
짜증은 화와 조금 다르다.
화는 대개 상대가 있다. 누가 무슨 말을 했고, 누가 약속을 어겼다. 화가 날 때는 향하는 곳이 있다.
짜증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 하필 내 앞에서 바뀌는 신호, 내가 선 줄만 줄어들지 않는 계산대, 중요한 순간에 느려지는 인터넷. 누구에게 따질 수도 없고 따진다고 달라지지도 않는다.
생각해보면 짜증이 나는 일의 상당수가 이런 종류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
이상한 건,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오히려 짜증이 더 난다는 것이다.
누군가 잘못했으면 말이라도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걸 하면 된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기운은 갈 데가 없어서 몸에 남는다.
그날 아침을 조금 천천히 돌려보면, 짜증은 한 덩어리가 아니었다.
첫 번째는 10층에서 문이 열리고 아무도 없는 걸 본 순간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생각할 틈도 없었다. 이건 막을 수 없는 쪽이다.
두 번째는 그다음부터다.
'왜 하필 오늘 같은 날.' '계단으로 갈 거면 버튼은 왜 눌러.' 아까 누른 버튼을 또 누르고, 옆 라인 엘리베이터는 벌써 1층에 가 있는 걸 확인한다. 1층에 내려서는 시계를 보고, 회사에 도착해서는 동료에게 "아침부터 엘리베이터가 층마다 서더라고" 하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점심쯤, 그걸로 아직도 기분이 좋지 않은 나를 보면서 '이런 걸로 짜증을 내다니' 하고 한 번 더 언짢아진다.
첫 번째 짜증은 몇 초였다.
두 번째 짜증은 오전 내내 갔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