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에게 받침목이 되어주는 숲의 법칙을 깨닫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비슷한 시간에 아내와 함께 산바카라길로 향한다. 산바카라은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소중한 루틴이기도 하다. 또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약속이기도 해서 산바카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산바카라길이지만, 어쩌면 언제부턴가 자칫 무료해질 수 있었던 일상의 시간을 의미 있게 지켜내기 위해 취미가 되어가는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여름의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숲 속 산바카라길의 고마움은 더욱 깊어진다. 숲길을 걷고 때로는 가볍게 뛰면서 느끼는 자연의 존재감은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예전에는 산이나 숲이라 하면 어쩌다 마음먹고 여럿이 떠나는 '등산'만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집을 나서면 언제든 다다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휴식처이기도 하다. 매일 길을 걸으며 풀 한 포기, 작은 나뭇가지 하나도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라는 시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라고 노래했다. 이젠 길가에 피어난 보잘것없는 들풀이나 잡초마저도 자세히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겨났다. 각자의 자리에서 진한 생명으로 숨 쉬고 있음을 깊이 인정하고 존중하게 된 것은, 어느덧 60대의 나이가 되고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삶의 지혜다.
며칠 전부터 산바카라로 입구에 서 있던 작은 단풍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거센 바람의 저항을 받은 데다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했는지 비스듬히 기울어져 곧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매일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저 나무를 세워주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만 마음에 품었을 뿐,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곤 했다.
사실 얼마 전 누군가 산바카라로를 가로막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매어놓았던 나일론 끈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잘라 나무를 세우는 데 쓸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아내는 "누군가 무슨 이유나 필요가 있어서 묶어둔 것일 수도 있으니 훼손하지 말자"라며 말렸었다. 그런 끈이 오늘은 잘린 채 일부가 산바카라로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 잘라낸 끈의 일부는 사라지고, 짧은 나일론 끈만이 나무에 묶인 채 남아있었다. 순간 '아, 저것으로 단풍나무를 세우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바로 실행에 옮겼다.
기울어진 단풍나무에 나일론 끈을 매어 인근 나무에 연결해 세웠다. 끈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굵고 울창한 큰 나무에 묶어주었을 텐데, 길이가 짧아 쓰러진 나무보다 더 가냘파 보이는 옆의 어린나무에 묶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나무가 조금 더 힘을 받게 하기 위해 숲 속에 떨어져 있던 죽은 나뭇가지들을 가져다가 단풍나무 밑자락에 지주대로 받쳐주었다. 그러자 언제 쓰러질 듯 불안해 보였던 단풍나무는 중심을 잡고 제법 온전한 제 자태를 찾아갔다.
작업을 마치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나무를 바라보았다. 옆 나무에 묶인 나일론 끈과 바닥의 나뭇가지에 의지한 단풍나무는 비로소 다시 숲의 일원으로 당당히 돌아간 듯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젊은 시절의 나였다면 길가에 쓰러진 나무 한 그루쯤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60대에 들어선 지금, 비스듬히 기울어져 스스로 중심을 잡지 못하는 저 단풍나무의 모습에서 멀지 않은 미래의 내 모습이 보였다. 나이가 들어 몸의 균형을 잃어가고 쇠약해질 머지않은 날, 혼자 힘으로는 세월의 비바람을 견디기 힘겨워할 늙은 나의 초상이 그 나무 위에 겹쳐진 것이다.
숲 속에 우뚝 선 나무들도 완벽하게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친 비바람이나 극심한 가뭄 앞에서는 쓰러지고 마는 법이다. 누군가를 지탱해 주는 존재가 꼭 거창하고 웅장할 필요는 없다. 조금은 부족하고 가냘픈 서로라 할지라도, 기꺼이 줄을 매어주고 작은 받침목이라도 되어줄 때 함께 비바람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그 나무를 일으켜 세운 것은 거창한 봉사가 아니었다. 언젠가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살아갈 나 자신을 향한 연민이자, 세월 앞에 기댈 곳이 필요한 모든 약한 존재들을 향한 본능적인 마음이었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몸을 가누기 힘들어질 먼 미래의 내 모습 위로 단풍나무가 겹쳐 보였는지도 모른다. 오늘 자연 속에 보탠 이 작은 선행의 힘이, 언젠가 스스로를 일으켜 줄 받침목이 되어줄 것이라는 울림이 가슴 깊이 전해져 왔다.
다시 산바카라로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이마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지만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늘 숲이 내어주는 그늘과 혜택을 누리기만 했던 산바카라길에서, 오늘은 나도 숲에 작은 선물 하나를 남기고 온 것 같아 마음이 한없이 넉넉해진다. 내일 아침 산바카라길에서 다시 만날 그 어린 단풍나무가 더 꼿꼿하고 푸른 초록빛을 내뿜고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