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희의 교복

시작을 위해

by양다경

철규는 교장실을 나오자마자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


그는 복도를 몇 걸음 걷기도 전에 걸음을 잠깐 멈췄다.


장인인 현광에게 이 소식을 한시라도 빨리 전해야 했다.


그는 다급히 밖으로 나와 공중전화를 찾아 뛰듯이 걸었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현광이 있는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 좋은 소식이 있어요.”


수화기 너머에서 현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소식?”


철규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학교에서 흔쾌히 받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래?”


반가워해야 할 상황인데 이상하게 목소리에는 영혼이 없었다.


철규가 멋쩍게 웃었다.


“네. 인희가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어요.”


“그렇구나.”


현광은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딸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딸이 원하던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데 싫을 리도 없었다.


무엇보다 철규가 이 일을 추진한 이유가 인희 때문이라는 걸 현광은 알고 있었다.


‘녀석도 참…….’


겉으로는 못마땅한 척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은근히 안도하고 있었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라.”


“네, 네.”


전화를 끊은 현광은 한동안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학교라…….”


그 순간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본인은 몰랐지만, 이미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동순이 물었다.


“누구예요?”


“철규.”


“무슨 일인데요?”


현광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인희 학교 다닐 수 있게 됐대.”


“정말요?”


동순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잘됐네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히죽.


본인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현광이 슬쩍 바라보았다.


“왜 웃어?”


“내가 언제 웃었다고 그래요?”


“지금 웃었잖아.”


“안 웃었어요.”


“입이 귀까지 올라갔는데?”


동순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건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거죠.”


“그러니까 웃은 거잖아.”


“그럼 당신은 안 기뻐요?”


현광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기쁘지.”


“그런데 왜 그렇게 무뚝뚝해요.”


현광의 시큰둥한 반응에 동순은 못마땅한 듯 입술을 삐죽였다.


그리고 인희에게 학교에 가게 된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인희의 방으로 들어갔다.


인희는 동순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바카라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바카라상 위에 놓인 물건들을 하나씩 가지런히 옮기는 모습이 어찌나 진지한지, 마치 중요한 시험이라도 앞둔 사람 같았다.


인희의 눈동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처럼 맑고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동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풋풋하고 싱그러운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과 과거의 경계를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인희가 안쓰럽기도 했다.


동순은 자신도 모르게 인희를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인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그제야 동순은 자신이 인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고,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었대.”


동순은 머리를 한번 긁적였다.


“너한테 할 말이 있는데.”


동순은 인희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인희야. 너 며칠 있다가 학교에 갈 거야.”


“학교요?”


인희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응. 파란 고등학교라고 아주 좋은 학교란다. 새롭게 전학을 가는 거야.”


“전학?”


“그래. 잠시 아파서 쉬다가 다시 학교에 가는 걸로 선생님들도 알고 있어. 다들 알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학교에 가서는 천천히 적응하면 돼.”


동순은 말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계속 불안했다. “그런데 혹시 학교에 가서 아니다 싶으면 말이야. 엄마한테…….”


그 순간이었다.


“네에!”


인희가 동순의 말을 뚝 끊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인희의 얼굴에는 어느새 환한 웃음이 번져 있었다.


“어쩜 좋아! 어쩜 좋지?”


“……응?”


“준비할 게 많잖아요!”


인희는 손가락을 하나씩 꼽기 시작했다.


“볼펜도 사야 하고, 노트도 사야 하고…… 아! 가방도 괜찮은지 한번 봐야겠어요.”


“인희야, 잠깐만.”


“그리고 학교 가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죠?”


“그렇지.”


“그럼 오늘부터 연습해야겠네요!”


동순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 정도까지는 안 해도 되는데.”


인희는 이미 동순의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친구도 생기겠죠?”


“아마도…….”


“선생님도 계시고요?”


“그렇지.”


“급식도 먹겠네요?”


“……그렇지.”


“와!”


인희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학교에 다시 간다!”


동순은 그런 인희를 바라보다가 결국 옅게 웃고 말았다.


“그래. 그렇게 좋으냐?”


“네!”


인희는 해맑게 웃었다.


