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나가도 되는 저녁

약속이 취소되고 나서 알게 되는 것

by정세복

오후 네 시쯤 문자가 온다.

"미안, 오늘 못 갈 것 같아.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저녁 일곱 시 약속이었다. 2주 전에 잡은 자리다. 나는 화면을 잠깐 보다가 답장을 쓴다.

"아이고, 어쩔 수 없죠. 다음에 봬요."

보내고 나서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그런데 그 순간, 어깨가 조금 내려간다.

가벼워진다. 저녁이 통째로 비었다는 사실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 집에 일찍 가도 되고,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되고, 누구의 말을 듣고 적절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된다.

이상하다. 나는 이 약속을 기다렸는데.





답장보다 먼저 온 것


여기서 잠깐 순서를 다시 보면 이렇다.

문자를 읽는다. 아쉽다고 답장을 쓴다. 보낸다. 그리고 나서 안도감이 온다.

아니, 정확히는 그 반대에 가깝다.

안도감은 답장을 쓰는 동안 이미 와 있었다. 다만 답장을 쓰느라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폰을 내려놓고 손이 비고 나서야, 아까부터 몸이 편해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머리가 답장을 쓰는 동안 몸은 이미 답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게 안도감의 특징이다. 빠르다. 예의보다 빠르고 생각보다 빠르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정하기 전에 먼저 도착한다.

그래서 정직하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 하는 말은 대개 여러 번 걸러진 것이다.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고, 내가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하고, 관계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한 다음에 나온다. 그 과정에서 원래 있던 감정은 상당 부분 정리된다.

안도감은 그 정리 과정을 건너뛴다.

그러니 취소 문자를 받고 가벼워졌다면, 그건 꽤 믿을 만한 정보다.

문제는 그게 무엇에 대한 정보인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에 안도한 것인가


가벼워졌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가벼워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몇 가지로 나뉜다.

그 사람이 불편했을 수 있다.

만나면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 있다. 나쁜 사람이 아니어도 그렇다. 말끝을 자꾸 확인하게 되거나, 헤어지고 나서 대화를 되짚게 되는 사람. 그런 자리는 끝나고 나면 피곤하다.

그 사람이 아니라 그날의 내가 문제였을 수 있다.

같은 사람을 만나도 어떤 날은 반갑고 어떤 날은 버겁다. 그 주에 일이 몰렸거나, 잠을 못 잤거나,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으면 누구를 만나도 부담이 된다. 이 경우 안도감은 그 사람과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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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과 살아있음 사이를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2020년 창업 이후의 고민을 씁니다. 아직 자유를 꿈꾸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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