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고교 교장 선생님의 만남

파란 고등학교

by양다경

파란 고등학교


그 학교는 제법 이름난 명문고였다.


아이들 저마다의 개성을 존중하며 각자의 적성과 재능에 맞춘 특성화 교육을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은 교장 선생님이었다.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한발 물러서서 학생들을 살피고, 학교의 크고 작은 일에도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귀감이 된다는 소문이었다.


철규는 우연히 인희와 경준의 채팅창을 통해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된 것이 있었다.


강경준이 다니는 학교 역시 파란 고등학교였다.


철규는 경준이라는 이름만 떠올라도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불편했다.


아무리 애써 외면하려 해도 쉽게 털어낼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준이 그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 자체는 싫지 않았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이참에 인희가 스스로 경준과 자신의 차이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달갑지 않은 사실이라 해도 인희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을 조금씩 마주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철규는 한 번 경준을 직접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 아이에게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따뜻함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경준이 인희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했던 걱정보다, 어쩌면 강경준이라는 아이가 인희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철규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모습에 스스로 조금 의아했다.


‘그래……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철규는 자신도 모르게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는 결심을 굽히지 않고 학교를 찾아갔다.


그리고 교장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설국과 마주하는 순간, 철규는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됐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나왔다.


‘내가 지금 학교에 입학하러 온 건가…….’


철규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아니라 아내가 입학할지도 모르는 학교이다.


파란 고등학교의 교장인 설국은 내면의 선함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온화한 인상에 인정이 많아 보였고, 왠지 무슨 이야기든 끝까지 들어줄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철규는 긴장한 탓에 살짝 내려온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렸다.


그리고 괜히 셔츠도 한번 매만졌다.


“안녕하세요.”


설국도 빙그레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그렇게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철규는 먼저 인희의 현재 상태를 설명했다.


그리고 왜 인희를 학교에 보내려고 하는지, 지금까지의 상황을 차분하게 털어놓았다.


설국은 처음에는 조금 놀란 듯 얼굴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하지만 철규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자 오히려 표정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설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완벽하다고 하는 기계도 사용하다 보면 작동이 멈추기도 하고, 정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습니까?”


철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니까요. 많이 당황하셨겠습니다.”


설국은 따뜻한 눈빛으로 철규를 바라봤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으로 사모님을 잠시 학생으로 지내게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방법 같군요.”


설국의 이해심 깊은 말에 철규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잠시 학생으로…….’


말로 들으니 이상했다.


아내가 학생이 된다는 게 아직도 현실감이 없었다.


“다만…… 자신의 현재 기억을 잃은 채 스스로를 어린 학생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조금 염려가 됩니다.”


설국은 고민스러운 듯 손가락을 턱 밑에 가져갔다.


그리고 턱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렸다.


“저도 그 부분 때문에 망설여지기는 합니다.”


철규는 속으로 긴장했다.


‘역시 안 된다고 하시려나?’


그런데 설국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을 학생이라고 받아들이고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국은 조심스럽게 철규에게 말을 건넸다.


“그 외의 사고 능력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설국의 눈치를 철규는 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내키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머릿속에서는 벌써 설득문이 몇 장째 작성되고 있었다.


그때 설국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음…… 그렇다면 일단 걱정하지 마십시오.”


철규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설국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 내 임원들과 선생님들에게도 이야기를 해보고, 사모님께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의논해 보겠습니다. 좋은 쪽으로 결과를 말씀드리지요.”


철규는 잠시 말이 없었다.


‘좋은 쪽으로?’


생각보다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것 같았다.


그는 혹시 설국이 말을 바꿀까 봐 시시각각 반응을 살폈다.


하지만 설국의 표정은 한결같이 온화했다.


철규는 그제야 조금 안심했다.


설국에게서 교육자의 모습보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타인을 배려하는 한 사람의 따뜻함이었다.


“사실…… 저도 일시적인 현상이었으면 합니다.”


철규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런데 생각보다 오래갈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학생들에게 폐를 끼치게 될까 봐 걱정이고요.”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


“안 된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어떤 결론을 내리시든 제가 이렇게 한 번 건의를 드린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말하면서 턱을 조금 내리는 철구였다.


입가에도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어쩌면 이곳에서 단호하게 안 된다는 말을 듣는 편이 속은 더 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설국이 은근하게 웃었다.