“엄청 좋아요!”


동순은 인희의 걱정스러운 모습까지 생각하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마음을 졸였지만, 정작 인희는 학교에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들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소풍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 같았다.


동순은 그제야 조금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가보자.”


“네! 엄마!”


동순이 방을 나서자 인희는 한동안 문을 바라보다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볼펜은 몇 자루 사야 하지……?”


그러더니 곧바로 바카라상 앞으로 달려갔다.


의자를 빼서 앉은 인희는 서랍에서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손목에 걸어둔 끈으로 머리를 질끈 묶었다.


마치 이제부터 인생의 중요한 계획을 세우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인희는 펜을 들고 한참 고민하다가 천천히 글을 적기 시작했다.


‘나는 꿈꾼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적었다.


‘꿈을 시작할 가능성과 희망만 있다면 나는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인희는 자신이 쓴 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박또박 적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 잘 해내고 있다는 자신감.’


잠시 생각하던 인희는 마지막 문장을 덧붙였다.


‘그것 하나면 충분하니까.’


인희는 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입술을 야무지게 다물었다.


“좋아.”


혼잣말까지 했다.


“학교 생활, 제대로 해보는 거야!”


하지만 잠시 뒤 다시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맨 아래에 작은 글씨로 하나를 더 적었다.


‘준비물: 볼펜, 노트, 가방…….’


잠시 고민하던 인희가 또 덧붙였다.


‘그리고 소중한 친구.’


인희는 그 문장을 바라보다가 '풉' 하고 웃었다.


그 웃음에는 새로운 학교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인희의 마음이 청량한 새벽바람처럼 싱그러웠다.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인희는 그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 시각 철규는,


회사 근무가 끝나자 서둘러 처갓집으로 향했다.


이미 장모인 동순에게는 연락을 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철규가 도착하기 전까지 현광과 동순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현광은 신발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한 번 꺼냈다가 다시 넣고, 또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이 신발은 왜 여기 있지?”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혼잣말까지 해가며 신발을 정리했다.


동순도 마찬가지였다.


거실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이미 반짝반짝 윤이 나는데도 마음에 들지 않는지 같은 자리를 몇 번이나 문질렀다.


“여기는 왜 이렇게 얼룩이 있지?”


사실 얼룩은 없었다.


그저 동순이 마음의 얼룩을 닦고 있을 뿐이었다.


현광이 그런 동순을 힐끗 바라봤다.


“여보, 그만 닦아도 되겠는데?”


“당신이나 신발장 그만 정리하고 말해.”


“……알았어.”


현광은 입을 다물고 다시 신발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손은 또 움직였다.


두 사람 모두 철규를 기다리는 동안 괜히 바쁜 척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시간이 더디게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


그때였다.


딩동!


현관 벨이 울렸다.


동순은 기다렸다는 듯 잽싸게 현관으로 달려갔다.


“왔구나!”


“네, 장모님.”


철규가 밝게 인사하며 들어왔다.


신발을 벗은 철규는 거실로 들어오자마자 탁자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평소와는 뭔가 달랐다.


표정이 제법 진지했다.


현광과 동순의 시선이 동시에 철규에게 꽂혔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철규는 아무 말 없이 들고 온 종이 가방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가방을 열었다.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는 손길이 지나치게 신중했다.


마치 중요한 서류라도 꺼내는 것 같았다.


현광이 슬쩍 눈을 가늘게 떴다.


‘대체 뭘 저렇게 뜸을 들이는 거야?’


철규는 가방 안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마침내 무언가를 꺼냈다.


탁자 위에 펼쳐진 것은…….


교복이었다.


“어머나!”


동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현광도 신발장 정리를 하다 말고 고개를 쭉 내밀었다.


“그게 뭔가?”


철규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교복입니다.”


현광이 교복을 바라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교복인 건 나도 알겠네.”


“아…… 네.”


철규의 표정이 순간 멋쩍어졌다.


동순은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얼른 교복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이걸 어디서 구해 온 게야?”


“파란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주셨습니다.”


철규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자랑이 묻어 있었다.


