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마주 볼 용기

안녕, 친구

by양다경

채팅창에 경준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 난 거짓말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

순간 인희의 손가락이 멈췄다.

마우스를 잡은 손에도 괜히 힘이 들어갔다.

'잠깐만… 이거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곧 다시 생각했다.

'아니야. 설마. 세상에 사람이 몇 명인데.'

인희는 마음속 일렁이던 감정을 겨우 가라앉힌 뒤, 조심스럽게 글자를 눌렀다.

- 무슨 일 있었어?

짧은 문장이었다.

곧 경준의 글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 수호라는 친구가 있는데, 난 여태 나보다 한 살 많은 줄 알았거든. 그런데 알고 보니 한 살 어리더라.

인희는 눈을 깜빡였다.

'…한 살?'

별것 아닌 숫자였다. 하지만 나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인희의 마음에는 작은 불안이 피어올랐다.

잠시 후 경준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 한 살 차이가 중요한 건 아니야. 그런데 왜 굳이 거짓말을 했을까 싶더라. 난 그게 더 이해가 안 됐어.

인희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아… 또 거짓말.'

그 단어 하나에 괜히 어깨가 움찔했다.

마치 누가 옆에서 "찔리는 사람?" 하고 물어본 것 같았다.

경준의 메시지가 계속 올라왔다.

- 거짓말은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시작하잖아. 그런데 결국 계속 속이는 일이 돼.

인희는 화면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정말 별것 아니었다고.'

속으로 변명했다.

하지만 곧 스스로에게 반박했다.

'그런데 그 별것 아닌 게 몇 달이 됐잖아.'

그새 또 메시지가 도착했다.

- 어째서 거짓말이 진실인 것처럼 보일 수 있었을까?

그 문장은 인희를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경준은 분명 수호라는 친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문장 하나하나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 같았다.

고등학생이라고 했던 시간들.

아무렇지 않은 척 이어온 대화들.

외롭다는 이유로 시작한 작은 거짓말.

처음에는 그저 숨기고 싶었던 작은 비밀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거짓말은 자신도 감당하기 어려운 커다란 그림자가 되어 있었다.

인희는 천천히 화면에서 시선을 떼었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아…"

마치 경준이 채팅창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경준은 아무것도 몰랐다.

혼자 죄바카라감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저 친구의 나이 속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수한 말이 오히려 인희에게는 가장 아픈 질문으로 돌아왔다.

'나는… 언제부터 거짓말 속에 살고 있었던 걸까.'

인희는 한동안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채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채팅창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 비밀을 들여다보는 창문 같았다.

잠시 후 경준의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 어떤 이유로 시작된 거짓이라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할 뿐이야.

담담한 문장이었다.

그런데 인희에게는 이상하게 무겁게 들렸다.

'아니… 왜 이렇게 말을 잘해?'

순간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너 지금 친구 얘기하는 거잖아. 왜 내가 혼나는 기분인데?'

하지만 곧 스스로 입을 다물었다.

'혼나는 기분이 드는 건… 찔리는 게 있어서겠지.'

인희는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글을 적었다.

- 사소한 거짓이라도… 순간의 마음 때문에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 악의가 없었다면….

한 글자 한 글자 누르는 손끝에는 작은 기대가 담겨 있었다.

'이번만큼은 내 마음을 조금 이해해 주면 좋겠다.'

경준이 그리 말해주기를 바랐다.

"그럴 수도 있어."

"사람은 누구나 외로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채팅창은 한동안 조용했다.

인희는 괜히 화면을 새로 고쳤다.

한 번.

또 한 번.

'혹시 인터넷이 끊겼나?'

그런 생각까지 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잠시 뒤, 경준의 답장이 올라왔다.

- 관대하구나. 하지만 미화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야.

인희의 눈이 커졌다.

'관대하구나?'

처음에는 칭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어진 문장을 보는 순간 알았다.

아니었다.

- 달콤했어도 멈췄어야지.

인희는 화면을 바라본 채 굳어버렸다.

'달콤했다….'

그 단어가 마음 한가운데 꽂혔다.

경준은 그저 친구의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희에게는 마치 자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처럼 들렸다.

그 말은 누군가를 향한 충고였다.

그러나 결국 가장 깊숙한 곳에 닿은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인희는 천천히 화면에서 시선을 떼었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 왜 오늘 이런 철학 강의를 듣게 된 거야."

물론 경준은 몰랐다.

자신의 평범한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하루 종일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질문이 되고 있다는 것을.


'그렇구나….'

인희는 천천히 깨달았다.

자신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거짓말을 예쁘게 포장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거짓을 아름답게 꾸미며, 그 안에 숨어 있으려 했구나.'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스스로가 한심했고,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나는 나름 이유가 있었잖아.'

마음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변명했다.

'외로웠잖아. 누구한테라도 기대고 싶었잖아.'

하지만 곧 또 다른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래도 타인을 속이면 안 되잖아.'

인희는 속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만 머릿속에 있는 양심이 너무 성실했다.

평소에는 조용히 있다가 꼭 필요 없는 순간에 나타나 정확한 말만 골라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날 채팅은 서둘러 끝냈다.

하지만 끝난 것은 채팅뿐이었다.

'난 거짓말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

경준의 그 한마디는 마음속 깊은 곳에 박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문득문득 떠올랐다.

아무 일도 없는 평범한 날에도, 설거지를 하다가도, 빨래를 개다가도 그 문장이 불쑥 나타났다.

마치 마음속에 알림 설정을 해둔 것처럼.

인희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진실…. 그까짓 게 뭐라고.'

씁쓸한 웃음이 입가에 걸렸다.

'진실이 내 꿈을 지켜준 것도 아니고, 내 삶을 바꿔준 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몇 번이고 자신을 달랬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 말을 하면 할수록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자신이 애써 외면하려 했던 진실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 숨겨둔 물건에 손전등을 비추는 것처럼.

결국 인희가 피하고 있던 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진실을 마주한 뒤, 더 이상 자신을 변명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후 인희는 며칠 동안 이층 방에 올라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철규도 별생각이 없었다.

'드디어 컴퓨터가 지겹구나.'

속으로 혼자 흐뭇해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사흘째가 되자 오히려 이상했다.

매일 저녁이면 계단을 오르던 사람이 소파에서 TV만 보고 있는 것이다.

철규는 슬쩍 눈치를 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여보, 이층 방 안 가?"

인희가 고개를 들었다.

"왜요?"

"아니… 늘 올라가던 사람이 안 가니까 괜히 허전하네."

잠시 뜸을 들이던 철규가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너무 참견했나?"

인희는 피식 웃었다.

"그 관심, 백만 년 만이네."

철규도 머쓱하게 웃었다.

"그 정도였어?"

"백만 년도 봐준 거예요."

잠깐 웃음이 오갔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부엌 식탁에 앉아 물을 마시던 인희는 문득 생각에 잠겼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왔을까.'

처음에는 그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한 대화였다.

그러나 어느새 사실을 감추고, 거짓을 덧붙이는 일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안 들키면 괜찮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하루를 넘기고, 또 하루를 넘겼다.

하지만 거짓말은 이상했다.

처음에는 내가 끌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거짓말이 나를 끌고 다니고 있었다.

그 생각에 인희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그만하자.'

마음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점점 또렷해졌다.

감춰 둔 흔적들과 마주해야 했다.

철규가 우연히 비밀을 발견해 깊이 실망하기 전에.

무엇보다 자신이 더 늦기 전에.

인희는 오래도록 외면해 왔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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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과 사랑, 이별과 삻에 관한 이야기를 씁니다. 현실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오래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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