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음이 쉬어갑니다
얼마 전 낭독과 명상 클래스에서 자기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마음 하나를 붙들고, 그 마음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불안, 두려움, 외로움, 부끄러움, 인정받고 싶은 마음, 통제하려는 마음. 저마다 자기 안의 주제를 가지고 명상을 했습니다.
저는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왜 다른 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할까. 왜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할까. 마음의 지하계단을 내려가 보니, 그 아래에는 부족한 나를 감추고 싶은 마음이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명예는 나를 돋보이게 하기도 했지만, 미흡한 나를 지켜온 보호막이기도 했습니다. 나를 지켜준 것이면서, 동시에 나를 가리던 가면이었다고 할까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을 내려놓는다면 어떨까. 두려움보다 먼저 자유로움이 느껴졌습니다. 꾸미지 않아도 되는 마음. 어쩌면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야말로, 삶을 더 단단하게 하는 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림바카라 《마음샘》의 늑대도 어느 날 자기 안의 낯선 얼굴을 만납니다. 목이 마른 늑대가 고요한 샘을 찾습니다. 물을 마시려는 순간, 샘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본 늑대는 깜짝 놀랍니다. 그 얼굴은 용감한 늑대가 아니었습니다. 겁 많고 어수룩해 보이는 토끼 얼굴이었습니다.
늑대는 덜컥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모두가 자신을 용감한 늑대로 알고 있는데, 자기 안에 토끼 같은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들키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늑대는 토끼를 쫓아버리려고 했지만, 토끼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자 늑대는 다시 샘으로 갔습니다. 샘물을 다 마셔버리면 토끼도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마셔도 샘물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토끼도 사라지지 않았지요. 화가 난 늑대는 샘으로 뛰어들어 토끼를 잡으려 했지만 이 또한 헛수고였습니다. 늑대가 움직이면 토끼도 움직이고, 늑대가 멈추면 토끼도 멈추었으니까요.
한참 실랑이를 하던 끝에 늑대는 가만히 토끼를 바라봤습니다. 자세히 보니, 토끼는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습니다. 꽤 영리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늑대는 조금씩 그 토끼가 좋아졌습니다.
숨기고 싶은 마음은 물밑의 돌과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고, 물결이 잔잔해지면 비로소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겁나는 마음. 외로운 마음. 부족한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괜찮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자꾸 작아지는 마음.
우리는 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더 강한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더 열심히 뭔가를 해내려고도 하지요. 때로는 그 마음을 없애려고 애쓰기도 합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 〈수선화에게〉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시인은 외로움을 없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고 합니다. 오지 않는 전화를 공연히 기다리기보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외로움과 두려움은 마음의 날씨와 같습니다. 우리가 맑은 날만 골라 살 수 없듯, 마음도 늘 환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날은 눈이 오고, 어떤 날은 비가 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날씨를 탓하는 일이 아니라, 그날의 날씨에 맞게 살아보는 일일지 모릅니다.
《마음샘》의 늑대는 그 일 이후 더 이상 숨지 않습니다. 늑대의 마음샘을 본 다른 동물들도 자기 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모양은 다르지만 저마다 자기만의 마음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른, 마음속 얼굴을 품고 있었지요.
내 안의 토끼를 없애지 않아도 됩니다. 외로움을 몰아내지 않아도 됩니다. 부족한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만히 바라보면, 그 마음도 나를 살게 해 준 한 부분이니까요.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늑대가 되는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샘가에 앉아, 내 안의 토끼를 오래 바라보는 일. 그 작고 여린 마음에게도 자리를 내어주는 일. 마음은 그렇게 조금씩 안심을 배웁니다.
[작은 명상]
지우고 싶은 마음 앞에서 잠시 멈춥니다.
밀어내지 않고, 가만히 바라봅니다.
이 마음도 나를 살게 해온 마음입니다.
#지친날그림바카라명상
#오늘마음이쉬어갑니다
#조수경_마음샘
#정호승_수선화에게
#나를돌보는그림바카라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