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신들의 빛

저것은 신들의 빛입니다

by마봉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 캐릭터 소개

◆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테사 공주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 슐로스 루와얄의 야외 테라스에 서서 희미하게 밝아지는 동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덕 위에 지어 놔서 바람이 더럽게 세군.” 테사가 중얼거렸다.


그들은 새벽부터 작전 회의 중이었다. 파렌베르크 서쪽 외곽 기지를 점령했으므로 이제 후방 중 어디를 먼저 칠지 결정해야 했다. 테사는 탈출한 게로스가 서쪽 기지로 간 흔적을 찾자 제일 먼저 그곳을 공격했다.


그러나 게로스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루브론이나 발렌도르로 이미 몸을 피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테사는 또다시 게로스를 놓쳐 분노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소집된 회의실은 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했다.


“오늘은 해가 밝게 뜨는군요.” 안쪽의 회의실에서 테라스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며 포병대의 앤드류 해그릿 중령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평소보다 몇 배는 밝은 것 같습니다.”


“아직은 해 뜰 시간이 아닌데, 이상하군요.” 보급 부대의 리나 보웬 대위도 말했다. “저게 대체 뭘까요?”


이 말에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도 다들 일어나서 테라스로 나왔다. 동쪽 지평선에 환하게 빛나는 선 같은 것이 하늘을 찌르며 솟아 있었던 것이다.


“저건 해가 아닙니다.” 마이라가 말했다.


테사는 지평선에 눈길을 잠시 던졌다가 마이라에게 말했다.


“칼베르에서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오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정찰대를 보내서 당장 알아보도록.”


“저 방향이라면 발렌도르겠군요.” 앤드류가 말했다.


정찰대를 편성하기 위해 회의실을 떠나려는 정찰 담당의 칼렌 베이든 소령을 회의실 안쪽 구석에 있던 오스틴 군 소속의 사제가 붙잡았다. 그는 오스틴의 수호신 중 하나인 불과 쇠의 신 이그나바르를 모시는 사제였다. 그는 하늘을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뭡니까?” 칼렌이 물었다.


“가면 안 됩니다…! 저것은 신들의 빛입니다!”


테사는 사제를 돌아보고 코웃음 쳤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사제는 칼렌의 다리를 붙잡고 바닥에 엎드렸다. “가면 우리 모두 죽습니다!”


이그나바르의 사제는 평소에 침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회의실 내의 장교들은 모두 동요했다. 테사만이 불같이 화를 냈다. “신들의 빛이라 할지라도 가서 알아봐야 할 것이 아니냐! 내 명령에 거역하겠다는 것인가 지금?”


사제는 테사의 분노에 겁을 먹었지만 칼렌의 다리를 놓지 않았다. 테사는 화를 벌컥 내며 검을 뽑아 들고 사제에게 성큼 다가섰다. 사제는 비명을 질렀다. 마이라가 “전하!”하고 소리쳤다.


테라스에 서서 이상한 빛을 보고 있던 에런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저 빛이 사제의 말대로 신들의 빛인지 아니면 칼베르가 반격하기 위해 새로운 무기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갈등하고 있었다. 테사가 게로스의 탈출의 죄를 물어 그를 감시했던 경비병들을 모두 처형한 이후 그의 갈등은 더더욱 깊어졌다.


그는 스칼하븐과 싸우면서도 그 생각을 했었다. 심지어 스칼하븐과 달리 그들을 침략하지도 않은 칼베르를 잿더미로 만들면서 그 생각은 더더욱 깊어졌다. 그는 자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생각이었지만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 수 없는 싸움, 더욱이 왕족 한 사람의 변덕에 의한 전쟁이라면 과연 싸울 이유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묻고 있었다.


사제가 울부짖었다. 테사가 검을 쳐들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입에서는 제각기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테사 공주가 검을 손에서 떨어뜨리고 바닥에 털썩 쓰러졌던 것이다. 그녀의 옆구리에는 검이 깊이 박혀 있었다.


모두 숨을 멈추었다. 에런은 두 손을 들고 마이라를 향해 외쳤다.


“킨슬리 준장! 내가 전하를 살해했으니 처형하시오!”


방 안에 있던 장교들은 테사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회의실 바닥의 카페트를 시뻘겋게 물들이는 것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테사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마이라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려 테사에게 달려가 목에 손을 대 보고는, 테사의 눈을 감겼다. 사람들은 아무도 말이 없었다. 에런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마이라는 에런의 등 뒤로 돌아가 테라스로 나가는 계단에 섰다. 에런은 두 눈을 감고 기다렸다.


“베인즈 소장님, 당신을 애쉬번 제독님, 테사 애쉬번 전하 살해죄로 체포하겠습니다. 본국에 돌아가 재판을 받도록 이제부터 구금하겠습니다.”


에런은 고개를 들었다. 마이라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에런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왕족이자 상관을 살해했으니 테사의 오른팔인 그녀는 자신을 즉결처형해야만 했다. 왜 죽이지 않는 것일까?


에런은 그제서야 방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다들 묘한 안도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제독님은 돌아가셨고, 베인즈 소장님은 체포되었으니 군령 체계에 따라 지휘권은 이제 저에게 있습니다. 이의 있으십니까?” 마이라가 말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자, 마이라는 에런을 일으켜 세우고 손을 직접 포박했다. 보웬 대위가 그를 구금하기 위해 데리고 나갔다.


에런은 방을 나서며 마이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왠지 그에게 미안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가 나가자, 마이라는 방 안의 장교들을 돌아보며 선언했다.


“우리는 이제 본국으로 귀환합니다.”


몇몇 사람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마이라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했다. “지휘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오스틴으로 귀환합니다.”


“준장님! 다 이겼는데 이 시점에 귀환이라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걸 쏟아부었는데…!” 칼렌이 외쳤다. 그러나 자신을 제외한 모든 장교들이 귀환 준비를 서두르기 위해 회의실을 나서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해그릿 중령은 그의 옆을 지나가며 한 마디 했다. “제독님이 명령하실 때는 이의 제기한 적 없으셨잖소.”


칼렌은 입을 다물었다.

이그나바르의 사제가 창밖의 빛을 가리키고, 테사가 검을 뽑아들고 있는 모습(주변에 오스틴 장교들 둘러쌈) ⓒ Mabon / AI

◆ Illustrations by Mabon de Forêt(AI-assisted)

이전 19화79. 신들이 요구한 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