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12 행성의 재앙, 바오밥나무

어린 왕자가 몰랐던 바오밥나무의 단단한 생존법

by사유하는 밥상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⑬

제목 : B-612 행성의 재앙, 바오밥나무

부제 : 어린 왕자가 몰랐던 바오밥나무의 단단한 생존법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사람들은 대개 장미와 사막여우, 그리고 비행사와의 다정한 교감에 주목한다. 서툰 첫사랑인 장미,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어가는 여우, 그리고 고독한 영혼을 위로하는 비행사.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곳에서 눈길이 멈췄다.


바오밥나무의 등장은 왕자가 자신의 일상을 설명할 때 잠깐 등장하는 단편적인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어린 왕자에게 바오밥은 아주 골치 아픈 존재였다.

방치하면 자신의 작은 별을 온통 뒤덮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발견하는 즉시 뽑아버려야 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매일 아침 세수를 하듯 바오밥의 싹을 찾아 뽑는다. 비행사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조른 것도 양이 바오밥의 싹을 먹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장미처럼 길들여야 할 대상도 아니고, 여우처럼 관계를 맺어야 할 대상도 아니다.

바오밥은 그저 제거해야 할 재앙이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바오밥은 정말 재앙인건가?”


어린 왕자의 눈에 바오밥은 너무 커서 위험한 나무였다.

실제로 바오밥나부는 어린왕자가 놀랄만한 외형을 갖고 있기는 하다. 일단 높이가 20m에 달하고 줄기 둘레가 10m가 넘어, 사람이 여러 명 둘러싸야 할 정도로 거대하고 웅장하여 압도적인 거대함을 갖는다. 그 뿐이 아니다. 마치 뿌리가 하늘을 향해 자란 것 같은 기괴하고 독특한 형상을 가지고 있기까지 하다. 하긴 이렇게 거대한 바오밥나무가 그 작은 별에서 자라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어린왕자가 걱정할만도 하다.


하지만 바오밥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바오밥은 자신이 좋아서 그렇게 거대해진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된 것이다.

바오밥이 살아가는 아프리카의 건조한 지역에는 긴 건기가 반복된다. 물이 부족해지면 잎을 떨어뜨려 수분 손실을 줄이고, 굵은 줄기에는 수분을 저장한다. 비가 오는 시기에 물을 확보해두었다가 긴 건기를 견디는 것이다. 수십 미터까지 자라고 사람 여러 명이 둘러싸야 할 만큼 굵은 줄기를 가진 모습도 단순히 ‘큰 나무’라서가 아니다. 그 거대한 몸 자체가 오랜 생존 전략인 셈이다.

어린 왕자에게는 별을 망가뜨릴 만큼 무서운 나무였지만, 바오밥에게 그 거대한 몸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다.

가뭄이 와도 다른 곳으로 도망갈 수 없고, 햇빛이 너무 강하다고 그늘을 찾아갈 수도 없다. 자신을 공격하는 곤충이나 병원체를 피해 달아날 수도 없다. 그래서 식물은 그 자리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만들어왔다.

가뭄과 강한 햇빛, 병원체와 해충 같은 환경 스트레스에 대응하면서 다양한 방어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그 과정에서 여러 식물성 생리활성물질을 만들어낸다.

식물에게는 살아남기 위한 방어 전략이지만, 인간에게는 그 물질이 항산화 성분이고 몸에 좋은 기능성 물질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척박함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다. 결국 누군가를 위한 가치가 된다.


바오밥의 열매가 흥미로운 것도 그래서다.

바오밥 열매의 과육에는 비타민 C와 식이섬유, 여러 미네랄과 식물성 생리활성 성분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식량자원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수퍼푸드 원료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어린 왕자의 별에서는 가장 먼저 뽑아내야 할 재앙이었던 나무가, 지구에서는 오히려 인간에게 영양을 건네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된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어린 왕자는 바오밥을 보며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은 내 별을 망가뜨릴 거야.”

하지만 이젠 조금 다르게 보인다.

바오밥의 거대한 몸은 탐욕이나 욕심의 흔적이 아니라 생존의 흔적이다.

물을 저장하고, 잎을 떨어뜨리고, 긴 건기를 견디고, 마침내 열매를 맺는다. 그렇게 살아남은 나무가 우리에게 풍부한 영양을 건넨다.

어쩌면 우리는 바오밥을 너무 쉽게 판단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크다고. 너무 거칠다고. 너무 많이 자란다고. 하지만 그 크기와 거침에는 그 나무가 살아남아야 했던 척박한 시간이 들어 있다.


우리 안에도 가끔 바오밥 같은 것이 자란다. 감당하기 어려운 걱정이 자라고,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자라고, 나를 괴롭히는 경험이 점점 커져 내 마음의 별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빨리 뿌리째 뽑아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든 바오밥을 무조건 없애야만 하는 것일까? 그 나무가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자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듯이, 우리 안의 불안과 슬픔에도 그렇게까지 자라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지금 내 안에서 너무 크게 자라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무조건 재앙이라고 부르기 전에 한 번쯤 가만히 물어보고 싶다.

“너는 왜 그렇게까지 자라야 했니?”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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