어쩐지 교복을 받아온 것만으로도 큰 공을 세운 사람처럼 어깨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동순은 교복을 펼쳐보았다.


옷깃을 만져보고, 소매를 살펴보고, 치수까지 확인했다.


“어디 보자…….”


어느새 현광이 다가와 옆에서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살펴보나?”


“교복인데 당연히 봐야지.”


“입혀보면 알겠지.”


“당신은 참 무심하기도 해.”


동순은 교복을 다시 한번 펼쳐 들었다.


그러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인희한테 맞겠는데…….”


철규가 얼른 거들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현광이 피식 웃었다.


“자네가 입어본 것도 아니면서 어떻게 아나?”


“…….”


철규의 입이 잠시 다물렸다.


“그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현광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가?”


동순은 그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실소를 터트렸다.


그러고는 교복을 꼭 끌어안듯 들고 말했다.


“아이고, 고마운 일이네.”


동순은 교복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감탄했다.


“안 그래도 옷은 어떻게 구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저도 감사해서 몇 번이나 인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철규는 한껏 신이 나서 설명을 이어갔다.


“이제 학교 승낙도 받았고 교복도 준비됐으니까 간단한 절차만 마치면 됩니다. 남은 문제는 일단 학교에 다니면서 차차 해결해 나가면…….”


그때였다.


철규의 말이 뚝 끊겼다.


시선이 거실 한쪽으로 향했다.


현광과 동순도 철규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방문 앞에 인희가 서 있었다.


인희는 잠이 덜 깬 듯한 얼굴로 거실을 바라보다가 철규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또 저 아저씨네.’


병원에서 도와준 것도 고맙고 집까지 데려다준 것도 고마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왜 자꾸 이 아저씨가 자기 집에 나타나는 걸까?


‘도대체 우리 집에 왜 이렇게 자주 오는 거야?’


인희는 철규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빤히 바라봤다.


철규는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다.


그때 동순이 인희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짓했다.


“인희야! 이리 와봐. 이것 좀 보렴.”


인희가 천천히 다가왔다.


동순이 들고 있던 것을 흔들어 보였다.


“교복이란다.”


“……교복?”


인희의 시선이 천천히 동순의 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인희의 표정이 굳었다.


방금 전까지 철규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저 눈앞에 놓인 교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교복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입고 싶었던 옷.


한때는 너무나 당연하게 입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옷이었다.


하지만 그 당연했던 시간은 어느새 너무 멀리 흘러가 버렸다.


인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을 뻗지도 못한 채 교복만 바라봤다.


마치 꿈속에서만 보던 것을 정말 눈앞에서 발견한 사람처럼.


그런 인희의 마음을 알 리 없는 동순은 환하게 웃으며 교복을 흔들었다.


“어때? 예쁘지?”


인희는 대답하지 못했다.


“네가 입으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니?”


그제야 인희의 손끝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손을 뻗어 교복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기뻐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정말…… 내가 입어도 되는 걸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물보다 웃음이 먼저 나왔다.


인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 이내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번졌다.


눈가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맺힐 것 같았지만, 인희는 끝내 웃고 있었다.


“……예쁘다.”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한마디에는 그동안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기쁨이 모두 담겨 있는 듯했다.


동순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한번 대봐.”


“지금요?”


“그래. 입어보지는 못해도 몸에 대보면 알잖아.”


인희는 기다렸다는 듯 교복을 몸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슬쩍 거울 쪽으로 걸어갔다.


한 번 보고.


옆으로 돌아보고.


다시 앞으로 돌아봤다.


그러더니 치마를 살짝 들어 올려 허리에 대보았다.


“엄마…….”


“왜?”


“이거 정말 제 거예요?”


“그럼 누구 거겠니?”


인희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제 거…….”


그 한마디를 되뇌며 교복을 꼭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철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상했다.


분명 자신이 알고 있던 인희였다.


그런데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마치 오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철규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인희에게 머물렀다.


‘내가…… 인희를 제대로 본 적이 있었나?’


그동안 자신은 인희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아내라는 이유로 곁에 두고 있었지만 정작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어쩌면 자신이 몰랐던 게 아니었다.


