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기에 계속 있을 생각이었던 건가?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 캐릭터 소개
◆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다음날 게로스는 미니스트렐에 가지 않았다. 그날 잡힌 회의와 보고는 다 솔라스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세라비는 아침을 먹으면서 이카레이유의 삼촌과 레이첵에게서 온 편지 얘기를 해 주었다. 전쟁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공로로 세라비와 레이에게 내려질 포상을 논의 중이라는 얘기였다. 게로스는 그 얘기를 듣고 “어차피 우리가 더 많이 줄 테니까, 이카리아에서 먼저 주라고 해.”라고 말했다.
세라비는 “와… 뭘 주려고? 왕 자리 달라면 줄 거야?”하며 웃었다. 게로스는 따라 웃다가 “그치만 어차피 너는…” 까지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세라비는 뒷말이 궁금했지만 조엘린이 문 밖에 와서 들어가도 되는지 물었기 때문에 묻지 못했다.
며칠 후, 포르트메르와 마르벤이 두 강대국에게 점령되기 직전 겨우 칼베르를 빠져나와 이카레이유로 돌아갔던 이카리아 대사가 파렌베르크로 복귀했다. 세라비와 레이는 파렌베르크 시내의 이카리아 대사관으로 그를 맞으러 갔다.
이카리아 대사는 세라비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세르비카 경의 친구이자 세르비카 경의 해임 사건 때 해임에 찬성하는 대신들과 육탄전까지 벌였던 루시앙 드 벨포르 자작이었다. 그는 세라비가 이카레이유에 살 때 세르비카 저택에도 자주 놀러 왔던 사람이었다.
루시앙 자작은 세라비를 보고 무척 기뻐하고 대견해했다. ‘진짜로 세라비네! 맨날 정원에서 흙 만지고 놀다가 담장 넘어 도망가던 오노레의 조카가 이렇게 의젓한 외교관이 되다니…!’
“세르비카 대사님!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하고 루시앙 자작은 말했다. 세라비는 어렸을 때부터 봤던 삼촌 친구가 갑자기 자신을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부르니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세르비카 경께서 걱정이 많으십니다. 이제 제가 왔으니까 안심하고 귀국하셔도 됩니다!” 그는 마치 세라비가 자신이 안 오는 바람에 이카리아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던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귀국이요?” 세라비가 되물었다.
자작은 떠나기 전 세르비카 경이 ‘우리 조카가 혹시 칼베르에 더 있고 싶어 할지도 모르니 한 번 물어봐라’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 내고 덧붙였다. “세르비카 경께서 혹시 여기 계속 있으실 거면 대사관에 자리를 마련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원하시는 부서가 있으신가요?”
세라비는 펄쩍 뛰었다. “삼촌이 이 임무만 마치면 끝이라고 하셨는데 이제 와서 대사관이라뇨!”
루시앙 자작은 세라비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이구… 제가 너무 늦게 오는 바람에 임무가 끝났는데도 여기 묶여 계셨군요. 정리되시는 대로 귀국하실 수 있도록 준비해 드릴 테니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세르비카 경하고 클레망스 부인이 엄청 보고 싶어 하십니다.”하고 말했다.
세라비는 자작이 레이에게 같은 것을 물어보는 동안 생각했다.
‘나, 여기에 계속 있을 생각이었던 건가?’
레이가 “전 지금도 여기저기 와달라는 곳이 너무 많아서 대사관에서 일할 시간이 없답니다.”하고 대답하는 가운데 세라비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분명히 집에 갈 생각이었는데… 그럼 지금까지 난 여기서 뭐 하고 있었지?’
세라비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진 채 빌라 솔라스로 돌아왔다. 레이는 세라비가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기 방으로 가 버렸다.
‘뭐야, 저 뭔가 다 안다는 것 같은 표정은.’
세라비는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미니스트렐에서 돌아온 게로스는 세라비가 자신이 들어와도 알아채지 못하고 방에 오도카니 앉아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요새 와서 세라비가 표정도 어둡고 말수도 점점 적어지는데, 어디 아픈 건 아니겠지?’하고 그는 생각했다. ‘남쪽에서 온 애라 여기가 춥고 날씨도 우중충하니 우울할 수밖에 없겠네. 이카리아 생각이 나서 그러나?’
