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을 쓰다가 보내지 못할 때가 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막상 글자로 적어 놓고 보면 마음에 걸린다.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아요."
여기까지 쓰고 한참 화면을 바라본다. 너무 딱딱한가 싶다. 미안하다는 말을 붙여야 하나, 이유를 조금 더 설명해야 하나 고민한다. 한 문장을 덧붙였다가 너무 길어진 것 같아 다시 지운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몇 초면 끝날 것 같았던 답장을 몇 분째 붙잡고 있다. 결국 보내지 못하고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조금 있다가 다시 써야지.'
그런데 조금 있다가가 생각보다 오래간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는 게 문득 생각난다. 메시지 창을 다시 열어보면 아까 써놓은 문장이 그대로 있다. 읽어보고 또 고친다. 이번에는 괜찮은 것 같다가도 전송 버튼 앞에서 다시 멈춘다.
별것 아닌 답장 하나가 하루 종일 마음에 남는다. 특히 거절하거나 내 의견을 말해야 하는 답장은 더 오래 걸린다. 좋다는 말이나 고맙다는 말은 어렵지 않은데, 어렵다거나 싫다거나 이번에는 하지 않겠다는 말은 몇 번씩 고쳐 쓰게 된다.
거절하는 이유가 분명한 날은 그나마 쉽다. 이미 약속이 있거나 시간이 안 되거나 다른 일정이 잡혀 있으면 그대로 말하면 된다. 그런데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때는 갑자기 할 말이 많아진다. 그냥 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조금 쉬고 싶을 수도 있다. 지금 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이유는 답장에 적기엔 어쩐지 부족해 보인다.
'그냥 이번에는 안 할게요.'
이렇게 쓰면 될 것 같은데 차마 보내지 못한다. 내가 읽어도 조금 차갑게 느껴진다. 그래서 앞뒤에 말을 붙인다.
'좋은 제안 감사해요. 그런데 요즘 일정이 조금 있어서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아요. 좋은 기회 주셨는데 죄송해요.'
처음에는 한 줄이었던 답장이 점점 길어진다. 쓰다 보면 내가 왜 안 되는지를 설명하는 건지, 안 된다고 말하는 나를 이해해 달라고 부탁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가끔은 답장을 너무 오래 미뤄서 더 곤란해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내용만 고민하면 됐는데 하루가 지나면 답장이 늦은 이유까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답장이 늦어서 죄송해요.'
새로운 문장이 하나 더 생긴다. 이쯤 되면 조금 우습다. 상대는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읽고 몇 초 뒤 다른 일을 할지도 모르는데, 나는 아직 보내지도 않은 답장 속에서 혼자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있다. 이 말을 하면 서운할까. 너무 성의 없어 보일까. 나를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대체 누구에게 답장을 쓰고 있는 걸까. 실제로 메시지를 보낸 사람에게 쓰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 머릿속에서 이미 서운해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쓰고 있는 건지.
물론 글로 하는 대화는 조심스럽다. 표정도 목소리도 없으니 같은 문장도 다르게 읽힐 수 있다. 나 역시 짧은 답장을 받고 '기분이 안 좋은가?' 생각해 본 적이 있으니까. 그래서 조금 더 부드럽게 쓰고 싶고, 괜한 오해를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그런데 답장을 오래 붙잡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처음에 하려던 말이 흐려질 때가 있다. 분명 어렵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한번 해볼게요.'가 되어 있기도 한다. 거절하려고 열었던 메시지 창에서 결국 수락하고 있는 셈이다. 보내고 나면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그제야 처음 썼던 문장이 다시 생각난다. 얼마 전에도 답장 하나를 오래 붙잡고 있었다. 몇 번을 읽고 고치다가 결국 처음 썼던 문장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아요. 미안해요."
그리고 그냥 보냈다. 전송 표시가 뜨자마자 또 마음이 쓰였다. 너무 짧았나. 이유를 조금 더 적을 걸 그랬나. 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여다봤다. 잠시 뒤 답장이 왔다.
"괜찮아. 다음에 보자."
그게 전부였다. 나는 그 짧은 답장을 보내기까지 혼자 이렇게 많은 말을 했는데, 상대에게는 그냥 하나의 대답이었던 모양이다.
아직도 답장을 쓰다 멈추는 일이 많다. 한 문장을 보내기 전에 몇 번씩 읽어보고, 지웠다가 다시 쓰기도 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요즘은 너무 오래 고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처음 쓴 문장을 다시 읽어본다. 신기하게도 처음 쓴 문장이 내 마음과 가장 가까울 때가 있다. 조금 짧고, 조금 덜 친절해 보이더라도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남아 있다.
모든 말을 완벽하게 해서 보내야 하는 건 아닐 텐데, 나는 그동안 답장 하나에도 너무 많은 마음을 담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한참 쓰다 지운 답장을 다시 처음으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이번에는,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