그동안 인희가 이런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유가 혹시 자신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규의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먹먹해졌다.


‘참…… 내가 바보였구나.’


인희는 교복을 몸에 대본 채 거울 앞에서 계속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철규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


“응?”


“저 잘 어울려요?”


철규는 잠시 말을 잊었다.


그러다 작게 웃었다.


“응. 아주 잘 어울리네.”


인희가 활짝 웃었다.


“정말요?”


“정말.”


인희는 다시 거울을 바라봤다.


그 모습이 어찌나 좋아 보이는지 철규는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순간 철규에게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이번 학교생활은 인희에게 단순히 학교에 다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잃어버렸던 시간을 다시 만나는 일.


제대로 펼쳐보지 못했던 삶의 한 페이지를 다시 펼치는 일일지도 모른다.


철규는 문득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삶의 행복은…… 역시 멀리 있는 게 아니었구나.’


어쩌면 행복은 늘 우리 곁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그저 잡기도 전에 겁을 먹고, 자신에게는 닿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뿐.


철규는 교복을 품에 안고 거울 앞에서 웃고 있는 인희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작게 미소 지었다.


‘이번에는…… 꼭 잡아보자.’


인희가 그토록 바라던 행복을.


자신도 함께 놓치지 않도록.




​한편 경준은 문득 누군가의 말을 떠올렸다.

모르는 사람을 아는 사람으로 만드는 건 쉽지만, 아는 사람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드는 건 어렵다고.


그런데 경준은 요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아주 제대로 체험하고 있었다.


오늘도 그랬다.


경준은 점심시간이 되자 바카라상에 엎드려 멍하니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한 하루였다.


그런데 아침에 박철규에게 전화가 오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경준아.”


“네.”


“서인희 씨 말이다, 채팅한 아줌마.”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경준의 표정이 굳었다.


“저기 아줌마가 네가 다니는 파란 고등학교에 편입하게 됐어.”


“……네?”


경준은 잠시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씀해 주세요.”


“서인희 씨, 그러니까 내 아내가 네 학교로 학생으로 간다고.”


“…….”


경준은 말없이 전화기를 바라봤다.


‘하필이면?’


수많은 학교가 있는데.


하필이면.


자기가 다니는 학교였다.


경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것도 박철규 씨가 계획한 건가?’


생각해 보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한번 만났을 때도 그는 서인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내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체면이나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그 정도면 학교 하나쯤은 어떻게든 알아봤을 것 같았다.


‘대단한 사람이다.’


경준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대단한 정도가 아닌데…….’


그러다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설마 내가 이 부부 사이에 계속 끼게 되는 건 아니겠지?’


처음에는 단순히 채팅으로 알게 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예 같은 학교에서 만나게 생겼다.


경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가는 거야?’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점심시간.


담임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얘들아, 다음 주부터 우리 반에 전학생이 한 명 온다.”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누구예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예뻐요?”


경준은 대수롭지 않게 듣고 있었다.


그런데 담임이 이름을 말했다.


“서인희 씨라고 나이가 좀 있으셔.”


“…….”


경준의 고개가 천천히 들렸다.


‘뭐?’


담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다.


“3학년 2반 우리 반으로 배정됐으니까 잘 챙겨주도록 해.”


경준은 그대로 굳었다.


‘서인희 씨가? 우리 반?’


경준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설마…….’


혹시 이름이 같은 사람일 수도 있었다.


세상에 서인희라는 이름이 하나뿐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박철규가 아침에 전화로 알려준 이름도 서인희였다.


그리고 학교까지 같았다.


그런데 같은 반?


경준은 천천히 바카라상에 몸을 기대었다.


“……미치겠네.”


옆자리 친구 하진이가 물었다.


“왜?”


“아니야.”


“얼굴이 왜 그래?”


“아니라고.”


“밥 안 먹어?”


경준은 식판을 바라봤다.


밥.


국.


반찬.


평소라면 맛있게 먹었을 음식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서인희…….’


채팅으로 알게 된 사람.


자신은 분명 10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제로 들어 보니 40세의 아주머니였다.


그것만 속였다 해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의 학교에 온다.


거기다 같은 반이다.


