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해 줄 여자는 많고
15화. 소개해 줄 여자는 많고
“나도 러시아 여자 소개해주라.”
윤해원은 휴대전화 화면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디에 집이 있느냐, 왜 샀느냐, 거기서 살 생각은 있느냐.
그러다 갑자기 여자가 튀어나왔다.
그것도 러시아 여자.
해원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두드렸다.
“이제부터 직접 대시해. 마음에 드는 분 계시면.”
잠시 후 답장이 왔다.
“해주기나 하고 얘기해라.”
해원은 웃었다.
“야, 겁나 힘들어.”
“1도 못 만나봤는데.”
“많을 듯^^~”
그렇게 보내놓고 해원은 잠깐 멈췄다.
많을 듯.
그 말이 조금 이상했다.
강태헌의 주변에는 여자가 많을 것 같았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낯선 사람과도 금세 말을 섞는 남자였다.
그런데 정작 여자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장난처럼 흘렸다.
누가 있느냐고 물으면 없는 것 같고, 없다고 생각하면 또 누군가 있는 것 같았다.
해원은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 없는 걸까.
아니면 말하지 않는 걸까.
그보다 더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왜 내가 그게 궁금하지?
해원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창밖으로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왔다.
아들과 그의 여자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뒤였다.
아들의 여자친구는 러시아 사람이었다.
고기를 먹지 않았다.
버섯도, 마늘도, 파도, 양파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해원에게는 신기한 일이었다.
아들은 원래 뭐든 잘 먹던 아이였다.
그런데 사랑을 하더니 여자친구와 비슷하게 먹고 있었다.
먹는 것까지 닮아가는구나.
해원은 그 모습이 조금 우습고 조금 예뻤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억지로 바꾸라고 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생활 속으로 조금씩 들어가는 것.
좋아하는 음식이 달라지고.
가던 길이 달라지고.
전에 관심 없던 나라의 이름을 검색하게 되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자기 안에 그 사람이 제법 많이 들어와 있다는 걸 발견하는 것.
해원은 다시 휴대전화를 들었다.
태헌은 시장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명절을 앞두고 장을 보러 다녔다고 했다.
한 군데도 아니었다.
“총 일곱 군데 다녀서.”
해원은 눈을 크게 떴다.
“바쁘네. 안 외롭겠네.”
“야, 겁나 힘들어. 산소가 오프로드야.”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장면이 그려졌다.
울퉁불퉁한 산길.
차 한 대가 겨우 올라갈 것 같은 길.
명절 음식을 잔뜩 싣고 이 집 저 집을 찾아다니는 태헌.
평소에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유로운 사람처럼 보이는데, 명절이 되니 또 누구보다 바쁘게 사람들을 챙기고 있었다.
참 이상한 남자였다.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 하면서 혼자만을 위해 사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해원은 메시지를 썼다.
“고생하네.”
보내려다가 지웠다.
너무 평범했다.
다시 썼다.
“그러게 누가 일곱 군데씩 다니래.”
이것도 지웠다.
결국,
“바쁘네. 안 외롭겠네.”
그렇게 보냈다.
사실 묻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너 정말 안 외로워?
그 많은 나라를 혼자 다니면서.
좋은 풍경을 볼 때.
맛있는 걸 먹을 때.
호텔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리고 명절날 사람들이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정말 괜찮아?
하지만 해원은 묻지 않았다.
태헌도 묻지 않았다.
너는 괜찮냐고.
두 사람은 이상하게 중요한 질문 앞에서는 농담을 했다.
그래서 편했고.
그래서 가끔 답답했다.
잠시 후 태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제주도 나가서 남편이랑 살아.”
해원은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장난인지 진심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이었다.
그 뒤로 또 메시지가 왔다.
“거기 이혼녀 많더라.”
해원은 웃음이 나왔다.
“거기 환자 많아.”
“표선에.”
태헌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어떤 말은 한 발 가까이 들어왔다가, 다음 말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빠져나갔다.
해원 역시 그랬다.
“나도 러시아 여자 소개해주라.”
그 말에 왜 아주 조금 기분이 이상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대신 웃었다.
소개해주지 뭐.
예쁘고.
성격 좋고.
여행 좋아하고.
태헌의 자유를 귀찮아하지 않는 여자.
그런 여자를 만나면 잘 살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마음 한쪽이 묘하게 불편했다.
해원은 자신에게 물었다.
정말 소개해줄 수 있어?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게 우스웠다.
내 남자도 아닌데.
약속한 사이도 아닌데.
좋아한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왜 싫지?
해원은 혼자 웃었다.
“나도 참.”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태헌이었다.
“너 주변에는 다 임자 있다며.”
해원이 답했다.
“응.”
“그럼 나는?”
해원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럼 나는?
무슨 뜻일까.
소개해줄 여자가 없다는 뜻일까.
자기에게도 임자가 필요하다는 뜻일까.
아니면.
해원은 몇 번이나 답장을 썼다가 지웠다.
결국 장난스럽게 적었다.
“너는 알아서 살아.”
곧바로 답장이 왔다.
“너무하네.”
해원은 웃었다.
“혼자 살 팔자라며.”
이번에는 답이 없었다.
1분.
2분.
3분.
해원은 괜히 휴대전화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그러다 태헌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팔자는 바꾸면 되지.”
해원은 그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갑자기 웃음이 사라졌다.
태헌은 또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해원에게는 그 한마디가 자꾸 다른 뜻으로 들렸다.
누구와?
그 말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대신 아주 엉뚱한 말을 보냈다.
“명절 음식이나 잘 먹어.”
“너도.”
“나는 집에서 쉴 거야.”
“잘했네.”
그리고 잠시 뒤.
“너도 좀 쉬어.”
해원은 그 문장을 보며 가만히 미소 지었다.
별것 아닌 말이었다.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평범한 한마디는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해원은 그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었다.
누가 그 말을 했느냐였다.
창밖으로 해가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해원은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태헌에게 소개해 줄 여자는 많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예쁜 여자도 많고.
좋은 여자도 많고.
혼자인 여자도 많다.
그런데 이상했다.
막상 한 사람을 골라 태헌 옆에 세워보려니 마음에 드는 여자가 하나도 없었다.
해원은 결국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냥 네가 알아서 찾아.”
잠시 뒤 휴대전화가 울렸다.
태헌이었다.
“그래야겠다.”
해원은 그 말을 읽고 묘하게 서운해졌다.
정말 알아서 찾겠다는 건가.
그 순간 또 하나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근데 멀리서 찾을 필요 있나?”
해원은 그대로 굳었다.
화면 위에는 그 한 문장만 남아 있었다.
멀리서 찾을 필요 있나.
해원은 답장을 쓰지 못했다.
이번에는 장난으로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도 무서웠다.
그래서 휴대전화를 가슴 위에 엎어놓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이상하게 심장이 빨리 뛰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우습다.
소개해 달라고 할 때는 괜히 질투가 나더니,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고 하니
이번에는 겁이 났다.
어쩌면 두 사람 사이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누군가를 찾는 일이 아니었다.
이미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
바로 그것인지도 몰랐다.
기억을 꿰매는 사람 황미순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