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창문' 번역 연재물을 읽어 주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하지만 마거릿 올리펀트가 추리소설 결말처럼 시원하게 모든 걸 밝혀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 다 읽고 나서도 궁금증이 계속해서 남을 수밖에 없다.
일단 연도부터 다시 확인하고 시작하도록 하자.
《도서관 창문(The Library Window)》: 1896년 1월 발표(블랙우즈 카지노 게임)
당시 마거릿 올리펀트(1828-1897)의 나이는 67세였고 소설이 발표된 것은 올리펀트 사망 1년 전이었다.
길 건너로 보이는 도서관 창문 안으로 보이는 남자와 바카라상과 벽에 걸린 그림을 들여다보며 저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왜 관찰만 하며 궁금해할까? 성질 급한 21세기의 독자들은 "아니 그냥 가서 보면 될 일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주인공은 나중에 메리 고모와 피트밀리 씨와 함께 도서관에서 열리는 작은 파티에 간다. 메리 고모는 그때까지 도서관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수십 년 동안 도서관 바로 길 건너에 살아온 고모는 왜 도서관에 가본 적이 없을까?
당시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그리고 소설의 배경이 된 세인트 앤드루스 같은 대학 도서관은 공공에 개방된 바카라 창고가 아니라 남성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영국에서 여성 교육을 위한 대학(College)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것은 1860~1870년대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초창기에는 수료증만 주고 정식 학위를 주지 않는 등 차별을 받았다. 1878년에 이르러서야 런던 대학교가 남성과 완전히 동등한 조건으로 여성에게 정식 학위를 주기 시작했고, 학벌 카스트의 끝판왕인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각각 1920년, 1948년이 되어서야 여성에게 정식 학위를 주기 시작했다(생각보다 얼마 안 됐다).
훗날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대학 도서관에 들어가려다 "여성은 보호자(남성)를 동반하거나 소개장이 있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제지를 받고 쫓겨났던 분노를 기록했다. 20세기 초에도 여전했던 이 장벽이 19세기 중반 고모 세대에게는 얼마나 절벽 같았을지 짐작케 한다. 그러니 고모도 도서관에 들어가 볼 꿈도 꿔 보지 않은 것이다.
당시 중상류층 숙녀에게는 '적절한 품위'가 요구되었고, 남성 학자들이 득실거리는 대학 건물에 기웃거리는 것은 슬롯적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메리 고모는 그 체제에 순응하며 창밖의 풍경을 환상으로 채우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소녀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서관 파티에 갈 때도 고모와 소녀 모두 피트밀리 씨와 같은 신사의 에스코트가 필요했다.
아니 뭐 2D 캐릭터에게도 사랑에 빠지는 우리 덕후들이 그 마음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세요? 가 아니라... 도서관의 남자가 한창때의 브래드 피트같이 생겼을지라도 주인공이 너무 빠져드니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여우나 귀신에게 홀린다는 게 뭔지 아는 동아시아의 독자들은 이 부분에서 그렇게까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영미권의 페미니즘 문학 학자들이 이 작품을 분석할 때 공통으로 강조하는 포인트는 '지적 활동에 대한 동경'과 '자기 투사', 그리고 '몰입의 자유'이다. 남자는 주인공이 갈 수 없는 공간에서 주인공이 할 수 없는 행위를 하고 있다. 게다가 남자는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글쓰기에만 침잠해 있다. 가사나 사교, 예절에 얽매여야 했던 당시 여성들에게, 무언가에 완전히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모습은 가장 고귀한 형태의 자유로 보였을 것이다.
아니... 도서관의 남자가 유혹을 한 것도 아니고, 나 좀 봐달라고 와달라고 손 흔든 건 이쪽 여자인데 오빠들은 왜 그 남자를 죽였을까? 오빠들이 조폭이면 물론 가능하겠지만...(혹은 어떤 문화권에서는 명예 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여동생을 죽였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도서관의 남자와 소녀의 조상님(?) 여자에 얽힌 이야기가 좀 억지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대해 비평가들은 이렇게 분석한다.
반응 없음이 주는 모욕: 남자가 응답하지 않음으로써 여동생은 동네에서 '구걸하는 여자' 혹은 '무시당하는 여자'라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 신사들에게 자기 가문의 여성이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는 것은 가문의 위신에 대한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비평가들은 오빠들이 남자를 죽인 이유가 그가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 가문의 여자를 감히 무시하고 품위를 떨어뜨리게 만든 원인'을 없애기 위해서, 즉 보복성 살인이라고 해석한다.
여동생을 수동적 희생자로 가두는 장치: 오빠들이 남자를 죽임으로써 여동생은 평생 "나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죄바카라감과 공포에 갇혀 다시는 창밖(세상)을 보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이 살인의 진짜 목적은 남자를 처단하는 것보다, 여동생의 지적·감정적 독립 시도를 폭력으로 짓밟아 다시 거실 안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주인공이 끝까지 '나는 그 반지와 도서관 창문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서술했던 칸비 대부인의 반지! 너무 커서 실로 손가락에 고정해야 했고, 손바닥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을 향해 끼고 다녔던 반지!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고딕 소설다운 아이템은 이 반지이다. 반지가 너무 커서 실로 감아야 했다는 것으로 보아 남자용 반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남자에게 조상님이 보낸 선물일 수도 있고, 그 남자가 남긴 유품일 수도 있다. 이 반지에 대한 비평가들의 분석을 보도록 하겠다.
거절의 증표: 고모가 마지막에 언급한 '증표(token)'는 소통의 시도가 실패했음을 알리는 슬픈 신호이다.
비밀과 고통의 보존: 반지가 빠지지 않게 실을 감는 것은, 가문의 수치와 비극을 잊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처절한 기억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반지를 물려주는 행위: 대부인이 그 증표를 주인공에게 맡김으로써 기억을 계속 이어지게 하려 했고, 자신은 실패했지만 주인공은 그 '벽'을 넘어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는 해석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원서로 직접 읽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혹시라도 계신다면 테이마 헬러(Tamar Heller)의 논문인 "TEXTUAL SEDUCTIONS: WOMEN'S READING AND WRITING IN MARGARET OLIPHANT'S "THE LIBRARY WINDOW(Victorian Literature and Culture, 1997)"를 JSTOR에서 온라인 열람이 가능하다(구글 계정 필요). 평생의 연구 주제가 "빅토리아 시대 여성 작가들이 겉으로는 얌전한 소설을 쓰는 척하면서, 어떻게 소설 속에 가부장제에 대한 분노나 여성의 숨겨진 욕망을 '고딕(유령, 공포, 기이함)'이라는 장치를 통해 기막히게 숨겨놓았는가"를 밝혀내는 일이었던 사람이라 위에서 다루었던 내용들이 거의 다 들어가 있다.
다음 편에서는 마거릿 올리펀트 본인과 주변인들의 삶이 이 소설에 어떻게 투영되었는지를 보도록 하겠다.
(7월 4일 19시에 올라옵니다. 고구마 가득하니 미리 사이다 준비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