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을 알아본 사람을 잊지 못한다.

박찬욱 영화 <스토커>에서 인디아가 찰리를 찾아간 이유

byLayla Lee

인간은

"아, 이게 나구나."

를 발견할 때 가장 깊게 몰입한다.


"인간은 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움직이는가."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에서 인디아도 찰리가 쓴 편지를 읽고 나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면 인디아는 처음부터 찰리를 단순히 좋아한 것 같진 않다.

오히려 무서워하고 경계하는 느낌.

그런데 찰리가 쓴 편지를 읽고 나서부터는 바뀐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찰리가 인디아를 유혹했다고 해석하는데,

박찬욱은 훨씬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디아가 찰리를 따라간 이유는 단지 찰리가 매력적이라서 만은 아니다.

찰리 안에서 자기 자신을 봤기 때문이다.


그가 쓴 편지 속에서

"이 사람은 나랑 같은 인간이구나"

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을 안전하게 만드는 사람보다,

자신을 이해하게 만드는 사람에게 더 크게 흔들릴 때가 있다.




생각해 보면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는 이런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인물들은 누군가를 사랑해서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이해해서 다가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기 안에 숨어 있던 욕망과 충동, 결핍을 상대방 안에서 발견할 때 움직인다.


어쩌면 박찬욱 감독이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이것인지 모른다.

인간은 타인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 안에 비친 자기 자신에게 끌린다는 것.


박찬욱 감독의 작품들은 모두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작품이 달라도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질문들이 존재한다.

인간은 왜 사랑하는가.

왜 집착하는가.

왜 복수하는가.

왜 위험한 사람에게 끌리는가.

왜 자기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는가.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사건보다 사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사람을 보고 있으면 결국 인간 본성을 보게 된다.


결국 그의 영화는 범죄 스릴러도, 멜로도 아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계급에 대한 영화라고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인간의 욕망이었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나는 <아가씨>에 나온 이 대사를 좋아한다.

인간관계의 가장 모순적인 순간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박찬욱 감독을 가장 좋아한다.

물론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프레임 하나하나를 설계하는 미감,

장면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는 미쟝센,

그리고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발견하게 만드는 여백과 대사까지.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미학적 요소들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아름다움이 결국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 나를 계속 그의 영화로 돌아가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최신작인 <어쩔 수가 없다>는 영 보게 되지가 않았다.

직업과 자존감, 생존 본능이 중요한 이야기라서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세상과의 갈등보다 인간 내면의 갈등에 더 관심이 많았으니까.




박찬욱 감독 영화를 파기 전에는 홍상수 영화를 자주 봤었다.

홍상수 영화에는 특별한 사건이 잘 없다.

대신 인간이 있다.

술에 취해 실수하는 사람,

자기 마음도 모른 채 흔들리는 사람,

끝까지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사람.



홍상수는 지질한 인간을 보여주고,

박찬욱은 욕망하는 인간을 보여준다.



생각해 보면 나는 원래부터 스토리보다 사람에 관심이 많았다.

아무리 흥미진진한 사건이 벌어지고 기발한 발상과 상상력이 담긴 영화여도

그 안에 인간이나 삶에 대한 철학이 보이지 않으면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설정이 거대할수록 관심이 식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는가 보다,

그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가 더 궁금했다.


범인을 찾는 것보다 범인이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가 궁금했고,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결국 내가 좋아한 영화들은 장르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분석을 보여주는 영화들이었다.



한동안 영화를 볼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영화를 보게 된다면 아마 또 비슷한 작품들을 찾게 될 것이다.

인간이 등장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게 만드는 이야기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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