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집으로 돌아온 인희
“이리 와 앉게. 어서 얘기해 보게. 당신은 차 좀 내오고.
현광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동순에게 손짓을 연방 해댔다.
말은 차분했지만 손짓만큼은 무슨 큰일이라도 난 사람처럼 부산스러웠다.
동순은 대답 대신 얼른 부엌으로 향했다.
그 사이 현광은 서둘러 소파 밑, 아니 정확히는 소파 앞 거실 마룻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철규도 현광을 따라 앉았다.
새로 들여놓은 탁자가 어색한 듯 그 옆에 얌전히 자리를 잡았다.
현광에게는 외동딸 인희가 늘 마음에 걸렸다.
어릴 때부터 남의 말 한마디에도 마음을 다치는, 여리고 순한 아이였다.
그런 딸을 생각보다 일찍 시집보내고 나니 현광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묵직한 쓸쓸함이 남아 있었다.
동순도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현광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차를 준비해 들고 나왔다.
문제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차를 내오는 동순의 손까지 어색해졌다는 것이었다.
찻잔이 탁자 위에 놓이자 방 안에는 이상할 만큼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마치 어디선가 모래바람이라도 불어온 듯 모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에 침을 발랐다.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 철규를 바라보던 현광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 어서 얘기를 해보게. 박 서방.”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애가 어떻다는 얘기인가…….”
철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현광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었지만, 목소리에는 이미 걱정이 가득 배어 있었다.
“말해보게. 대체 인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그제야 철규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다만 다소 불편한 이야기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그러자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현광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동순은 얼떨떨한 얼굴로 철규를 바라보았다.
철규도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일단은…… 인희를 당분간 여기에 머물게 했으면 합니다.”
현광과 동순의 시선이 동시에 철규에게 꽂혔다.
“본인의 집으로 돌아가면 혼란이 더 클 것 같습니다. 지금 인희는 자신을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장인어른, 장모님께서도 당분간은 인희를 그렇게 대해주셨으면 합니다.”
현광의 눈썹이 꿈틀 했다.
철규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억지로 현실을 인식시키려고 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요.”
“음…….”
현광은 턱을 쓸어내렸다.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표정은 전혀 알겠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철규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리고 제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또 무슨 생각을 했는가?”
현광이 벌써부터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인희가…… 아니, 푸름 엄마가 자꾸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늦은 나이라도 학교에 다니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순간 거실이 조용해졌다.
현광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학교에 보내자는 말씀입니다.”
“사십이 된 아이를?”
“예.”
현광은 잠시 철규를 바라보았다.
마치 철규가 방금 아주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한 것인지 확인하는 눈빛이었다.
“사십이 된 아이가 학교를 다니다니…… 그게 가능하겠나?”
“나이가 들어서도 학교에 다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철규는 태연했다.
“물론 인희처럼 자신을 어린 학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지만요.”
현광은 할 말을 잃었다.
철규는 그런 현광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한 듯 말을 이어갔다.
“장인어른, 장모님도 아시다시피 인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잖아요.”
“그건 그렇지.”
“어쩌면 그때 풀지 못했던 마음의 응어리가 지금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딸이 다시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이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딸의 주민등록상 나이가 사십이라는 것이었다.
“허허…….”
현광은 헛웃음을 흘렸다.
“참으로…… 별일이 다 있구먼.”
“그거야 그렇기도 하겠지만…… 쉽지는 않을 텐데.”
현광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일단 인희의 상태를 좀 더 지켜보고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하면 안 되겠나? 솔직히 말해서 오늘 박 서방이 해준 이야기만 해도 아직 머리가 따라가질 않는구먼.”
현광은 씁쓸하게 웃었다.
옆에 앉아 있던 동순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무슨 말을 꺼내렸는지 한참을 망설였다.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인희 때문에…… 박 서방이 고생이 많네.”
동순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인희가…… 그 아이가 자네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닐 거야. 아마 자기 나름대로 어디론가 빠져나갈 구멍이 필요했던 모양이지.”