게로스는 세라비에게 다가가서 옆에 앉았다. 세라비는 게로스를 그제서야 알아채고 어서 와, 하며 웃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게로스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냐. 오늘 루시앙 대사님 만나고 왔어.”
“드디어 돌아오셨구나. 오셔서 시내 이렇게 된 거 보고 놀라셨겠다. 대사관 건물은 멀쩡해?”
“응, 무너진 데는 없는데 창문이 다 깨져서 거기로 비랑 눈이 다 새서…” 세라비는 설명하다 말고 잠시 멈췄다.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지?’라는 의문이 낮부터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게로스는 세라비의 우울한 얼굴을 보고 불안을 느꼈다. 플레베르 신전에서 세라비가 무표정으로 창 밖을 바라보던 것이 떠올랐다. 혹시 나한테 뭐 서운한 게 있나? 요새 바쁘다고 너무 혼자 뒀나? 조엘린이 관리하는 집에 얹혀살아서 불편한가? 둘이 친한 줄 알고 너무 안심했네. 세라비가 지내던 뤼미에르관은 하나도 상하지 않았는데, 처음부터 거기서 지낼 걸 그랬나. 하지만 옆 건물들이 다 공사 중이라 시끄러울 텐데… 지금이라도 시내의 다른 저택을 찾아볼까?
“세라비, 여기서만 지내니까 답답하지? 날씨도 너무 안 좋고…”
세라비는 게로스가 걱정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얼른 명랑하게 대답했다. “아니야! 괜찮아.”
“내일은 일정이 별로 없는데, 취소하고 어디 놀러라도 갈까?”
“아니야, 진짜 괜찮아. 내일 레이하고 바카라 사러 갈 거야.”
“그래.” 게로스는 괜찮다는 말을 두 번이나 듣고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진짜 괜찮은 거 맞나? 세라비가 원래 이렇게 웃었던가? 왜 이렇게 애가 쓸쓸해 보이지?
“라를르 집에 가고 싶어서 그래? 다녀올래?”
세라비는 게로스의 입에서 집에 가고 싶냐는 말이 나오자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라를르의 집, 세라비가 떠나올 때 라를르는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낮엔 아직 살짝 뜨겁고, 아침저녁은 선선해져서 창문을 열면 강에서 나는 물 냄새와 이슬에 젖은 흙냄새와 무화과랑 포도에서 나는 달콤한 냄새가 집 안으로 가득 들어왔다. 그래, 나 집에 가고 싶었구나. 너무 오랫동안 떠나 있었어. 이 일만 끝나면, 전쟁만 끝나면 바로 집에 돌아갈 줄 알았는데…
세라비는 갑자기 집에 너무너무 가고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집에 가면 게로스는 어떡하지? 저렇게 매일 지칠 때까지 일하다가 돌아와서 나마저 없으면…
게로스는 세라비가 대답을 못 하는 것을 보고 아차, 하고 생각했다. 세라비가 라를르의 집에 얼마나 돌아가고 싶어 하는지 알면서 내가 너무 내 옆에 붙잡아 뒀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집 떠나던 날 개울가에서 주워 온 돌멩이조차 그렇게 소중하게 갖고 다니는 앤데, 내 생각만 하느라 집에도 안 보냈네. 하지만 세라비가 라를르에 돌아가고 나면 그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다녀올래?’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집은 다녀오는 게 아니라 그냥 돌아가는 거잖아.
게로스는 깨달았다. ‘세라비에게 슐로스 루와얄은 아직 자기 집이 아닌데, 너무 당연하게 세라비한테 왕궁 수리가 다 되면 같이 돌아가는 것처럼 말해버렸네. 거긴 내 집이지 세라비의 집이 아니잖아. 세라비는 슐로스 루와얄에 들어가서 사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아직은 자기 집이 아니지만, 거길 자기 집으로 여겨 줄까? 그러고 보니 아직 결혼하자는 말도 안 했네. 같이 있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또 아무 얘기도 안 했다. 중요한 얘기 다 해주기로 해놓고 또다시 큰 실수를 할 뻔했구나.’
게로스는 세라비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날 밤은 두 사람 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서 잠이 들지 못했다.
◆ Illustrations by Mabon de Forêt(AI-assis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