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음이 쉬어 갑니다
앞날을 미리 점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조금이라도 안다면 덜 두렵고, 덜 당황하고, 조금 더 느긋하게 대비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뜻밖의 일을 만나도 마음을 단단히 붙잡을 수 있고요.
하지만 우리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삶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 듯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하루하루를 조심스럽게 건너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불안하고, 불확실함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다 어느 날,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이 닥치면 마음은 더 아득해집니다.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 일일 수도 있고, 아무런 기미도 없이 느닷없이 다가온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 묻게 됩니다.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받아들이지 못하니 저항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아마 이런 시간을 누구나 한두 번쯤은 지나왔을 것입니다.
한나 작가의 그림바카라 《풀이 나다》(딸기바카라방)의 소녀도 그런 일을 겪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리에 풀이 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소녀 역시 우리처럼 놀라고 당황합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속상한 마음에 손으로 얼굴을 가려보지만, 풀은 점점 자라고 우거집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소녀는 그런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머리에 난 풀을 뽑아버리고 싶지만, 뽑다가 상처가 날까 두려워 차마 그러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소녀는 어두운 곳으로 갑니다. 빛을 가리면 풀이 더 자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조바심 내는 자신을 돌아보며 시간에 맡겨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녀의 바람과 달리 풀은 여전히 자랍니다.
소녀는 다시 자신의 불운을 탓합니다. 걱정은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소녀가 다시 찾아낸 두 번째 방법은 모자를 쓰는 일입니다. 모자를 쓰면 사람들이 머리에 풀이 난 것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자 위로도 풀이 자라납니다. 심지어 꽃봉오리까지 맺힙니다. 소녀는 더욱 자괴감에 빠집니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은 무너지고,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원망하며 화를 터뜨립니다.
누구라도 소녀와 같은 상황이라면 그럴 겁니다. 원치 않는 일이 갑자기 내 삶에 들이닥쳤을 때, 우리 또한 밀어내고 싶어질 테니까요. 부정하고 싶고, 숨기고 싶고, 가능하다면 없던 일로 만들고 싶어질 겁니다. 더구나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겪게 되는 고초라면 마음은 더 쉽게 위축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소녀는 지금까지의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바꿉니다. 풀을 없애고 숨기고 자라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던 저항이 오히려 자신을 더 힘들게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소녀는 우울하기는 하지만, 남들처럼 꼭 행복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며 자신을 토닥입니다.
“난 내가 필요한 만큼만 행복하면 돼.”
그 말과 함께 소녀는 단단해집니다. 소녀의 머리 위로 연꽃이 피어나고, 그 위로 나비가 날아다닙니다. 풀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소녀는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어느 날, 또 다른 소녀가 주인공 소녀에게 다가와 말합니다. 모자가 참 예쁘다고. 그러자 소녀는 담담하게 대답합니다.
“모자가 아니에요. 나예요. 풀이 나예요.”
여태껏 옆모습과 뒷모습만 보이던 소녀. 이 말을 하며 처음으로 정면을 바라봅니다. 초연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말이지요. 그 순간 소녀의 머리 위로 양귀비꽃, 연꽃, 장미꽃, 나팔꽃 같은 색색의 꽃들이 활짝 피어납니다. 화면 가득 피어난 꽃들은 마치 소녀의 새로운 삶을 축복해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양광모 시인은 시 〈가장 넓은 길〉에서 살다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눈에 덮였다고 길이 없어진 게 아니고, 어둠에 묻혔다고 길이 사라진 게 아니라고 위로합니다. 묵묵히 빗자루를 들고 눈을 치우다 보면, 새벽과 함께 길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격려합니다.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
그렇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크고 작은 파도를 만납니다. 어떤 파도는 예고 없이 밀려옵니다. 그때 우리는 파도 자체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이미 몰려온 파도를 향해 왜 왔느냐고 따져도 파도는 물러가지 않습니다. 날씨가 나쁘다고 기상청에 항의한다고 해서 비가 그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지금의 날씨를 인정하고, 거기에 맞는 옷을 찾아 입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도 당연히 우리 안에 찾아옵니다. 다만 그 마음에 오래 붙들려 있으면, 우리는 이미 벌어진 일보다 더 큰 고통 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때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질문에서 조금씩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삶에는 원하지 않은 풀이 자라고, 예상하지 못한 꽃이 피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불행처럼 보이고 흉터처럼 느껴지던 것이, 어느 날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 되기도 합니다.
풀이 난 삶을 없애려 애쓰는 대신, 그것까지 나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씩 자기 삶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어쩌면 소녀의 머리 위에 피어난 꽃들은 우리에게 묻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 내가 숨기고 싶은 그것마저, 언젠가 나의 꽃이 될 수 있겠느냐고요.
[작은 명상]
숨기고 싶은 나의 모습 하나를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가만히 말해봅니다.
이것도 나의 삶입니다.
#지친날그림바카라명상
#오늘마음이쉬어갑니다
#한나_풀이나다
#풀이나도나는나
#양광모_가장넓은길
#나를돌보는그림바카라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