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드라마 대신 소설을 읽는 이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한 여자의 이야기

byLayla Lee



올해는 조금 이른 휴가를 왔다.

나는 보통 여행이나 휴가지에서는 바카라을 읽기보다 몸을 움직이며 일부러 머릿속에 여백을 만든다. 휴가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그려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다시 기대될 수 있도록.


그런데 이번엔 빈혈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어디를 돌아다닐 기운도 없어 선베드에 누워있다가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홍보 영상에서 신현빈 배우를 보고, 자연스럽게 몇 년 전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이 생각났다.


당시에는 모르고 지나쳤는데, 이 드라마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휴가에는 오랜만에 소설을 읽기로 했다.

언젠가 드라마를 쓰게 된다면, 처음부터 각본이 아니라 소설을 먼저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써야 한 편의 드라마가 될 만한 소설이 되는지를 알고 싶었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도 줄거리보다 문체와 문장이 끌려야 읽는 편이라 내가 드라마에서 봤던 장면들이 소설에 어떻게 써져 있는지 궁금했다.


보통 원작 소설이 있는 드라마나 영화는 많은 부분이 생략되거나 단순화된다. 그런데 《너를 닮은 사람》은 생각보다 소설의 장면을 거의 그대로 드라마로 옮겨 놓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바카라을 읽는 내내 몇 년 전 봤던 드라마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그중에서도 유독 오래 남은 장면이 하나 있었다. 남자 주인공 유석이 화자에게 그녀의 눈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두고 간 작은 크로키 북을 보았다. 거기에는 이젤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그린 여러 장의 그림이 끼어 있었다. 단선으로 간략하게 그린 크로키였지만 첫눈에 나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림 속의 나는 실제의 나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그에게 크로키 북을 돌려주자 그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오른쪽 눈이 아름다워요. 깊고 따뜻한 눈동자의 색감과 잘 어울리는 모양이에요.

그는 마치 관찰 일기를 쓰듯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을 했다. 나는 아름답다는 말을 아주 오랜만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장면은 드라마에서도 그대로 등장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소설의 한 문장을 드라마가 오히려 더 감각적으로 확장해 보여준다는 것이다. 소설 속 짧은 문장을 화면 언어로 풀어내며, 오히려 감정을 더 선명하게 확장시킨다.


물론 드라마는 그 장면을 더 감각적으로 완성해 보여주었지만, 소설에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머물며 행간을 읽고, 내가 떠오르는 생각으로 채울 수 있는 여백이 있었다.


먼저, 그는 그녀를 오래 관찰했다. 그 결과가 크로키다.

그다음.

"오른쪽 눈이 아름다워요."

보통 사람이라면 "예쁘세요." "눈이 예뻐요." 정도로 끝난다.

그런데 그는

"깊고 따뜻한 눈동자의 색감과 잘 어울리는 모양이에요."라고 한다.

'예쁘다'가 아니라 왜 아름다운지까지 말해준다.


'그는 마치 관찰 일기를 쓰듯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을 했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의도적으로 '관찰 일기'라는 표현을 썼다.

즉 관찰의 결과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오래 바라본 흔적을 발견할 때 마음이 움직인다. 아니, 마음이 움직이는 정도가 아니라 그 한마디는 큐피드의 화살처럼,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마음을 정확히 관통한다.

그래서 소설과 드라마 속 두 사람의 관계에서 저장면이 하나의 전환점으로 그려진다. 아주 구체적인 관찰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관찰이야말로 사랑의 진심을 가장 조용하게 증명하는 언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고현정이 연기한 화자는 유석의 시선을 통해 처음으로 '관찰된 나'를 마주한다. 타인의 기대에 맞춘 내가 아니라, 누군가가 오래 바라봐 준 나. 어쩌면 그녀가 유석에게 강하게 끌린 이유는, 그를 통해 다른 누구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한 자기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야기의 본격적인 전개를 알리는 전환점이 된다.


그런데 나는 화자가 자신이 왜 그 말에 끌렸는지는 끝내 정확히 들여다보지 못했다고 느꼈다. 화자는 '아름답다는 말을 오랜만에 들었다'는 사실만 깨닫는다. 하지만 정말 그녀를 흔든 것은 '아름답다'는 칭찬이 아니라, 그 말에 이르기까지의 긴 관찰이 아니었을까.


화자는 자신을 움직인 감정의 본질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을 가장 깊이 바라봐 준 사람에게 끌렸지만, 결국 그와 오해, 선택이 쌓이면서 소설이자 드라마는 이 덕분에(?)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갈등과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이 왜 움직였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을 스스로 밀어내기도 한다. 어쩌면 화자도 그랬던 것은 아닐까. 자신을 가장 깊이 바라봐 준 사람에게 끌렸지만, 정작 무엇이 자신을 흔들었는지는 끝내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이야기 속 줄거리만 따라가면 이 이야기는 결핍과 이기심이 빚어낸 비극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읽었다. 화자는 끝내 자신의 감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그 이해하지 못한 마음이 결국 주변 사람들과의 파국을 향해 이야기를 밀고 간 것은 아닐까.


드라마를 볼 때는 배우의 감정선과 사건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문다. 반면 소설은 텍스트를 따라가며 문장 사이의 행간을 읽게 된다. 그래서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어떤 본성이 그 감정을 만들었는지를 더 오래 생각하게 된다.


드라마는 감정을 보여주지만, 소설은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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