“사모님의 현실 부정이 조금 길어진다고 해서 꼭 나쁠 것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철규가 고개를 들었다.


“이곳은 학교니까요. 공부만 배우는 곳은 아닙니다. 사람과 어울리고,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수양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설국은 마치 오랫동안 준비한 강연이라도 하는 듯 진지하게 말했다.


철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역시 교장선생님은 다르구나.’


그렇게 한동안 대화를 나눈 뒤 철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의 따뜻한 반응만으로도 철규는 몇 번이나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라도 들어주셔서…….”


“제가 오히려 감사해야죠.”


설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철규에게 손을 내밀었다.


“결정되는 대로 최대한 빨리 연락드리겠습니다.”


철규는 그 손을 맞잡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교장실을 나온 철규의 얼굴에는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인희가 이곳에서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걷던 철규는 문득 발걸음을 늦췄다.


긴 복도의 끝을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좌우로 이어진 교실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몇 걸음씩 옮겼다.


왠지 가슴이 들떠 있었다.


그때였다.


불현듯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복도를 정신없이 뛰어가다 선생님에게 걸려 복도 한쪽에 세워진 채 야단을 듣던 어린 시절의 자신.


철규는 '큭' 하고 웃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뛰어다녔지?’


역시 학교는 이상한 곳이었다.


시간을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철규는 잠시 복도를 바라보다가 혼자 중얼거렸다.


“나도 다시 다니라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건 무리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인희를 떠올렸다.


이곳에서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인희.


젊은 시절의 모습은 아니었다.


지금의 모습 그대로였다.


특유의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는 인희.


철규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지금이 오히려 이른 나이일지도 모르지.’


인희가 이곳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철규는 이상하게도 확신이 들었다.


이곳을 기점으로 인희가 자신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복잡하게 얽힌 문제일수록 의외로 엉뚱한 곳에서 쉽게 풀리는 경우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인희가 다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동안 스스로와 싸워 이겨낼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철규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자 그동안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던 통증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그 후 며칠이 흘렀다.


사람들은 어렵게만 생각했던 고뇌도 결국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고 했다.


철규 역시 설국과의 만남 이후 여러 생각을 안고 회사와 집을 오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철규는 다른 일을 모두 제쳐두고 곧장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교장실 앞으로 달려간 철규는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안에서는 자료를 정리하던 설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설국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문을 바라보았다.


문이 열리고 철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넙죽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교장 선생님.”


“걱정 많이 하셨죠?”


설국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우선 앉으세요.”


철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소파에 앉았다.


하지만 속은 달랐다.


심장 안에 방망이라도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쿵.


쿵.


쿵.


‘제발 좋은 소식이어라.’


철규는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설국이 입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철규의 몸이 순간 굳었다.


“의외로 흔쾌히 받아들여졌습니다.”


철규의 눈이 커졌다.


“정말입니까?”


설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인희 씨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 꽤 우수한 학생이었더군요. 활동성도 좋았고 적극적인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설국은 잠시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당시 담임 선생님께도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서인희 학생이 졸업하지 못한 것을 아직도 많이 아쉬워하고 계시더군요.”


철규는 조용히 설국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학교를 다닌다는 이야기를 전했더니 무척 반가워하셨습니다.”


설국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느냐’고 하시더군요.”


철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다만 한 가지는 확인하고 싶습니다.”


설국의 목소리가 조금 진지해졌다.


“현재 상태에 대해서 병원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아…….”


철규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도 병원에 문의해 봤습니다. 아내는 지금의 기억은 거의 없고, 자신이 학생이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도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철규는 잠시 숨을 골랐다.


“병원에서도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더군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하나의 자극이 되어 기억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설국은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물론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지만…… 지금의 상태에서는 그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부탁드리게 된 겁니다.”


철규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그런데 이렇게 흔쾌히 받아들여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 아내를 위해 이렇게까지 애써주셔서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설국은 잠시 철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하나겠군요.”


“뭡니까?”


“교복입니다.”


철규가 눈을 깜빡였다.


“……교복이요?”


설국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 오는데 교복은 입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철규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러네.’


학교는 허락받았는데 교복이 없었다.


철규는 갑자기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는 사실에 잠시 멍해졌다.


그런데 설국은 태연했다.


“그건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철규의 눈이 다시 커졌다.


“교장선생님…….”


설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리고는 교장실 한쪽에 있는 캐비닛으로 걸어갔다.