동순은 조심스럽게 철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니 어린 학생하고 채팅했던 일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철규는 찻잔을 바라보다가 멋쩍게 웃었다.
“네, 장모님.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했다.
“인생이란 게 뭐…… 그냥 흘러가는 대로만 두기에는 조금 밋밋하잖습니까.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죠.”
철규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인희가 그런 행동을 한 것도 단순한 호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괜찮습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딱 세 번.
그 웃음은 이상하게도 아무도 웃게 만들지 못했다.
동순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침착했다.
너무 침착해서 오히려 마음이 쓰였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괜찮다고, 자네 잘못이 아니라고, 힘들었을 거라고.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오히려 철규의 마음을 건드릴 것 같았다.
동순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찻잔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괜스레 잔 속에 들어 있는 녹차 티백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초록빛 찻물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저 이제 가 보겠습니다! 장인어른, 장모님.”
철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치 오늘 해야 할 말을 모두 끝냈으니 더 이상 이 집에 머물 이유가 없다는 듯했다.
그러더니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었다.
문제는 차가 이미 식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철규는 잠시 찻잔을 내려다보더니 그대로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
현광과 동순은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
철규는 차를 삼키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인희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잘 알아서 하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눈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눈에 힘을 줘도 사람 마음까지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철규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정말 걱정하지 마십시오.”
마지막 인사를 건넨 철규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현광과 동순도 서둘러 따라 나왔다.
“조심히 가게.”
“박 서방, 밥도 잘 챙겨 먹고…….”
철규는 손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네. 걱정 마세요.”
그리고 골목을 따라 걸어갔다.
현광과 동순은 대문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철규의 뒷모습이 골목 안쪽으로 점점 작아졌다.
겉으로는 꼿꼿했다.
하지만 그 등 뒤에는 말하지 못한 근심이 그림자처럼 길게 따라붙어 있었다.
두 사람은 철규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씁쓸했다.
한참 뒤 동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참 딱하게 됐네.”
현광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새삼스레 느꼈다.
철규가 얼마나 인희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이런 일을 겪고도 화를 내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을 안심시키려 애쓰는 모습 때문이었다.
현광은 빈 찻잔을 바라보다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저 녀석…… 괜찮기는 뭐가 괜찮다고.”
동순도 찻잔을 바라봤다.
나른한 오후.
인희의 병실에는 햇살만 길게 늘어져 있었다.
적막이란 참 이상한 것이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만들어 놓고는, 별별 생각을 다 하게 만들었다.
인희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
자신은 분명 고3이었다.
그런데 학교는커녕 병실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특별한 일이 있는 건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그리고 또 하나.
늘 찾아오는 아저씨.
박철규.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구지?’
자기를 구해준 사람이라고는 했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 나를 구한 게 아니라…… 가둬놓은 건 아닐까?’
그럴 때면 괜히 철규가 무섭기도 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따로 있었다.
철규가 오지 않는 날이면 인희는 창밖을 자꾸 바라봤다.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마음까지 조급해졌다.
‘오늘도…… 그 아저씨가 올까?’
인희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왜 기다리지?’
대답은 없었다.
‘싫은 사람이라면서?’
역시 대답은 없었다.
‘그런데 왜 안 오면 섭섭하지?’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답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머릿속에 비밀의 커튼이라도 하나 쳐놓은 것 같았다.
“으으…….”
인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서랍을 열어 약병을 꺼내 들었다.
의사가 정해준 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셨다.
그러다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약병을 다시 바라봤다.
‘하나 더 먹으면 머리가 좀 조용해지려나?’
인희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약병을 내려놓았다.
괜히 더 먹었다가 의사에게 혼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또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학교.
“학교에 가고 싶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인희의 표정이 환해졌다.
인희는 갑자기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는 괜히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누가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자세까지 바로잡았다.
마치 정말 교실에 앉아 있는 것처럼.
“자…… 오늘 수업은…….”
말하다가 혼자 피식 웃었다.
