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저녁에는 몸에 진이 빠져 누워 있었다.
거실에서 아들이 은은하게 여동생한테 잔소리를 시전 하고, 딸이 악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어렸을 때의 우리 집 저녁처럼, 사람 없는 듯 조용... 할 순 없을까 싶다가도
가끔 둘이 저러는 모습이 시트콤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랐다. 형제와 싸워본 적도, 싸우고 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한 공간에 있어 본 적도 없다.
그러니 내 아이들이 벌이는 일이 낯설고 신기하다.(또 보고 싶진 않음)
심지어 얼마 전에는 집에 가는 길에 뒷모습만 봐도 일란성쌍둥이인, 똑같은 단발을 하고 같은 옷을 입은 자매가 아파트 안으로 같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문득 뱃속에서부터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가 옆에 있고, 항상 저렇게 같이 지내는 건 어떤 걸까 궁금해졌다.
내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혼자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처음부터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서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가끔 멈춰 서게 된다.
아, 사람들은 나와 다른 감각으로 살아가기도 하는구나.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내가 살아보지 않은 관계는 여전히 궁금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외동딸 같지 않다는 말을 주로 들었다. 오히려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란 사람 같다는 얘기도 들었다. 내향적이지도 않고(그렇다고 외향적이지도 않고), 처음 보는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편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두세 번째 만남부터는 상대에게 토스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에서 외동으로 자랐다는 사실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족을 이루고 나니, 내가 살아보지 못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는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운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에는 서툴었구나.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슬롯성 있게 잘 지내면서 남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아, 내가 형제가 없다는 게 이런 데서 티가 나는구나.
사람과 친해지는 능력과 한 관계 안에서 오래 함께 살아가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
새로운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과 이미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도 다를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과 잘 친해진다. 그리고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인간관계에도 내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