경준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게 현실이라고?’


잠시 후 경준은 조심스럽게 식판을 밀어놓았다.


“너 진짜 안 먹어?”


“응.”


“왜?”


경준은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 지금…… 인생이 너무 복잡해.”


하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경준을 바라봤다.


“점심 먹는데?”


“그러니까.”


경준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점심부터 이러면 오후 수업은 어떻게 버티냐…….”


그렇게 경준의 하루는,


박철규의 전화 한 통으로 한 번 멘붕.


담임 선생님의 발표로 두 번째 멘붕.


그리고 서인희와 같은 반이라는 사실로 세 번째 멘붕을 맞이한 채 지나가고 있었다.


경준은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발…… 학교생활만큼은 평범하게 하자.”


하지만 경준은 몰랐다.


그 소망이 얼마나 어려운 부탁이 될지를. 이제는 그보다 더한 의문의 일격들이 차례차례 경준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경준은 바카라상에 팔을 괴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런데 왜?’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이었다.


‘박철규 씨는 왜 하필 내가 다니는 파란 고등학교로 서인희 씨를 보낸 거지?


알고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정말 몰랐는데 우연히 겹친 것일까?’


그런데 또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설령 몰랐다고 해도…… 굳이 나한테 그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나?’


경준의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왜?’


또 하나.


‘왜 하필?


또 하나.


‘그리고 왜 나야?’


어느새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 찼다.


경준은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아…… 복잡하다.”


그냥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박철규라는 사람은 아마도 숨기는 것보다 먼저 이야기하는 쪽을 택하는 사람일 것이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말해두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방식.


어쩌면 그것이 자신의 방식과 다른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경준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내가 학생과 채팅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아내를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사람.


그 정도라면 박철규의 아량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니까 이런 일까지 벌어지는 건가?’


경준은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물론 정확한 결론인지는 자신도 몰랐다.


하지만 일단 자신을 설득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래.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혼잣말까지 했다.


그런데 그때 담임인 정다운 선생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서인희가 학교에 오면 특별한 학생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만학도로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달라는 부탁이었다.


특히 경준에게는 학급반장으로서 학급의 면학 분위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잘 챙겨달라는 당부까지 있었다.


경준은 그 말을 떠올리자 어깨가 축 처졌다.


‘왜 나한테…….’


반장이라는 이유로 갑자기 임무 하나가 추가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놀랐다.


그다음에는 당황했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우연이 필연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경준에게 서인희와의 만남은 이미 충분히 복잡했다.


무엇보다 자신은 두 사람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괜히 자신 때문에 인희의 학교생활이 망가지는 건 아닐까.


그게 경준은 걱정도 되었다.


게다가 인희와는 이미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눈 사이였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앞으로 서인희 씨를 어떻게 대해야 하지?’


열아홉 살로 알고 대화를 나눴던 사람.


그런데 실제로는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 전혀 다른 사람.


경준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걸 어떻게 자연스럽게 대하냐고…….’


하지만 그럴수록 인희에게 함부로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힘들 때면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마음을 내어주던 사람이었다.


그때 받았던 고마움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경준은 결국 마음을 굳혔다.


‘그래. 일단 학생 대 학생으로 대하자.’


인희가 학교에 오고 싶어 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예전 대화를 떠올려보면 학교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이곳까지 오게 된 것도 이해가 됐다.


경준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리고 스스로에게 행동수칙을 정하기 시작했다.


첫째.


괜히 서인희 씨에게 다가가서 아는 척하지 않는다.


둘째.


필요 이상으로 친하게 굴지 않는다.


셋째.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넷째.


절대로 과거 이야기를 캐묻지 않는다.


다섯째.


절대로 ‘왜 나한테 여고생이라고 했어요?’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경준은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 혼잣말했다.


“좋아. 완벽해.”


잠시 후 다시 생각했다.


“아니……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계획을 세우고 있지?”


경준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는 확실하게 다짐했다.


서인희 씨가 학교 낯선 환경 때문에 실망하지 않도록 그건 도와주자.


그저 필요한 순간에만.


경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딱 거기까지만.”


그렇게 다짐하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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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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