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은 왜 가장 큰 선물이 되었을까
식품영양학자가 동화를 읽는 방법 ②
제목 : 제비는 왜 금 대신 박씨를 물어왔을까
부제 : 씨앗은 왜 가장 큰 선물이 되었을까
어릴 적 『흥부전』에서 내가 가장 기억하는 장면은 박을 타는 장면이었다.
제비가 물어온 박씨를 정성껏 키웠더니 커다란 박이 열리고, 그 속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왔다. 가난했던 흥부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장면이 어린 마음에는 그렇게 통쾌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다시 읽어보니, 내가 궁금해진 것은 박 속에서 나온 금은보화가 아니었다.
왜 하필 박씨였을까.
은혜를 갚으려면 금덩이를 물어와도 되고, 보석을 가져와도 되고, 쌀 한 말을 가져와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제비가 가져다준 것은 금도, 쌀도 아닌 박씨 하나였다.
요즘에는 흔히 볼 수 없어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박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아주 가까운 식물이었다.
연한 박속은 국을 끓이고, 나물은 무쳐 먹었다. 길게 썰어 말린 박고지는 겨울을 나는 저장식량이 되었고, 단단해진 껍질은 바가지가 되어 물을 긷고 곡식을 담았다. 먹고 남은 씨앗은 다음 해 또 다른 박을 키웠다.
먹고, 말리고, 담고, 다시 심었다.
박은 음식이면서 생활도구였고, 살림이면서 생계였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식물이었다.
결국 제비가 흥부에게 준 것은 단순한 씨앗 하나가 아니었다.
한 번 먹고 끝나는 음식이 아니라, 심으면 다시 열매를 맺고, 열매는 식량이 되고, 껍질은 생활도구가 되고, 씨앗은 또 다음 생명을 만드는 것.
씨앗은 한 번의 풍요가 아니라,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제비가 황금을 물어왔다면 어땠을까.
황금은 쓰면 줄어들지만, 씨앗은 심으면 다시 열매를 맺는다. 씨앗은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갈 방법을 준다.
그런 점에서 제비가 흥부에게 준 것은 한 가족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이었다. 씨앗은 그냥 심어두기만 하면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직접 심고 가꾸고 기다려 수확해야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난다. 제비는 흥부에게 단순히 풍요를 안겨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다시 삶을 일으킬 수 있는 씨앗을 건넨 셈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놀부도 같은 박씨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같은 씨앗이었다.
같은 박이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복이 되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재앙이 되었다.
흥부와 놀부를 갈라놓은 것은 박씨가 아니었다. 같은 씨앗도 누구의 손에 들어가 어떻게 심어지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우리는 『흥부전』을 흔히 착한 흥부가 복을 받고 욕심 많은 놀부가 벌을 받는 이야기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박씨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제비가 가져온 것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다시 심을 수 있는 내일이었다.
씨앗 하나는 한 끼를 해결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년의 식탁을 바꿀 수 있다.
어쩌면 옛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순간의 풍요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큰 선물이라는 것을.
아… 그래서 박씨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