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자꾸 지나간 시간을 아까워했을까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느라 오늘까지 놓치지 않기로 했다

by민힐러

오랜만에 이력서를 고치던 날이었다. 경력을 한 줄씩 정리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손이 멈췄다. 오래 일했던 시간과 지금 사이에 놓인 몇 년이 유난히 크게 보였다.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때 일을 계속했더라면 지금 나는 어디쯤 와 있었을까. 회사를 떠난 뒤 바로 다른 일을 시작했다면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지 않았을까.


생각은 금방 다른 곳으로 번졌다. 조금 더 일찍 공부했더라면, 글을 더 빨리 쓰기 시작했더라면, 새로운 일에 겁내지 않고 바로 뛰어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지나간 시간에는 이상하게도 ‘만약’이라는 말이 잘 붙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보다 안정된 나도 만들 수 있었다. 훨씬 앞서 있는 나, 이미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나도 상상할 수 있었다.




상상 속의 나는 늘 지금의 나보다 잘 살고 있었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고 나면 현재의 내가 더 부족하게 느껴졌다. 내가 잘못 선택해서 여기까지 늦어진 것만 같았다.


특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할 때 그런 마음이 더 자주 올라왔다. 지금부터 배우려면 시간이 필요했고, 결과가 생기기까지도 기다려야 했다. 그러면 자꾸 지난 몇 년이 생각났다.


그때 시작했으면 벌써 잘하고 있었을 텐데. 글을 쓰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조금만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지금쯤 더 많은 글을 썼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시작보다 지나간 기회를 먼저 바라봤다. 더 빨리 작가가 되었을 수도 있고, 이미 다른 길 위에 서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한 걸음은 자꾸 늦은 출발처럼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오래 하다 보면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아까워하느라 지금 내 앞에 있는 시간까지 제대로 쓰지 못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보다 어제 하지 못한 일을 더 오래 바라봤다.


지금 한 걸음을 내딛기보다 왜 더 일찍 걷지 않았는지를 후회했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있는 동안 현재도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은 쉽게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어느 날에는 오래된 사진들을 보다가 한동안 손을 멈춘 적이 있다. 사진 속 나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고, 당연히 앞으로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던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또 마음이 아까워졌다. 저때 무언가를 시작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저때는 지금보다 젊었고, 더 많은 기회가 있었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사진을 오래 바라보다 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사진 속의 나에게도 그때만의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내가 아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자꾸 지금의 눈으로 과거의 나를 평가하고 있었다. 지금 알게 된 것을 그때도 알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의 용기를 예전의 나도 가지고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민힐러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두 개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글과 기록을 통해 정체성과 감정을 탐구하는 민힐러입니다. 감성 콘텐츠와 퍼스널 브랜딩을 다루며, 진심 어린 문장으로 삶을 치유하는 힘을 전합니다.

369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9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0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4화늦었다는 생각은 나를 자꾸 작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