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이 난다
물을 마시고 싶지만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다. 조금만 더 배송하고 마시자. 몇 집을 더 돌고 나면 다시 생각한다. 어차피 얼마 안 남았는데 그냥 다 끝내고 마실까.
그래. 조금만 더 하자. 그렇게 한 집, 두 집을 더 돈다. 땀이 흐르고 목은 더 마른다. 물 한 모금 마시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것마저 뒤로 미룬다.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다. 신발을 벗고 냉장고를 연다. 그토록 마시고 싶었던 음료수의 뚜껑을 연다.
시원하다. 참았다가 마셔서 그런지 더 시원한 것 같다. 오늘도 잘 버텼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면 또 똑같이 한다. 갈증이 나도 조금만 더. 힘들어도 조금만 더.
허리가 아파도 조금만 더. 일찍 끝날 것 같으면 아예 다 끝내고 쉬자. 택배 일을 하다 보면 이런 '조금만 더'가 참 많다.
하루로 보면 별것 아니다. 문제는 그 하루가 몇 년씩 이어진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감기 한 번 잘 걸리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독감에 걸리고, 입술이 자주 부르트고, 뜬금없이 코피가 날 때가 있다. 나이를 먹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동안 몸에 조금씩 쌓인 것들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한 해를 보내다 보면 추석이 다가온다. 택배기사에게 추석은 달력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물량이 먼저 알려준다. 과일 상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선물세트가 늘어난다. 평소에는 한 번이면 끝날 자리에 물건이 두 겹, 세 겹으로 쌓인다.
'아, 또 시작이구나.' 내게 추석은 한 해 동안 쌓인 피로 위에 등장하는 최종보스에 가깝다.
세상에서는 AI 이야기가 한창이다.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고, 자동화로 모든 것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바뀔 거라고 한다. 그런데 택배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그 이야기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때가 있다. 물건은 여전히 늦게 내려온다.
휴일이 하루 끼면 밀린다. 특정한 날에 물량이 몰리면 하차 시간부터 늦어진다. 배송기사 입장에서는 물건이 도착해야 일을 시작할 수 있는데, 물건이 늦게 오면 그만큼 모든 일정이 뒤로 밀린다. 다른 회사는 어떤 시스템을 쓰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있는 현장은 아직 사람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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