“하하.”
자기도 우스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기분은 좋아졌다.
공부가 그리운 건지도 몰랐다.
아니면 학교에만 있었던 무언가가 그리운 것인지도.
친구들, 교실, 운동장.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던 시절의 막연한 낭만.
인희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노래를 부르다 말고 혼자 고개를 갸웃했다.
“그다음 가사가 뭐였더라?”
잠시 고민하던 인희가 다시 흥얼거렸다.
병실은 여전히 조용했다.
하지만 학교를 생각하는 순간만큼은 이상하게 답답하지 않았다.
마치 단단히 잠긴 창고 안에 갇혀 있다가 학교라는 이름의 문 하나가 열리는 것 같았다.
인희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학교.
그곳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졌다.
오늘도 변함없이 인희는 손꼽아 퇴원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에만 돌아가면 뭐든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부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어쩌면 잊고 있던 꿈까지 다시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은 단순했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인희의 얼굴에는 어느새 자신감이 가득했다.
철없는 아이처럼 해맑았다.
마치 새 학기를 앞둔 여고생처럼 얼굴이 활짝 피어 있었다.
한없이 외로워하고 쓸쓸해하던 중년 여성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언제 왔는지 모를 철규가 그 모습을 병실 문밖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 서 있은 지도 꽤 오래됐다.
하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왠지 지금은 그녀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인희는 혼자 무언가를 생각하며 웃고 있었다.
평소 자신이 알고 있던 인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말을 걸면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무슨 말을 해도 시큰둥한 표정을 짓던 그 인희가 아니었다.
‘이런 모습도 있었나…….’
철규는 문틈 사이로 인희를 한참 바라봤다.
이상했다.
낯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아련했다.
철규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한 사람처럼 천천히 병실 문을 열었다.
“인희 학생.”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붙이는 호칭이었다.
인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철규는 웃으며 말했다.
“좋은 소식 가지고 왔어.”
“좋은 소식이요?”
인희의 눈이 커졌다.
“응. 부모님께도 연락드렸고…… 이제 준비해서 집으로 가면 되겠어.”
순간 인희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마치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학 숙제를 드디어 끝낸 학생처럼.
“정말요?”
인희가 벌떡 일어났다.
“정말 집에 가도 돼요?”
“그럼. 이제 퇴원해도 돼.”
“정말 잘됐어요!”
인희는 두 손을 모으고 활짝 웃었다.
그리고 철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저씨, 정말 고마워요. 저…… 아저씨한테 신세를 너무 많이 졌어요.”
철규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늘 자신을 경계하던 인희였다.
그런데 지금은 눈을 반짝이며 웃고 있었다.
철규는 어색하게 웃었다.
“뭐…… 신세랄 것까지야.”
하지만 그 순간 철규의 가슴 한구석에는 이상하게도 작은 설렘이 내려앉았다.
인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어린 학생처럼 들떠 있었다.
철규는 인희가 활짝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이 어딘가 어색해 빙그레 웃었다.
‘언제였더라…….’
자신의 아내인 인희가 이렇게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본 적이 있었던 게.
“고마워요.”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귓가에 남았다.
철규는 잠시 지난날을 떠올렸다.
하지만 추억에 깊이 잠길 틈도 없었다.
갑자기 삐삐가 요란하게 울렸다.
철규는 화들짝 놀라 삐삐를 꺼냈다.
발신자를 확인하는 순간 얼굴이 조금 굳었다.
장인어른이었다. 나가자마자 공중전화로 전화를 건다.
“네…… 네, 네. 아, 네…….”
철규는 무슨 대단한 지시라도 받는 사람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네. 준비하고 내려가겠습니다. 조심해서 오세요”
전화를 끊은 철규는 삼사십 분 후 병원 입구가 보이는 창가로 곧장 향했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목을 길게 빼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멀리 병원 입구 쪽에 익숙한 두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현광과 동순이었다.
인희를 데리러 온 것이다.
철규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어깨에 들어간 힘을 조금 풀었다.
