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동행

한집의 타인

by양다경

1995년


언제부터였을까.
인희는 남편과의 관계가 그저 그런 일상을 반복하는 진부한 관계로 변해버렸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철없던 시절,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무작정 선택했던 결혼 때문이라고 스스로 되새겼다.
남편의 극진한 관심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무관심 속에서 자신이 점점 투명해지는 듯한 외로움만은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한 번쯤은 자신을 제대로 바라봐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언제 꺼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인희는 그렇게, 마음속에 쌓여가는 외로움을 언제까지 혼자 삼켜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중년의 부부에게도 새로운 감각과 기억을 되살릴 순간이 필요했다.
인희는 그저 멈춰버린 듯한 두 사람의 일상에 작은 변화라도 일어나기를 바랐다.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만 있다면, 오래 잠겨 있던 마음의 문을 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품은 채 인희는 무심히 달그락달그락 그릇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밤 8시.

현관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 철규였다.

그는 늘 한결같았다. 회사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정확히 같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철규는 인희의 인기척을 느꼈다. 인희 역시 부엌에서 나와 남편을 바라보았다.

“왔어요.”

“어…”

두 마디 외에 둘은 아무런 말이 없다.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가는 남편. 인희는 그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바라보았다. 슬롯에 치인 세월이 스며든 탓인지, 그의 머리칼은 엿가락처럼 이리저리 휘어져 보였다.


​

사실 인희는 남편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다녀왔어요?” “회사 일은 어땠어요?” “김나희 씨는 잘 지낸대요?”

별 의미 없는 안부라도 건네며 하루의 틈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고된 시간을 보냈을 남편에게 괜한 말을 꺼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철규는 원래 자신의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있었던 일, 사람들과의 관계, 힘든 순간들까지도 대부분 혼자 삼키는 편이었다.

김나희라는 사람의 근황이 떠오른 것도 얼마 전 철규가 그녀의 결혼 축의금에 대해 짧게 언급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인희는 “많이 힘들었죠?”, “오늘도 고생했어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그런 말조차 철규에게는 쉬는 시간을 방해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말없이 쉬게 해주는 것,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남편을 위한 배려라고 믿었다.

그래서 인희는 또 한 번 마음속 말을 삼켰다.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인희가 선택하는 익숙한 방식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는 남편을 향한 배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서운하다는 마음, 외롭다는 마음까지 함께 묻혀 있었다.

​


남편 역시 집에 돌아오면 늘 하던 순서대로 움직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먼저 방으로 향했다. 옷을 벗어 장롱 안에 가지런히 걸어두고, 잠시 뒤 안방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묻혀온 피로와 먼지를 씻어내듯, 따뜻한 물아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익숙해졌다.

예전처럼 인희가 옆에서 하나하나 챙겨주지 않아도 되었다. 옷을 받아주고, 물을 준비하고, 이것저것 살피는 손길도 이제는 필요하지 않았다.

철규는 오히려 그 편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인희를 위한 일이라고도 여겼다. 괜히 자신의 피곤함을 드러내고, 신경 쓰게 만드는 것보다 혼자 정리하고 쉬는 것이 아내를 배려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아마 철규는 그것이 중년 부부에게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평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서로를 편하게 해주는 것.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편안함은 두 사람 사이에 조용한 거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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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과 사랑, 이별과 삻에 관한 이야기를 씁니다. 현실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오래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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