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눈이 밝다

길에서 돈 줍는 방법

byLayla Lee

내가 잘 안 하는 것이 2가지 있다.

후회와 비교.

안 하겠다고 '노오력'을 하는 것은 아니고

그런 생각 자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후회를 하지 않는 건

뭔가를 결정할 때 나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심사숙고하고

그러고 나선 겁 없이 결정하고 행동해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결과에 대해 내가 더이상 어쩔 수 없다는 체념도 있다.


비교에 관해서는

내가 누구보다 잘 살고 있는지,

누가 나보다 잘 살고 있는지에 도통 관심이 가지 않는다.

아얘 이런 기준 자체가 어불성설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건 아마 나만의 포인트가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새로 인테리어 한 아파트의 미드센추리 스타일 가구 위

감성적인 꽃다발 같은 것에는 감흥이 없기 때문이다.

꽃놀이도 일부러는 가지 않는다.

하지만 진심이 담긴 편지는 몇 년이 지나도 꺼내 읽는다.

그래서 그런가.

딸이 카지노톡 프로필 사진에 꽃 사진을 찍어둔 걸 보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훈련소 조교 같은 눈으로 쳐다보다가)

오래간만에 딸을 향해 웃음이 나왔다.

나는 무심히 지나치는 꽃을 사진으로 남겨두는 행동이 귀여워서.


그리고 나의 이런 면을 최근에 읽은 정신 분석 베스트셀러 <이향인>을 통해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뉴욕의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이향인'들은 안정과 소속보다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 새로운 가능성을 더 강하게 추구한다고 설명한다. 어떤 특정 집단에도 애착을 갖지 않고 집단의 역학애 구애받지 않으며(실제로 나는 국가대표 스포츠 경기를 보거나 응원하지 않는다.)솔직한 의견을 나누며 친밀한 일대일 우정을 키우는 것을 선호한다고 설명한다. 유행하는 활동, 유행, 취미에도 대부분 관심이 없다.(맞다, 나는 릴스, 밈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

이런 성향때문에 신축 아파트에 살며 외제차로 학원에 자녀들을 라이딩하고 외식을 하는 삶에는 큰 관심이 없다. 혼자 걸어서 편의점 도시락을 사먹으면서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삶이 재미를 느끼게 한다. 내면의 나만의 나침반을 갖고 내면의 풍요로움을 추구할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내 안에 나만의 비밀 정원만 있으면 그 외에는 미련이 없달까.



이런 나지만 타인의 경험에 대한 분포는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사람들이 보통 어떤 삶을 얼마나 경험하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다.


그중 하나는

'살면서 길에서 돈을 주워 본 적이 몇 번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나는 눈이 밝다.

정확히는 길에 떨어진 돈을 잘 본다.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는데,

내 눈에는 동전이나 지폐가 자주 들어온다.

걷다가 바닥에서 돈을 주워본 적만 5번은 족히 넘은 거 같다.

가장 최근 경험은 바로 지난달

길에서 천 원을 주운 일이다.(물론 늘 걸어 다니니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길바닥에서 돈을 발견해도 놀랍거나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내가 잘 보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식당 음식에 들어간 머리카락도 잘 발견한다.
함께 식사한 사람들은 못 본 것을 나는 본다.

이상하게 바닥, 아래쪽, 혹은 남들이 안보는 부분을 잘 본다.


사실 시력도 급속도로 안 좋아지고

학부모님들을 많이 상대하다 보니 얼굴은 오히려 잘 못 알아본다.

뭔가 익숙한 얼굴이면(사실 익숙한지도 헷갈린다.)누군가겠거니, '네네' 대답하며 웃는다.


그런데 기억해야 하는 사람은 나만의 구분 방법이 있다.

바로 귀 모양이라든지, 손의 특정 부분 생김새를 보면 된다.

나는 얼굴보다 그 사람만의 작은 신체 부위의 특징을 기억하는 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나는 원래부터 작은 것을 보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가장 잘 보고 줍는 것이 있다면 사실은 돈이 아니라

'씨앗'이다.


아이폰이나 맥북을 쓰지 않는 사람도 다 아는

스티브 잡스의 유명한 스탠퍼드대 연설문 속 문장이 있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당신은 앞을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 없다.

뒤돌아보며 연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언젠가 그 점들이 미래에서 연결될 것임을 믿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흔히 말한다.

"아, 나중에 보니 다 의미가 있었구나."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점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려는 사람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직접 몸을 숙여

'주워야'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씨앗'같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모종을 좋아한다.

당장 열매가 열릴 것 같은 것.

당장 쓸 수 있는 것.

당장 돈이 되는 것.

당장 이력서에 적을 수 있는 것.

그래서 모종은 소중히 키운다.


하지만 씨앗은 다르다.

너무 작다.

당장 쓸모가 없다.

심지어 어디에 써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부분은 씨앗을 밟고 지나간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도 씨앗이 있었다.


영어학과에서 음성학을 배운 것.

지도 교수님 연구 때문에 영어 대화 녹음본을 수십 번 되감아 들으며 전사했던 것.

아이들에게 영어바카라을 읽어준 것.


그 당시에는 전부 별개였다.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은 실패한 씨앗 같았다.

음성학 과목 학점은 처참했고(공대에 온 줄 알았다.)

녹음본을 전사하느라 (스트레스받아서) 정작 내 논문은 쓸 시간이 없었고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는 못 읽는다.(음, 듣고 말하는 건 좀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씨앗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음성학은 소리언어였다.

전사는 듣기 훈련이었다.

영어바카라 낭독은 발화 훈련이었다.

찬양은 감정을 소리로 전달하는 경험이었다.

새벽기도는 사유의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작사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작사를 하고 싶어서 눈에 불을 켜고 내 발밑에 씨앗들을 줍기 시작했다.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내가 20년 전 영어 독해 지문을 풀다가

'이건 내 인생 문장이다' 싶어 외우기 시작했던 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어쩌면 스티브 잡스의 저 말은,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이 문장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기다리는 사람보다 움직이는 사람에게 더 많은 힌트를 준다는 것.


씨앗을 알아보는 눈.

씨앗을 버리지 않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햇빛 쪽으로 끝까지 들어 올리는 팔.


많은 사람들은 운명을 이야기한다.

"원래 그렇게 될 운명이었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씨앗은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씨앗을 보느냐 못 보느냐이다.

그리고 그 씨앗을 얼마나 높이 들어 올리느냐이다.


나는 이것을 팔의 높이라고 부른다.

같은 씨앗을 들고 있어도 대부분은 배 앞에 둔다.

그 위치가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키가 크다.

가만히 있어도 햇빛과 가깝다.

나는 키가 작아서 그런가.

"조금 더 높이 들면 어떨까?"

"햇빛을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팔을 들어본다.

팔은 아프다.

불편하다.

하지만 같은 씨앗이어도 받는 빛의 양이 달라진다.

결국 성장의 크기도 달라진다.


유튜브.

온라인카지노.

인스타그램.

스레드.

각종 SNS.


과거에는 환경이 팔길이를 결정했다면,

지금은 콘텐츠가 팔이 되기도 한다.


글도.

생각도.

작사도.

씨앗을 서랍에 넣어두면 영원히 씨앗이다.

들어 올려야 한다.

빛을 받게 해야 한다.

누군가 보게 해야 한다.

요즘 나는 자주 생각한다.

씨앗은 원래 거기에 있었다.

다만 이제야 발견했을 뿐이다.


그래서 씨앗들을 눈으로 발견해서 내손에 담아 최대한 햇빛에 가깝도록 팔을 들어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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