‘다행이다.’
왠지 마음 한구석이 가벼워졌다.
철규는 인희에게 돌아왔다.
“인희 학생.”
“네?”
“부모님이 벌써 오셨어.”
“정말요?”
인희의 눈이 반짝였다.
“응. 지금 아래에서 기다리고 계셔. 그러니까 이제 나갈 준비 하면 돼.”
“집에 가는 거죠?”
“그래.”
순간 인희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이제 집에 가는구나!”
인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먹까지 살짝 쥐었다.
“이제 탈출이다!”
“…….”
철규는 잠시 인희를 바라봤다.
퇴원이라는 말을 듣고 저렇게까지 좋아할 일인가 싶었다.
인희는 이미 가방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학교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고…….”
혼잣말까지 신이 났다.
철규는 그런 인희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
지금만큼은 저렇게 좋아해도 되겠지.
병실 안에는 오랜만에 인희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그리고 철규는 문득 생각했다.
정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인희가 생각하는 또 다른 ‘학교’로 돌아가는 것인지.
그 답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철규는 인희의 밝은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여쁘기 짝이 없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초록빛처럼 싱그러웠다.
‘이 사람이 이렇게도 웃을 수 있었던가…….’
자신의 아내가 원래 이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규는 잠시 넋을 놓고 인희를 바라봤다.
“아저씨.”
“…….”
“왜 그렇게 절 빤히 보세요?”
인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민망해요.”
철규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라. 미안, 미안.”
“그리고 저 옷도 갈아입어야 하는데요.”
“그렇지!”
철규는 머리를 긁적였다.
인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정작 퇴원 수속을 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퇴원 절차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간호사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둔 덕분에 필요한 절차는 빠르게 진행됐다.
인희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철규는 수납처로 가 병원비를 정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사의 당부를 들었다.
“서인희 씨는 외관상 특별한 문제는 보이지 않아 퇴원을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기억을 모두 되찾은 상태는 아닙니다.”
의사는 잠시 철규를 바라봤다.
“언제든 이상이 있으면 병원으로 오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꼭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네.”
“억지로 기억을 떠올리게 하거나 압박하지 마세요. 천천히 상태를 지켜봐 주십시오. 기억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면 병원에 오셔서 상의하시고요.”
철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병실 앞에서 인희를 기다렸다.
기다리며 다시 의사의 말을 떠올렸다.
‘그래.’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억지로 기억을 끄집어내지는 않겠다.’
지금 인희에게는 자신이 고3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당분간은…….
그 작은 행복이라도 빼앗지 말자.
가슴이 조금 울렁거리는 것만 빼면 철규는 차분했다.
잠시 후 인희가 병실에서 나왔다.
“다 됐어요!”
철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1층에 도착하자 철규의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허전해졌다.
인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무척 허전하다.
하지만 지금은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인희는 아직 정신이 온전하게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철규는 속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인희가 먼저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병원 입구 너머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햇빛은 어찌나 강한지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였다.
인희는 병원 밖으로 나서자마자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우…….”
오랜만에 맡는 바깥공기가 그렇게 좋은지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인희의 눈이 커졌다.
“어!”
익숙한 두 사람이 보였다.
“엄마!”
인희는 기다렸다는 듯 그쪽으로 뛰어갔다.
현광과 동순이었다.
다행히 두 사람만큼은 확실히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동순은 달려오는 인희를 바라보다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두 팔을 벌려 딸을 품에 안았다.
“인희야…….”
목소리가 떨렸다.
“네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동순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현광도 말없이 인희의 짐을 받아 들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인희는 부모님의 눈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해맑은 얼굴로 물었다.
“저 학교 많이 빠졌죠?”
현광과 동순이 동시에 굳었다.
인희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웃었다.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 덧붙였다.
“이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곧 학교 갈게요.”
“…….”
현광과 동순은 서로를 바라봤다.
동순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현광의 입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철규는 그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희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자신이 어느 시간 속에 살고 있는지는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