철규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 정말 이상하게 일이 잘 풀리네'


그렇게 생각하던 중 잠시 멈춰 선 설국이 철규를 보고 말을 덧붙였다.


“사람이 살다 보면 뇌의 착각이 잠시 생길 수도 있습니다만, 서인희 씨에게는 어쩌면 이번이 인생의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아 있는 서류를 보니까 서인희 씨가 고3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자퇴를 했더군요. 무슨 이유에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이번 기회에 서인희 씨가 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서인희 씨를 일단 학교에 등교시켜 보세요. 자신의 현재 기억을 알아차리든, 아니면 자신이 바라는 무언가를 바로잡을 시간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국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을 마쳤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철학자의 깊은 뜻이라도 담긴 듯했다.


철규가 감동한 얼굴로 바라보는 사이, 말을 마친 설국은 교장실 한쪽에 있는 캐비닛 안을 한참을 뒤적거렸다.


“교장선생님…?”


철규가 고개를 갸웃했다.


설국은 대답 대신 한참을 뒤적거리더니 드디어 교복을 꺼냈다.


조금 낡긴 했지만 제법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재학생들이 입고 졸업하면서 남기고 간 교복입니다.”


철규의 눈이 동그래졌다.


뜻밖이었다.


“교장선생님…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시니, 제가 어떻게 감사함을 표현해야 할지…”


교복을 바라보는 순간 철규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사실 교복 문제는 자신이 어떻게든 해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설국이 교복까지 준비해 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철규는 감격한 나머지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교장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설국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 벌 정도 있는데 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철규가 순간 멈칫했다.


“……세 벌이나요?”


“네.”


“왜… 세 벌이나……?”


설국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혹시 몰라서요.”


“무엇이요?”


“학교 다니다 보면 한 벌은 더러워질 수도 있고, 한 벌은 찢어질 수도 있고…….”


잠시 생각하던 설국이 진지하게 덧붙였다.


“나머지 한 벌은 혹시 살이 찔 경우를 대비해서.”


철규의 눈물이 쏙 들어갔다.


“……교장선생님.”


“네.”


"살이 찔 것까지 생각하신 겁니까?”


설국은 잠시 교복 세 벌을 바라보았다.


“교장으로서 학생의 미래를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닙니까.”


철규는 할 말을 잃었다.


방금 전까지 인생과 기억에 대해 심오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설국은 얼굴에 잔잔한 호선을 그리며 탁자 위에 교복을 내어놓았다.


철규는 잠시 머뭇거리다 설국이 내어준 몇 벌의 교복 중 인희에게 맞을 듯한 것 두어 벌을 집어 들었다.


“제 아내에게 맞을 것 같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철규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 정말…….”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철규를 보며 설국은 빙그레 웃었다.


“그만 고마워하셔도 됩니다. 제가 교복을 판 것도 아닌데요.”


철규가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저한테는 정말 큰 도움입니다.”


“그럼 다행입니다.”


설국은 다시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절차는 제가 빠른 시일 내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학생들과 교사들에게도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서인희 씨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함께 도울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철규의 애간장을 태우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생각보다 일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해결될 일이었나?’


철규는 교복을 내려다보았다.


‘교복까지 생겼고…….’


이제 정말 인희가 학교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설국이 철규의 부탁을 받아들인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삼 년 전, 설국은 아내 유미진과 사별했다.


지금은 곁에 없는 아내였지만, 미진을 떠올리면 이번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미진도 갱년기를 겪을 무렵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나도 다시 여고생 때로 돌아가고 싶어.”


“갑자기 왜?”


“그때는 참 용감했잖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미진은 웃으며 말했다.


“그때의 용기와 열정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


그리고 자신 역시 졸업을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나도 언젠가는 교복 입고 졸업식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하지만 당시 설국은 바빴다.


“나중에 시간 나면 하지 뭐.”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어쩌면 정말 넋두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감기인 줄 알았던 미진의 병은 암이었다.


병은 너무나 빠르게 그녀의 삶을 집어삼켰고, 미진은 더 이상 그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결국 몸을 가눌 수 없게 된 미진은 학창 시절의 기억을 마지막 그리움으로 남긴 채 설국의 곁을 떠났다.


설국은 그 후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때 내가 미진의 말을 조금만 더 귀담아들었더라면…….’


그녀가 그렇게 빨리 떠날 줄 알았다면, 무엇이라도 해주었을 것이다.


