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온 걸음마다 꽃길이었다
추억 , 사랑, 그리움, 설레임
유난히 좋아하는 단어들 앞에 꼭 붙어 다닌 얼굴이었다. 누가봐도 적다 할 수 없는 나이를 지나다 보면 이렇게 아주 오래전의 사람과 그날의 공기와 냄새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질 때가 있다. 이 정도로 가슴이 아파도 되는 건가? 사람이 이렇게까지 초라해질 수 있나? 하는 느낌이 하루가 멀다하고 나를 찾아오던 때이기도 하고.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 했지. 지나고 보면 그건 그냥 온실속의 화초가 밖으로 나와 처음 겪는 성장형 체험판에 불과할 뿐이라면서.
우리가 듣던 전공수업은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꽉 찬 수업이 대부분이었다. 아침9시에 출근하여 오후6시에 퇴근하는 고달픈 온라인 게임인들처럼 아침마다 미어터지는, 그것도 버스가 한, 두 대 밖에 없는 학교를 향해서 우리 학생들 역시 고군분투하며 치열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었다. 한 번 시작하면 3시간을 연달아 듣게 되는 수업도 부지기수, 도대체 점심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알차게 보낼 것인가? 이것이 고민이 되던 날도 있었다.
그날은 이른 점심을 먹었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빈 강의실에 앉아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별 것도 아닌 말에 꺄르르 웃어 어쩔 줄 몰라 하던 우리. 어른들 말씀처럼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난다던 시절이 바로 그때의 우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로버트 패틴슨.
딱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뉴문에서 보고 외국인은 달라도 다르구나 싶어 턱 빠지게 감탄이란 걸 했는데 그런 미모를 같은 학과 교실에서 마 주보게 될 줄이야. 연예인 닮은 상은 경험상 묘- 하게 애매하게 생긴 사람들이 많았는데 첫사랑 J는 어느 각도로 보나 입체적인 인물로 눈호강을 제대로 시켜줬다. 함께 수업을 듣기라도 하는 날이면 화장실 거울 앞에 시간 할애를 정말 많이 했다. 옷 매무새를 갖춰도 보고 눈코입을 뜯어 보면서 그야말로 수색하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해부하듯 뜯어보는 거였다.
점심을 먹고 휴게시간이었다.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A반의 문은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약간 무료하다 싶던 시간이 계속 이어지던 때쯤, 첫사랑 J가 폭풍워킹으로 복도를 걸어오고 있었다. 기대한 일은 일어나기 어렵고 기대하지 않은 일은 선물처럼 등장하는 일상. 그래서 어디든 성실함을 발휘하여 열심히 살아 볼만 하다는 나름대로의 인생철학이 이 순간에 빛을 발할 줄이야! 강의실 입구는 활짝 열린 채였다. 나는 그중에서도 출입구랑 가장 가까운 맨 앞줄 의자에 앉아있었지 말이다.
우연히 고개를 돌린 그 순간! 복도 모퉁이를 막 돌아 나오는 그가 보였다! 하늘에서 용이 내려와 앉아도 저렇게 우아하고 아름다울까 싶은 청년의 아우라는 결코 흔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단박에 알아보았다. 걸음걸이도 어찌나 씩씩한지 갓 군대 제대한 현직 모델 같았다.
나에게로 걸어오는 너는 아니겠지만 왜 저 걸음의 이유가 마치 나일 것만 같은 묘한 감정이 들었는지 말이다. 친구들은 멀리서 다가오는 그를 보며 “같은 남자가 봐도 쟤는 참 멋있는 것 같다.” 라는 말을 혼잣말처럼 하고 있었고 네가 보기에도 쟤는 멋지구나? 공감하고 있을 찰나! 나는 이상하리만치 너무 떨려 친구에게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오두방정을 떨었다. J가 오는데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너는 떠들어라 나는 잔다 딱 이런 분위기를 풍기던 친구는 무심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다 긴 다리로 출입문을 세게 걷어 차 닫아 버렸다. 나는 오잉? 하는 눈빛이 되어 친구를 봤다. 쿵 소리와 함함께 문이 어찌나 야무지게 닫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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