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세계를 탐험하는 법

byLayla Lee

유튜브에서 선우용녀 여사가 아침마다 직접 운전해서 남산의 한 호텔로 조식을 먹으러 가는 영상을 꽤 흥미롭게 본 적이 있다.

아직도 나는 가끔 딸과 투닥거릴 때마다

어렸을 때 내가 즐겨 보던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가 여자 어른들과 다투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유튜브 속 80대 여성의 일상이 낯설기보다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영상에서 내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발견한 순간 갑자기 신이 났다.

그건 5성급 호텔 조식의 여유 때문은 아니다.

벤츠를 운전하는 '용녀용녀'의 재력 때문도 아니다.


그렇다. 나는 '조식' 뷔페를 좋아한다.

하지만 조식을 제외한 일반 뷔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채로워 보이는 목적으로 보이는 뷔페나 한정식 상차림을

사람들은 풍성함이라고 느끼겠지만

나는 먼저 남겨질 음식들이 보인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 먹을 수 없는 양이 차려지는 식사는 어딘가 낭비처럼 느껴진다.(사실은 다 먹을 수 있어서 더 그런 걸 지도?)


반면 조식 뷔페는 다르다.

계란, 빵, 샐러드, 치즈, 수프처럼 재료 자체는 단순하다.

선택지는 많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정도의 가짓수다.

나는 그 제한된 다양함이 좋다.

싫증을 잘 내는 나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필요하지만,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피곤하다.

동시에 나는 한 가지 음식이나 제품에 꽂히면 그것만 몇 달이고 계속 먹고 쓴다.

하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파고들지만, 또 새로운 자극도 필요하다.

뷔페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나는 이것저것 담아 오는 대신 스크램블 에그를 가장 많이 먹는다.

한 번은 후추를 뿌리고, 그다음 접시에는 치즈를 올리고, 핫소스도 섞어먹는다.

조식 뷔페는 나의 이 모순된 욕구를 모두 받아준다.

사실 꼭 조식 뷔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이유로 편의점 도시락은 내 소울푸드다.

늘 비슷한데 늘 조금 다르다.



아무튼 이렇게 조식 뷔페를 좋아하는 나인데,

그 영상을 보며 뜻밖의 의욕이 생겼다.

조식 뷔페를 먹기 위해 언젠간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겠구나.

나는 운전하려면 전날 내비게이션으로 어디서 차선을 변경할지 추측해 보며 경로를 미리 예습해야 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자가운전으로 조식 뷔페를 먹으러 언덕에 있는 호텔까지 가고

식사 후 평지에서 산바카라하는 용녀 씨의 일상을 보고 있으니

나도 노년이 되어도 조식 뷔페 먹으러 운전대를 잡아보겠다는 굳은 심지가 생겼다.

사람은 거창한 목표보다 좋아하는 것 때문에 더 쉽게 움직이는 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했던 사람, 바카라, 음식, 취미도 대부분 비슷했다.

바카라은 동시에 여러 권을 읽는다.

하지만 한 작가의 바카라, 한 감독의 영화, 한 배우의 출연작은 몰아서 보는 편이다.

마치 지도에 표시된 보물을 찾아가듯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취향이라는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일례로 <007 스카이 폴>을 영화관에서 보고 나서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필모그라피를 다 찾아봤다.

기존의 바람둥이 제임스 본드가 아니라 한 여자만을 인생에 두는 새 제임스 본드가 설정 자체는 오히려 현실감이 없는데 다니엘 크레이그의 눈빛에 현실감이 있었다.

그래서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배역은 모두 달랐지만, 어딘가 공통된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것이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가 아니라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배우 특유의 감정선, 눈빛인 것 같았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읽고 나서는 공지영 작가의 에세이를 모두 사 읽었다.

읽으면서 주기적으로 '헉, 이런 이야기까지 바카라에 써도 되나?' 싶은 부분들이 나를 자극했다. 그리고 분명히 그 대담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유명한 작가도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살아가는구나.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구나.


구매한 바카라 중 한 권에는 몇 년 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공지영 작가의 북토크에서 직접 받은 사인도 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바카라은 사인보다도 더 큰 흔적을 내 삶에 남겼다.

일단 첫 번째 챕터 제목이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를 만나라'이다.

대학교 4학년 때 나는 이 챕터를 읽고 그 당시 소개팅으로

본 지 한 달 정도 된 남자랑 사귀어 주기로(그 당시엔 이렇게 생각했다.) 했고

4년 뒤 내 친구들이 던지는 의아함을 뒤로하고 결혼까지 했다.


사실 그 소개팅 자체도 꽤 의아하게 시작되었다.

어느 날 다른 대학에 다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다짜고짜 자기 주변에 남자 외모 안 보고 성격만 보는 애는 나밖에 없다고 했다.(이 무슨...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성격이라기 보단 성품이다.)

그러면서 자기 남자친구가 동아리 후배에게 여자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는데

다들 남자 키랑 외모 제한선이 있어서 막상 연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본인 남자친구 체면 좀 살려달라며 딱 한 번만 나가달라고 했다.

얼마나 외모가 별로길래.. 하는 두려움 때문에(대학교 내내 주말마다 잡았던 소개팅 나갈 때 항상 엄습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문자로 통성명하고 약속까지 잡았지만 일이 생겨서 못 나갈 거 같다며 한번 거절을 했다.

다시 연락 안 하겠지 싶어서.

하지만 바로 며칠 뒤 연락 와서는 (정말로) 밝은 말투로 다시 약속을 잡길래

나도 아무렇지 않게 만나러 나가게 되었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상대만 아무렇지 않으면 나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다.

생각보다 단순하고,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만난다.

어떤 면에서 굉장히 단순하게 생각하고 복잡한걸 어려워해서 그런가.

나는 말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누가 굳이 묻지 않은 내용은 잘 꺼내지 못한다.

아니, 어떻게 보면 말을 진짜 잘 못한다.

무언가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를 시작하는 일이 어렵다.

그대신 누군가 질문을 던지면 곧바로 대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강하다.

마치 버튼을 누르면 반응하는 기계처럼.

하지만 뭔가 주제를 꺼내거나 먼저 대화를 시작하는 일은 내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저 누군가 묻는다면 기꺼이 답하겠지만,

묻지 않는다면 그러려니 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모르는 척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굳이 먼저 꺼내지 않을 뿐이다.


세상에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도 있기 때문에.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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