교복이라도 구해주고, 졸업사진이라도 찍어주고, 할 수만 있다면 졸업식장까지 데려갔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서인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설국은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이번만큼은 누군가의 작은 바람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날 철규가 학교를 나간 뒤 설국은 곧바로 교사들을 불렀다.


그리고 서인희의 학교생활에 필요한 사항들을 하나씩 설명했다.


“무엇보다 서인희 씨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교사들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상한 일이 생기면 바로 저에게 보고하시고요.”


“네.”


“학생들에게도 미리 설명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설국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번 일은 단순히 한 사람의 학교생활을 돕는 것만이 아닙니다.”


회의실 안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설국은 아주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과거의 뿌리에서 자신을 찾고 싶어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지요.”


교사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설국의 말을 들었다.


“이번 일을 통해 우리 학생들도 자신의 현재를 돌아볼 수 있을 겁니다. 무기력하게 흘려보내고 있는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깨닫게 될 수도 있고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잠시 후 한 교사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교장선생님.”


“네.”


“그런데…… 학생들이 좋아하지 않을까요?”


설국이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뜻입니까?”


“요즘 학교가 너무 조용하긴 했거든요.”


옆에 있던 교사가 슬쩍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아이들이 요즘 재미있는 일이 없다고 하긴 했습니다.”


“그래서 서인희 씨가 오면…….”


교사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상당히 화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순간 회의실 안에 묘한 정적이 흘렀다.


설국은 아무 말 없이 교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다른 교사가 슬쩍 말했다.


“교장선생님, 혹시…… 저희 학교에 예능 프로그램이 들어오는 건 아니죠?”


“…….”


설국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학생의 교육을 위한 일입니다.”


“아, 물론입니다.”


교사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입가에는 이미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결국 학교 내에서는 반대하는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무료했던 학교생활에 뜻밖의 사건이 생긴 것처럼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까지 감돌았다.


설국은 그런 분위기를 눈치채지 못한 채 마지막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서인희 씨를 구경거리로 만들면 안 됩니다.”


“네!”


교사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회의가 끝나자 교사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복도에 나오자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그래도…… 어떤 사람일까?”


한 교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게. 고3 마지막 학기에 자퇴했다가 다시 학교에 온다니…….”


“그것도 갑자기 말이야.”


“교장선생님이 직접 데려오시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직접 등교한다잖아.”


두 교사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한 교사가 작게 웃었다.


“아이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러게 말이야.”


“아마 첫날부터 난리 나겠는데?”


그 순간 뒤에서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난리가 납니까?”


두 교사의 몸이 동시에 굳었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설국이 서 있었다.


“아…….”


“그게…….”


설국은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라는 뜻은, 학생을 구경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물론입니다.”


두 교사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설국이 지나가자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들켰네.”


“그러니까 내가 입 조심하랬잖아.”


두 사람은 황급히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다른 교사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첫날은 조금 궁금하네."




철규가 교복을 들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인 뒤 돌아간 후에도 설국은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미진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오래전 그녀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맴돌았다.


“여보…… 누구나 못다 한 일에 대해서 매듭을 짓고 싶은 소망이 있잖아요.”


설국의 시선이 천천히 창밖으로 향했다.


미진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구는 그 소망을 못 이루고 가슴에 영원히 품고 살 수도 있고…… 또 누구는 우연한 기회가 되어 그 소망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설국은 두 눈을 감았다.


“난 늦게라도…… 아니, 죽기 전에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 말이 가슴 깊숙한 곳을 찔렀다.


설국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미진아…….”


이번에는 늦지 않았으면 했다.


누군가에게 찾아온 뜻밖의 기회를 자신이 외면하지 않았으면 했다.


서인희가 학교에서 보내게 될 시간이 단순히 교복을 입고 수업을 듣는 시간이 아니기를 바랐다.


흘러가 버린 시간을 조금이라도 다시 채우고,


그 안에서 자신이 누구였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를 찾아가기를.


그것이 설국이 미진에게 끝내해주지 못했던 일을, 서인희에게라도 대신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설국은 바카라상 위에 남겨진 교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이번에는…… 꼭 졸업하세요.”


마치 그 말이 서인희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하늘 어딘가에 있을 미진에게 하는 말인지,


설국 자신도 알 수 없었다.


​


​


​


​


​


​


​


​


​


​









금요일 연재
이전 13화학교 갈 준비를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